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묻는다고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이들을 피하고 싶다는 자우

등록 2008.02.28 16:02수정 2008.02.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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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서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감추고 유리한 부분은 부풀리려 한다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상담하며 직접 눈으로 보거나, 명확한 증거가 없이는 일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단, 계속해서 확인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도움을 청하러 왔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가령 사측과의 갈등으로 상담을 청하러 온 사람이 있을 경우에 사측의 입장을 들어보지 않고, 내담자의 말만 믿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그중에는 상담의 절차적인 면을 굳이 따르지 않고도 ‘이 사람은 피해자구나’하는 판단을 쉽게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보려는 시도를 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번거로운 확인 절차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옆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이 있는지와 상담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설명을 내담자에게 합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굳이 상대방의 의견을 듣지 않고도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상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자 전화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이들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체험하며 세상의 삭막함에 가슴을 쳐야 했습니다.

 

회사에서 구타 당한 베트남 노동자 '자우', 고용지원센터 찾아갔지만...

 

지난 22일, 처음 쉼터를 찾아온 베트남인 자우(Chau, 24)는 한눈에 봐도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눈을 멀뚱거리며 어눌한 말투로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정확한 상황판단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우는 붓기가 있는 얼굴이었고 아래턱에 검붉은 멍이 크게 나 있었습니다. 그는 상담 도중에 급여명세서와 ‘외국인고용변동신고서’를 내밀며 ‘노동부’라고 했습니다.

 

어렴풋이 상황이 이해가 갔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 임금체불 문제로 상담 차 외부에 나가 있던 베트남어 통역인 상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역을 통해 확인한 바는, 매일 오전 8시 반부터 밤 9시까지 일을 하는데, 사장님이 시간 외 근무수당 계산을 하루 두 시간만 해 주고 있어 계산을 제대로 해 달라고 하자, 고용주와 관리자가 “근무하기 싫으면 고용지원센터로 가!”라고 하여 쉼터 방문 이틀 전에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방문했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용지원센터에서는 통역을 통해 회사로 복귀하여 잔업수당 계산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라고 하였고, 자우는 그 다음 날 회사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여전히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고, 자우는 계속 사장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외국 인력 관리자가 손목을 잡고 끌면서 턱을 가격했는데, 하루가 지나자 맞은 아래턱은 아픈 느낌은 없는 반면, 위턱은 말을 한다거나 음식을 먹을 때 통증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구타를 당한 다음 날 다시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간 자우에 의하면, 자신의 구타 사실을 전하자 고용지원센터 직원은 회사에 전화 한 번 하지 않고, ‘외국인고용변동신고서’를 주면서 회사에 가서 사장님의 날인을 받아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눈에 봐도 검붉은 멍이 선명하게 나 있는 사람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다시 회사로 돌려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다시 한 번 놀랐던 것은 ‘급여명세서’ 문제였습니다.

 

자우는 회사에서 하루 두 시간의 잔업을 계산해 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급여명세서를 자세히 확인해 본 결과 자우의 회사는 하루 근무시간을 10시간, 잔업 두 시간을 계산해 준 것처럼 적었지만, 실제 계산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한 것이었습니다. 회사 측에서 기록한 급여내역에 따르면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고 있었고, 사측에서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연금은 들지 않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사측 주장대로 하루 두 시간 잔업으로 계산해도, 기본급 부족액을 감안하면 월 40만원 상당의 차액이 발생했습니다.

 

"그놈, 회사로 보내, 묻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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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가 받은 1월 급여내역서 1월 한달 동안 27일 근무했고, 하루 근무 시간이 10시간으로 기록돼 있는 반면, 급여 총액은 야근 포함하여 820,069로 돼 있다. ⓒ 고기복

▲ 자우가 받은 1월 급여내역서 1월 한달 동안 27일 근무했고, 하루 근무 시간이 10시간으로 기록돼 있는 반면, 급여 총액은 야근 포함하여 820,069로 돼 있다. ⓒ 고기복

나중에 자우의 회사는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직원과의 대화에서는 하루 두 시간 반의 잔업이 계속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그럴 경우에는 차액이 더 발생한다는 것은 상식이고, 자우의 주장대로라면 50만원 이상의 차액이 발생했습니다. 사실상 자우는 자신이 이해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었고, 그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다 폭행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통역을 통해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야 어찌 됐든 진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자우를 가까운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를 설명하시던 의사 선생님은 “아래턱에 물리적 충격이 가면 위턱이 아파요, 이 경우는 턱에 금이 보이지만 다행히 수술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라면서 "염증 생기지 않도록 주사 한 대 맞도록 합시다” 하시며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병원에 갔다 온 후, 전화상으로 들은 회사 측의 입장은 자우가 왜 회사로 돌아가라는 고용지원센터의 말을 듣지 않고, 쉼터로 왔는지를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상식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 악담 말미에, 회사 측에서는 “그놈, 회사로 보내, 묻어버릴 테니까!”라며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이 큰소리쳤습니다.

 

사실 차근차근 기본급과 잔업계산, 폭행 건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려 했으나, ‘사람을 묻는다’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사람들과는 대화의 진전이 없을 듯하여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손해 보상 요구보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 앞서는 이주노동자

 

결국 자우는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지난 화요일(26일)에 근무처변경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우는 퇴사를 하면서 마지막 달 급여와 그동안 발생했던 급여 차액을 돌려받지 못했고, 폭행에 대해서도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습니다. 근무처변경을 허락했던 고용지원센터에서는 그러한 문제는 ‘근로감독과’에 가서 해결하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임금체불과 폭행 건에 대해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 자우에게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 사람들 평소에도 저를 손이나 발로 때리곤 했는데, 이젠 보기도 싫어요.”

“그럼 월급 못 받은 거 하고, 그동안 월급 계산 틀린 거는요?”

“월급날까지 기다렸다가 사장님이 안 주면 그때 생각해 볼게요.”

 

자우는 그동안 회사에서 받았던 손해에 대한 보상 요구보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이들은 상종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여기는듯한 자우를 보며, 폭력을 행사했던 회사와 그의 고통에 대해 멀리 서서 방관자적인 모습으로 상처를 키운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직원들의 얼굴이 오버랩됐습니다.

2008.02.28 16:02 ⓒ 2008 OhmyNews
#베트남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고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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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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