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랑의 습관, '선물'

등록 2008.05.03 09:21수정 2008.05.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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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5년에 나온 선물. 새댁 노영심이 이웃과 나눈 이야기가 담겨있다.

2005년에 나온 선물. 새댁 노영심이 이웃과 나눈 이야기가 담겨있다. ⓒ 열림원

2005년에 나온 선물. 새댁 노영심이 이웃과 나눈 이야기가 담겨있다. ⓒ 열림원

햇살 좋은 봄날. 달력에는 평소보다 빨간 글씨 몇 개가 더 그려져 있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많은 5월, 지갑은 얇아져도 마음만은 두툼해 집니다.  

 

선물을 하긴 해야 하는데, 정작 무얼 사야 좋을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생각나는 책이 있습니다. 노영심의 <선물>과 <보이지 않는 선물>. 두 권 모두 그녀가 지인들에게 선물한 이야기를 담은 수필 모음입니다.

 

딱 10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어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개정판이 나왔지만 십년 전 느낌 그대로 누런 표지의 첫 번째 책 그대로 읽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방송에서 보아온 노영심의 느린 말투가 그대로 녹아있는 책 <선물>을 만난 뒤로 저의 선물들은 가벼워지고, 사소해지고, 참 쓸모있다는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다 그녀 덕분입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괜히 부담스럽기 십상입니다만, 책에는 노영심이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임권택 감독이나 가수 이문세, 연기자 박상원 등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하는 선물이 구체적인 이유와 일화로 설명됩니다. 그 글들은 시아버지나 남자 선생님들께 선물하기 전에 힌트를 줍니다. 또, 시어머니로부터 주고 받는 선물 이야기는 고부 간에 어떻게 정을 나누는 게 좋을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기도 하지요.

 

정월대보름이 아내의 생일인데 자주 잊는다는 임권택 감독에게 노영심은 철물 가게에서 특별히 주문한 작고 귀여운 망치와 부럼을 보냅니다. 첫번째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금반지 대신 '돌처럼 단단하고 야무지게 크라'는 의미를 담아 돌도장을 선물하고, 새 살림을 시작하는 신혼부부에게는 두 사람의 이름과 새 주소가 적힌 핸드메이드 명함을 선물합니다.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는 그녀의 선물들은 세심하게 주변 사람들의 삶을 살피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일테지요.

 

받는 사람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쉽게 생각하지 못할 깜짝 선물을 준비하는 노영심의 예쁜 노하우가 담긴 책들을 읽고 나면, 헝클어진 인간관계나 소원해진 사람 사이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그러나 지금은 연락이 뜸해진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우리 집 근처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도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한 남자후배에게 스케치북에 반찬 만드는 순서와 재료를 그려 넣고, 아내에게 칭찬받을 숨은 맛집과 플라워 카페 약도를 그려서 보내주고 싶습니다. 

 

일년 가까이 찾아뵙지 못한 선생님께는 맑은 꽃향기 퍼지는 매화차를, 형식적인 선물과 외식 대신 부모님들께는 직접 포장한 생화와 카드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어린이날이 뭔지 모를테지만 딸아이 쿠하를 위해서 사탕 목걸이도 하나 만들 작정입니다.  

 

사람 사이의 마음통로를 윤기나게 반짝반짝 닦고 싶을 때, '오래된 사랑의 습관' <선물> 두 권을 읽어보시길. 그리고 5월이 가기 전에 짧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 마실을 다녀오시길. 그리하여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마냥 행복할 절묘하게 멋진 선물로 즐거운 봄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2008.05.03 09:21ⓒ 2008 OhmyNews

노영心의 보이지 않는 선물 - 마음에 대한 특별한 명상

노영심 지음,
열림원, 2005


#선물 #노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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