사극, 용어를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등록 2008.02.23 18:18수정 2008.02.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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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 드라마의 트렌드는 사극이 주도하고 있다. 현대물은 일부 소수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사극은 나오는 작품마다 승승장구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대변해 준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드라마에서 사극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높은 편이다. 그러나 사극은 현대극과는 달리 생소한 용어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물론 드라마 제작진은 이것에 대비하여 시청자들을 위해 자막으로 간단한 용어 설명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부터 사극에 나오는 용어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그러면 사극을 보는 재미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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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라는 호칭을 사용했던 고구려를 그렸던 <주몽> ⓒ MBC



고구려는 폐하, 조선은 전하

사극을 보다 보면 신하가 임금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부르는 호칭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방영되었던 <주몽>(연출 이주환 김근홍, 극본 최완규 정형수 정인옥), <대조영>(연출 김종선, 극본 장영철), <태왕사신기>(연출 김종학 윤상호, 극본 송지나 박경수) 등의 고구려 사극에서는 신하들이 임금을 ‘폐하(陛下)’라고 부른다.

반면 최근 방영 중인 <이산>(연출 이병훈 김근홍, 극본 김이영), <대왕 세종>(연출 김성근 김원석, 극본 윤선주) 등의 조선 시대 사극에서는 신하들이 임금을 부를 때 ‘전하(殿下)’라는 호칭을 사용하곤 한다.


고구려는 중국과 대등한 지위를 가진 국가였기 때문에 '황제(黃帝)'에게만 통용되었던 폐하라는 호칭을 고구려의 '태왕(太王)'에게 사용하였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폐(陛)'는 섬돌 즉, 계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 임금은 계단 위에서 천하를 호령했고 신하들은 계단 밑에 서 있었는데 신하들은 임금에게 감히 직접 아뢴다는 것을 삼가하기 위해 계단 밑의 내시에게 이야기하면 내시가 계단 위의 임금에게 다시 아뢴다는 형식을 취했다.

그래서 신하들은 "계단 밑의 내시에게 아뢰오"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폐하(陛下)이다. '폐하께 아뢰오'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저는 황제가 신발 벗는 자리 밑에 엎드린 하찮은 존재입니다"라는 일종의 겸양법으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를 존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 뿐 아니라 백제나 신라 역시 임금을 황제라 칭하였고 이는 고려까지 이어왔지만 몽고의 침입 이후 우리나라의 임금은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게 된다. 그리하여 조선은 전하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는데 왕은 큰 집(殿 : 큰집 전)에서 집무했기에 전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글자 그대로 살펴보면 ‘임금이 거처하신 곳 아래에 엎드린 하찮은 존재’라는 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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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의 정조는 임금이 되기 전 세손이었다. ⓒ MBC



세자와 세손은 모두 저하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이산>을 보다 보면 사도세자(이창훈 분)나 세손 이산(이서진 분)에게는 모두 ‘저하(邸下)’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 호칭은 아직 임금이 안된 세자(世子)와 세손(世孫)에게 사용하였던 것인데 이 저하의 저(邸)는 전(殿)과 마찬가지로 집이라는 뜻이지만 보통 세자가 머무는 곳을 말한다.

왕은 전에 머물고 세자는 저에 머무는 것이다. 즉, 아직 대궐의 주인이지 되지 않았으니 전이 아닌 그냥 저에 머문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는 일반 사람들이 사는 가(家)가 아니라 매우 훌륭한 집을 가리킨다.

이 말은 최근에도 쓰이는데 우리가 흔히 매우 크고 좋은 집은 '저택(邸宅)'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그 예이다.

이 밖에 세자는 나라의 근본이라는 뜻에서 '국본(國本)'이라고도 하였고 아직 임금이 아닌 세자의 상태라는 의미로 잠저(潛邸)라고도 하였다. ‘왕께서 잠저시에’라고 하면 지금의 임금께서 아직 세자이던 시절에라는 뜻이다.

또한, 세자나 세손을 '동궁(東宮)'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들의 거처가 왕궁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따라서 동궁은 세자나 세손을 일컫는 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거처하는 궁(宮)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단 동궁이라는 말이 세손에게 쓰이려면 세자가 없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세자라는 말도 원래 황제국에서는 태자(太子)라고 부르는데 황제국 아래에 있는 제후국에서는 다음 왕이 될 인물을 세자라고 불렀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전하라는 호칭이 사용되면서부터 세자라는 호칭 역시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밖에 사극의 느낌을 살리는 용어들

“통촉하여주십시오. 세작의 침입이 저어되옵니다. 소인에게 전권을 윤허하여 주십시오.”

이런 말들은 사극을 보다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다. 언뜻 보면 현대말과 비슷하지만 중간중간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용어들이 등장한다. 우선 ‘통촉(洞燭)하다’라는 말은 ‘어떤 사정이나 형편을 헤아려 살피다.’라는 뜻으로 흔히 신하들이 임금에게 간청을 할 때 사용되곤 한다.

이외에도 신하들이 임금에게 많이 쓰는 말로는 “성은(聖恩)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하해(河海 : 큰 강과 바다)와 같사옵니다“, ”황송(惶悚)하옵니다“ 등이 있는데 주로 임금에게 감사의 예를 갖추는 경우에 사용하게 된다. 성은의 경우에도 황제국일 경우에는 '황은(皇恩)'이라는 말을 대신 사용하게 된다.

‘세작(細作)’은 오늘날의 간첩이나 첩보원을 일컫는 말로 세작은 시대를 막론하고 타국을 정탐하기 위해 자주 파견되었다. 재작년 부산도시공사에서는 새로운 브랜드 이름을 ‘세작(世作·CEZAC)’이라고 지었는데 사극에 등장하는 세작과 발음이 같아 논란이 생겼고 결국 이 이름을 한 번도 써보지도 못한 채 교체해야 했다. 최근 사극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저어되다.’라는 말은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다'라는 의미로 1459년(세조 5년)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에 등장하는 말이고 ‘윤허(允許)’는 허락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말들은 원래 조선시대에 쓰였던 말이나 사극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통상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우리나라 사극 대부분에서 사용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티뷰 기자단 기사


덧붙이는 글 티뷰 기자단 기사
#사극 #용어 #폐하 #전하 #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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