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와 제도 개편만으로 개혁이 될까?

이명박 대통령과 새 정부에 바란다

등록 2008.02.29 13:14수정 2008.02.2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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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대통령의 당선 이후 2개월여 동안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의 의견이 봇물처럼 표출되어와  대부분 이슈가 진부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새 정권은 이제 막 출범했습니다. 더욱 애드 벌룬으로 띄워진 많은 정책 사항들이 야당과 국민 일각의 반대에 부닥치고 있어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해외 거주자로서 필자의 전공과 관심 분야는 사회과학입니다. 사회과학도로서 고국의 정치와 사회에 대하여 평소 늘 중요하다고 여겨온 소신이랄까 명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점이 역대 정권에서도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개혁안에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고, 그간 쏟아져 나왔던 그 많은 국민의 의견과 건의 가운데도 전혀 언급된 바 없어 글 제목을  감히 ‘이명박 대통령과 새 정부에 바란다’로 정하고 쓰기로 했습니다. 

 

이미 정해진 정책의 틀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그 집행과 실천 과정에서라도 반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 먼저 지적하고 싶은 점은 한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결정하는 것은 제도와 사람, 양자라는 것입니다. 제도는 사람이 움직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할지라도  성패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새 정부의  개혁 메뉴, 또는 개혁을 향한 로드맵에는  기구와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거의 전부고, 사람을 의미하는 행태에 대한 고려는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결국 새 정권은 과거처럼 개혁을 철저히 기구와 제도 중심으로 밀어나가게 되는 셈인데, 그렇다면 과거 기구와 제도가 없거나 미비해서(혹은 너무 많아) 하지 못했거나 국정이 잘 못 되었던 게 무엇인가 스스로 물어야 봐야 할 것입니다.  

 

 ‘보릿고개’로 회자되듯 의식주 해결마저 어렵고 모든 분야  제도가 낙후되어 있던 1950-60년대라면 경제와 제도를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의 경제도 거시적으로 본다면 선진권에 와있고 제도 또한 돈을 주고 사오거나 나가 배워와 국제적으로 뒤떨어진 게 별로 없습니다. .

 

그런데도 한국에 문제가 더 많아졌으면 많아졌지 수그러들지 않아 또 한번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에게 있다고 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체보다 한사코 나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을 먼저 생각하는 국민이 대다수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분야에 만연된 비리와 의사결정자들의 자리와  밥그릇 챙기기는 그 가운데 두드러진  측면입니다.  만연된 비리는 이번 장관 후보자들에게 쏟아진  부정 재산형성 의혹 하나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임명권자는 많은 후보 가운데 그래도 비교적 나은 사람을 뽑았을텐데도 이런 지경이니, 우리나라 고위직 인사와 명사들의 사리사욕은 가히 세계 정상급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사회풍토에서는 어떤 좋은 제도도 실효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런 풍토가 지배하는 한, 아무리 인사(人事)를 잘 해도 별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도 독불장군이 될 수 없으니까요. 지난 번 정권의 사례가 그 점을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사고는 일어납니다'(Accidents will happen).  가장 최근의  공장 현장 폭발, 숭례문 화재 등 끊이지 않는 커다란 사건들은 흔히 인재(人災)라고 불리는 대로 사업의 계획, 승인,  감독의 단계에게서 일어나는 책임 있는 인원의 직무태만이나 직권남용이 상당 부분 문제인데 거기에는 개인이익이 대개 개입되어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 극심한 빈부격차 등 잘 알려진 사회문제 해결책을놓고 학자와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장황한 이론과 이념, 제도, 정책을 내놓고 논쟁을 벌이지만, 그 뿌리를 파 내려가본다면 그렇게 장황해야 할 게 없습니다. 관련된 사람들이 전체를 위하여 조금만 사욕을 버려준다면  모두 잘 될 일들입니다.  법 하나만  잘 지켜주어도 잘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는 제도가 아니라 행태의 문제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새 정부는 제도보다도, 또는 제도와 함께 국민의 도덕적 수준, 국민성, 민족성, 또는 민도에는 문제가 없는가, 개인 행태의 총합인 사회풍토, 국민의 양심과 가치관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사람에 대한 접근, 즉 행태를 중심으로 문제를 보려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속한 자문 학자나 전문인 중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런 문제를 다루려는 기구나 방안에 대한 이야기 또한 한마디 없습니다. 지금 출범한 새 정부의 기류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리 말하면, 제도가 아닌 행태라는 인적 측면은 정부, 언론, 국민의 의제(agenda) 어느 쪽에도 아예 들어 있지 않습니다.

 

조령모개의 악습

 

기구 개편안을 처음 발표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한나라당 대변인들 설명에 따르면 정부 기구는 틀이고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정권은 새로운 틀과 새로운 기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 5년 후 탄생할 새 정권도 기구를 또 한번 확 뜯어 고쳐야 할 것 아닌가 합니다. 그 비용이 얼마인가요?  이번과 같은 소모적 논쟁과 편의적 타협의 대가를 포함해서 말이지요.

 

뿐만 아닙니다. 민주정치의 장점은 장래에 대한 예정성(따라서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제거)입니다. 양당제도와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는 행정관료제의 확립 또한 예정성 있는 사회를 위하여 필수 조건입니다.

 

매 정권마다  정부 기구가 대거 바뀌고, 그래서 자리가 불안하다면 공무원은 모두 일보다 다음 거취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대선 때마다 한 차례 치러야 하는 ‘줄서기’는 바로 그런 정치풍토의 부산물입니다. 

 

그간 적지 않은 숫자인 역대 정권이 출범 때마다 정부조직법을 손질 했습니다. 모두 국가이익을 좇아 그랬을텐데, 그렇다면 지금쯤은 누가 정권을 잡아도 대폭 개편이 필요 없을 만큼 틀이 잡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권마다 보는 국가이익이 그렇게 크게 달라 대폭적인 기구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은 참 해괴한 일이 아닌가요?

 

빈번한 기구개편은 해방 후 한글 맞춤법과 로마자 한글 표기법을 그렇게 여러 번 바꿔야 했던 국민성, 사회풍토, 조령모개(朝令暮改)의 악습과 일맥상통합니다. 선진국들의 실제를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새 정권이 들어서도 조직 개편은 매우 소폭이거나 거의 없어 국민들은 잘 모를 정도입니다. 새 정부 아래 기구 통폐합은 이미 기정 사실로 되어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이번 정권은 그릇을 잘 써서 다음 정권에 그대로 넘겨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간 한국에서 일어난 굵직한 문제들을 보면 그릇보다도 사람이 나빠 그렇게 된 사례가 더 많다고 봐집니다. 기구 개편의 이유로 정부의 ‘슬림화’가 거론되지만  역대 정권 대부분이 초기와는 달리 말기에 가서는 늘어난 기구와 공무원 숫자로 끝난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번에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지금 축소를 제안하고 대변하는 사람들은 그때 가서 뭐라고 해명할 것인지요? 과거처럼 시간이 지나버리면 이번에도 그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양대 정당 제도 영영 불가인가 

 

지루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제도보다, 또는 제도 못지 않게 행태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를 더 들어 강조하고자 합니다. 만연된 비리 말고도 지금의 한국 사회를 크게 왜곡시키는 것은 철새, 옷 갈아 입기와 같은 말로 회자되는 고질적인 기회주의, 연고주의, 지역주의 중심의 정치인데 이는 제도가 아닌 행태적 변수입니다.

 

앞에서 민주정치의 조건으로서 양대 정당 제도를 언급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헌정 역사가 이미 60년. 그런데도 이번 대선 과정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난 사실은 한국에서 양당제도의 정착은 영영 불가능하다는 암담한 전망입니다. 역시 제도가 아니라 국민행태가 문제입니다. 

 

정권 말기에 재집권이 어려워지면 차기를 기다려 준비하기보다 모두 살길을 찾아 뿔뿔이 당을 떠나 추잡한 이합집산을 벌이는 기회주의 정치행태와 그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국민행태가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는 아무래도 사회구성원 간 취약한 응집력(cohesiveness) 부재를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한국인들의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 부재, 부자 미워하는 풍토, 전체보다 자기 이익이 관철 되지 않으면 들고 일어서는 것, 모두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봐집니다. 새 정부도 국민통합을 구호로 내놓았습니다만 이 또한 응집력의 문제이며 행태적 접근을 통해서만 달라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어느 쪽을 해도 안 된다면

 

아래는 제도보다 행태, 또는 제도와 함께 행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생각해 본 몇 가지 사례들입니다.

 

(1) 널리 외국의 사례를 원용하여 만든 한국의 헌법은 원래 조문에 관한 한 세계에서 최고(군사정권 때 독재 조항을 빼고는)였습니다. 그런데도 여러 차례 개정이 가해졌고, 지금도 툭하면 헌법개정 논의입니다. 

 

이런 빈번한 개헌이 한국의 정치와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세계 지도를 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통령 책임제와 내각책임제 중 어느 쪽을 하든 민주정치가 비교적 잘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아무 쪽을 해도 잘 안 되는 나라가 있습니다. 제도는 장치일 뿐 그 성패는 국민이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2) 교육정책으로 말한다면 한국만큼 이것 저것 안 해 본 나라가 드뭅니다. 새 정권마다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을 한가지 정책을 밀어온 선진국들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교육과 언론의 개혁 논의 때마다 등장하는 논란이 규제냐 자율이냐입니다. 하지만 배운 부모들이 내 자식만 잘 봐달라며 교사에게 촌지를 내밀고, 채점관이 된 실기 교수, 언론인과 공무원이 금품을 받는 게 놀랍지 않은 사회라면 어느 쪽을 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3) 정부 정책은 실제적으로는 예산 집행으로 구체화됩니다. 잘 짜인 훌륭한 예산안과 지침에도 불구하고 돈이 정책과 사업 목적과는 거리가 멀게 쓰여지고 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줄줄이 새는 정부 예산의 사례가 그것입니다. 예산 집행은 사람이 합니다.

 

(4) 부동산 투기와 탈세를 억제하기 위하여 정부가 강력한 법규정과 행정 수단을 동원하여 단속해왔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웬만큼 잘 살게 된 중상류층에 속하는 국민이라면 전체 사회를 위하여 할 좋은 생각과 일도 많을 텐데 더 갖겠다며 투기 현장에 구름처럼 모여드는 사회라면 어떤 법과 조치로도 방법이 없습니다.

 

부존자원이 적은 한국은 인적 자원에 매달려야 한다고들 입을 모으지만, 그 인적 자원은 경제적 측면뿐이지 인격(integrity)적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어렵습니다. 

 

이런 행태적 문제에 대한 단편적인 지적과 개탄은 많지만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장려,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연구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해결책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알려줍니다. 과학기술 개발연구를 위한 투자를 의미하는 R&D(research & development) 개념을 행태 연구에도 부분적으로나마  도입할 만합니다만 경제, 경제하는 소리에 밀려 전혀 관심 밖입니다. 

 

행태와 직접 관련되는 것이 교육이지만, 한국에서 교육 이슈는 대학입학전형, 취업 전망과 준비, 영어 공교육, 대학의 자율화와 같이 행태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교육제도나 학원 경영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인수위 때도 그렇고 새 정부 각료 명단에도 '잘못된 행태는 그대로 두고 제도만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까'를 물을 만한 참신한 교육전문가나 행태학자가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필자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강한 개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크게 달라질까 의구심을 갖게 되는 이유입니다.

 

매뉴얼 공부만으로는 안돼

 

위에서 제도학과 행태학이란 말을 썼습니다. 필자 나름대로의 이분법입니다(필자가 아는 한 다른 사람이 안 쓴 개념입니다). 한국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비자연 또는 인문학 분야 공부가 필자의 기준에 따르면 거의 모두 제도학에 속합니다. 문명사회를 위한 사회적 제도와 장치와 그 운영에 대한 공부로서 대부분 매뉴얼 익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법학은 대표적입니다. 법은 대개 제도를 의미하는 단체와 기구의 설립과 그 운영의 기준과 지침을 자세히 적은 문서들입니다. 또 법은 사회 질서를 위하여 구성원이 지켜야 할 행동규범을 정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경제학, 정치학, 행정학, 경영학으로부터 회계학, 보험학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경제학 개론에는 은행제도에 대한 장(章)이 들어 있습니다. 무역제도, 회계제도 등 모두 제도에 대한 공부입니다.

 

행정학 개론을 읽으면 반듯이 정부 기구 및 조직에 대한 긴 설명이 나옵니다. 기구 내 상하 통솔의 문제, 즉 의사결정자 간 명령과 복종 관계를 다룬 장도 들어 있습니다. 대학 전공이 정치학인 필자도 한때 배운 것이 모두 제도학에 속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정부 형태로서 대통령책임제와 내각책임제의 장단점, 영국의 의회와 미국의 연방 정치제도 등 대부분 제도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제도가 행태와 관계가 없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제도를 만들 때는 사람은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은 잘 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제도는 행태 변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법 규정이 물론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그 법을 따라 행동해주면 사회는 잘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보장이 없고 법이 모든 구석을 다 커버할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잘 따라 행동하는 개인과 사회 집단, 그렇지 않는 개인과 사회 집단이 있습니다. 법규정을 어떤 쪽으로 만들고 고치든 한사코 자기 이속을 좇아 허점만을 찾는 개인과 집단이라면 규정은 악용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특정 시대와 집단에 속하는 사람의 평균적인 행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필자는 그런 공부를 행태학이라 부르는데 그 가운데서도 행태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럼으로서 문제해결을 직접 돕는 공부와 연구 활동을 일차 대상으로 합니다. 

 

한국의 인문학(인문사회과학이라고 부를 때도) 가운데는 그런 과학적 설명(explanation)보다 당위론(當爲論)과 문제와 현상의 기술(記述, description)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이 구분은 두 가지 인문사회 분야 연구방법론인 descriptive studies와 explanatory studies과 일치한다. 후자는 과학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밝히는 연구, 바로 사회과학이다).

 

‘인간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쓰고 말한다면 당위며 지당한 말씀입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빈부의 격차’라고 쓴다면 문제의 지적이며 기술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술적 공부와 이론만으로는 문제해결은 어렵습니다. 

 

사유와 가치와 신앙의 영역이 아닌 현실세계는 과학이 지배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외가 있지만(예컨대 정신이상자), 인간은 합리적(즉 과학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개인 또는 집단의 행동에 특징이 있다면, 반드시 거기에는 그럴만한 과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과학적 방법으로 찾아내는 것이 설명적 연구며, 그것이 물론 사회과학의 몫입니다.  

 

왜 요즘 인간은 정직하지 않은가? 왜 돈을 제일의 가치로 치는가?  자꾸 넓어지는 빈부의 격차는 무한한 개인 욕심 때문인데, 왜 사람들은 그런가? 와 같은 연구 과제를 정하여 가정을 세우고,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 결론과 대안을 찾는다면 사회과학적 연구며 설명입니다. 그런 연구가 당장 문제 해결을 가져오지는 않아도, 적어도 처방과 대안을 위한 올바른 길을 밝혀줍니다. 

 

이런 연구가 한국에 드물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심리학자, 윤리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의 논문, 언론에 실리는 사설과 칼럼을 읽고 들어 보면 먼저 문제와 현상의 기술을 되풀이하고, 잘해야 경륜과 직관을 바탕으로 뭘 이렇게 해야 한다, 저래야 한다 식으로 끝을 맺는 게 보통입니다. 

 

과학성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안 될 게 뻔한데도 잘 되게 ‘기대해 본다’ ‘바란다’ 와 같은 결론을 내리는 류도 대부분입니다. 

 

과학적인 것과 실증적(empirical, 선험적 또는 경험적이라고도 함)인 것, 수량적(quantitative)인 것은 동일체는 아니나 서로 깊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00% 과학적이 될 수 있으려면 변수를 잴 수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과학적이 되려면 경험(실감)할 수 있어야 하므로 그렇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제안한,  한국에서 고등학교만 마치면 모두 영어 회화가 가능케 만든다는 영어 공교육 프로그램을 예를 들어 말해보고자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효과를 100% 과학적으로 예측할 도리는 없습니다. 적어도 10년 걸쳐 진행 될 전 과정을 지금 실험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업의 성공을 위한 전제로서 계획이 과학적 타당성을 말한다면 과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회화와 작문 중심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한국 학생들의 사례, 같은 과정을 영어사용국가에서 거친 한인 학생들의 사례를 모으고 비교하는 등 상당 수준의 실증적 조사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지난번  발표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대선이 끝난 직후 구성된 인수위의 몇 사람 전문가의 의견, 아니면 심지어 대통령 당선인의 직관이 그런 거창한 결정의 배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한국의 졸속주의, 성과주의,  ‘빨리빨리’의 폐단을 성토하는 소리가 높더니 이 영어 공교육 계획이야말로 그런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막대한  예산이 들고, 교육구조를 크게 흔들게 되는 영어교육 개혁을 종합적인 리서치 한번 없이 몇 사람이 결정할 수 있습니까?

2008.02.29 13:14ⓒ 2008 OhmyNews
#부스림화 #행태연구 #인적자원 #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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