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두발 토함산에 올랐어라

피가 도는 석굴암, 그 천년의 돌이 웃는다

등록 2008.03.01 13:09수정 2008.03.0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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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토함산 석굴암

토함산 석굴암 ⓒ 송유미

▲ 토함산 석굴암 ⓒ 송유미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은 석굴암
 
아, 석굴암 몇 년 만에 오는가. 정말 기억에 가물가물한 석굴암. 수학여행 때 오고 못 와 본 것 같다. 그런데 석굴암 너무 변했다. 아니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석굴암 경내에 들어갈 수 없다는 안내문이 있다.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야 제 멋이 나는 석굴암인데, 더구나 새벽에 토함산에 올라와서, 부처님 이마에 비추는 동해 일출을 구경해야 장관인데, 너무 오랜만에 너무 늦게 올라왔다.  
  
a 토함산 품에 안긴 석굴암

토함산 품에 안긴 석굴암 ⓒ 송유미

▲ 토함산 품에 안긴 석굴암 ⓒ 송유미
입장 불가한 석굴암 밖에서 빙빙 돌며 동해 바다 내려다 보니 서정주 시인의 시 하나 생각났다. '석굴암에 기어들어가 보니까/ 역시 그것은 우리의 제일 큰 어른 대불이었다/ 선덕 여왕의 식지의 손톱께를 지그시 그 엉덩이로 깔아 자지러게 웃기고, 또 저 뭇 왕릉들이 저희 하늘로 가 버리는 것을/ 그 살의 동력으로 말리고 있는 것은…' 그러나 석굴암 경내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이런 시가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a 석굴암 관람은 이거 보고 만족해야 하나요 ?

석굴암 관람은 이거 보고 만족해야 하나요 ? ⓒ 송유미

▲ 석굴암 관람은 이거 보고 만족해야 하나요 ? ⓒ 송유미
관람 불가의 이유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석굴암 안내문에 의하면 '삼국유사'에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건립하였다고 나와있다고 한다. 전생의 부모란 곧 동해에 장골 또는 산골된 신라의 김씨 왕족들을 이른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때 재상이던 김대성이 처음 건립하였는데 건립 당시 '석불사'로 불렀다. 이 시대는 석굴암 외 불국사, 황룡사 대종 등 많은 문화재들을 만든 신라예술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a 모조 석굴암이라도 만들어 구경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모조 석굴암이라도 만들어 구경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송유미

▲ 모조 석굴암이라도 만들어 구경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송유미
 
후생에는 그 할머니 '효자손' 사러 꼭 와야지
 
그러나 아무리 석굴암 바깥에서 빙빙 돌아도, 석굴암 속으로 입장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으면 석굴암 여행을 처음 온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그때는 사진이 너무 귀해서 이곳에 와서 한 사진사 아저씨에게 집 주소 적어주고, 그 독사진을 한달 후에야 받았다. 
 
그런데 엄마가 준 수학 여행 용돈이 너무 적어서, 아니 사진비가 그때 너무 비싸서, 나는 외할머니에게 수학여행 기념품으로 사오겠다고 약속한, 그 할머니 '효자손'을 사지 못했다. 아니 수학여행이 너무 즐거워서 효자손 따위는 생각하지 안 했으리라.   
 
위대한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지었듯이, 나는 다시 태어나면 이곳에 와야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사다드리겠다던, 그 효자손을 꼭 사러 다시 와야 한다.
 
a 신라의 꿈과 솜씨 석굴암

신라의 꿈과 솜씨 석굴암 ⓒ 송유미

▲ 신라의 꿈과 솜씨 석굴암 ⓒ 송유미
 
돌에도 피가 돈다. 나는 그것을 토함산 석굴암에서 분명히 보았다. 양공의 솜씨로 다듬어낸 그 우람한 석상의 위용은 살아 있는 법열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인공이 아니라 숨결과 핏줄이 통하는 신라의 이상적 인간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신라인의 꿈속에 살아 있던, 밝고 고요하고 위엄이 있고 너그러운 모습에 숨결과 핏줄이 통하게 한 것이 불상을 조성한 희대의 예술가의 드높은 호흡과 경주된 심혈이었다.
 
<영혼과 고독을 위한 단상> 중 '조지훈'
 
a 한 발 두 발 토함산 올라

한 발 두 발 토함산 올라 ⓒ 송유미

▲ 한 발 두 발 토함산 올라 ⓒ 송유미
토함산은 새벽 해를 안고 올라야…
 
우리 민족이 이룩한 위대한 문화 유산을 훼손없이 영구히 보존하자는 뜻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말 석굴암 경내 보지 못하고 내려오니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불가에서 말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이란 이런 것인지 모른다. 보지 못해도 봐야 하는 것, 만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 사라진 추억 속의 석굴암에서 느낀 그것들을 다시 만나야 할 것이다.
 
길 양쪽에는 눈이 녹지않고 쌓여 있다. 개나리들이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이제 곧 개나리가 활짝 피면 이 길은 장관일 터다. 우리 일행인지 다른 일행인지 앞 다투어 산을 내려가면서 "석굴암 입장료 4000원이면 너무 비싸네. 진짜는 아니라도 모조 석굴암이라도 만들어서 구경 시켜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하는 소리를 듣는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 속에 품었어라
세월도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
터져 부서질 듯
미소 짓는 님의 얼굴에도
천년의 풍파 세월 담겼어라
 
바람 속에 살았어라
흙이 되어 남았어라
 
(중략)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중략)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토함산> -송창식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17일 다녀왔습니다.

2008.03.01 13:0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지난 2월 17일 다녀왔습니다.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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