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이런 작품들이 있을 줄이야..."

[해외리포트] 리투아니아 최초의 북한 현대미술전시회, 성황리에 진행 중

등록 2008.03.10 10:21수정 2008.03.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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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정균 '보존거리의 가을'(보존거리는 개성 남대문으로부터 송악산 기슭까지 2㎞ 정도 되는 구간이며 전통 기와집들로 이루어진 개성의 거리다). 유화, 2004년.

최정균 '보존거리의 가을'(보존거리는 개성 남대문으로부터 송악산 기슭까지 2㎞ 정도 되는 구간이며 전통 기와집들로 이루어진 개성의 거리다). 유화, 2004년. ⓒ 전시회 조직위원회 제공


얼마 전 미국이 평양에 발걸음을 했다. 그러나 이번엔 힘의 논리 대신 음악이라는 범인류적 언어를 앞세운 행보였다. 당연히 미국과 북한의 이번 만남은 아주 평화적으로 시작하여 평화적으로 막을 내렸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에서 열린 뉴욕 필하모니의 평양 공연은 한반도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곳 발트 3국에서도 크게 다뤄졌을 만큼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음악으로 통일과 화합의 문을 여는 문화 외교는 많은 이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북한이 서방에 문을 여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1월 25일부터 리투아니아에서 최초로 북한 현대미술 전시 중

a  북한 현대미술 전시회 포스터.

북한 현대미술 전시회 포스터. ⓒ 전시회 조직위원회

그런 희망은 뉴욕 필하모니의 역사적인 공연이 끝난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엔 북한이 밖으로 나섰다. 미국인들의 음악 외교가 하루만에 막을 내린 것과 달리, 북한의 문화 나들이는 여러 달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리투아니아에서 성대하게 열리고 있는 북한 현대미술전이 그것이다.

북한 현대미술전은 수도 빌뉴스의 유명전시관 중 하나인 실용예술박물관(Lietuvos Dailes Muziejus, Lithuanian applied museum)에서 1월 25일부터 열리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예술'이라는 부제를 걸고 4월 2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행사는 리투아니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북한 현대미술 전시회다.

이 뜻 깊은 전시회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일로나 마제이키에녜씨는 전시회가 시작된 후부터 어린이와 학생들이 단체 관람할 정도로 시민들이 행사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 행사에 대한 30분 정도의 특집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기도 했으며 로이터통신 등 외신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주었다.

수교는 했으나 썰렁한 관계이던 리투아니아와 북한


이번 전시회는 리투아니아에서 북한과 관련해 열리는 최초의 행사다. 이전까지 리투아니아는 북한 관련 뉴스, 그리고 현지에서 열리는 국제경기에 북한 선수들이 참가하여 얼굴을 보여주는 정도의 접촉만을 북한과 유지했다. 리투아니아에는 북한대사관도, 북한 관련 행사도, 유학생도 전혀 없다. 하긴 아직 한국의 공관도 전혀 없기는 마찬가지다.

리투아니아 외무부의 아시아-오세아니아부 담당자에 의하면 리투아니아는 북한과 1991년 9월 25일 공식적으로 수교했지만, 실질적인 외교관계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스웨덴에 있는 북한대사관이 리투아니아 외교를 관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현재 북한과 외교를 담당할 대사관을 지정해 놓지 않은 상태다. 리투아니아에게 북한은 외교적으로 열외인 셈이다. 법적으로 분쟁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유럽연합을 통해 처리하도록 조치해 놓은 것이 전부다.


그러므로 리투아니아에도, 북한에도 양국의 상주 외교관은 없다. 경제 활동도 지극히 적다. 리투아니아에서 북한으로 수출되는 상품은 전무하며, 리투아니아는 북한으로부터 고무나 플라스틱류를 매년 수입하는 정도다. 생고무와 고무 관련 제품이 수입품의 약 79%를 차지한다.

리투아니아가 지난해에 9개월 동안 북한에서 수입한 물품의 금액은 26만5천 리타스, 우리 돈으로 대략 11억여 원이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그나마 2006년 수입액인 4만9500 리타스와 비교하면 5배 정도 늘어난 수치다.

a  선우영 '금강산 만물상'(2005년).

선우영 '금강산 만물상'(2005년). ⓒ 전시회 조직위원회 제공


'신비한 나라'이던 북한, 이번엔 미술로 리투아니아에 다가오다 

소련 시절에도 리투아니아와 북한의 교류는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폴란드, 옛 소련, 동독 등 사회주의권 중심 국가들에 왕래하는 북한 사람들은 아주 많았지만, 당시 리투아니아는 소련의 변방에 속했기 때문에 북한과 정치, 경제적으로 직접 접촉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특이한 건 리투아니아인 중에서 북한과 평양의 이름을 아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정치, 경제 이외 교류 활동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나이 든 지인들 중에는 옛 소련 시절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평양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리투아니아인들에게 북한은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곳 중 하나로 보였던 것 같다. 한국의 전래동화가 북한을 통해 전래돼,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에서는 이미 약 20년 전에 한국의 민담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담집 속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들은 모두 황비홍 같은 외모, 즉 민머리를 기본으로 한 상태에서 뒷머리만 땋은 꽁지머리를 하고 대나무 모자를 쓴 모습이다. 신비감을 느끼며 상상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소련에서 독립한 후에도 리투아니아에서 북한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는 통로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정보 부재 속에서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북한이 미술이라는 소재로 리투아니아 한가운데로 찾아왔으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a  1975년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발간된 한국 전래동화집의 삽화들. 김씨, 호동이, 찬수 등 친숙한 한국 이름이 등장하기는 하나, 기자는 전혀 내용을 들어본 바 없는 동화들이다. 에스토니아 화가들이 그린 삽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발트 지역 사람들의 상상에 등장하는 중국인들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1975년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발간된 한국 전래동화집의 삽화들. 김씨, 호동이, 찬수 등 친숙한 한국 이름이 등장하기는 하나, 기자는 전혀 내용을 들어본 바 없는 동화들이다. 에스토니아 화가들이 그린 삽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발트 지역 사람들의 상상에 등장하는 중국인들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예술에 대한 애정은 정치를 초월한다

큰 관심 속에 열린 1월 개막식 때는 리투아니아를 관할하는 정인찬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 리투아니아 주재 네덜란드 대사, 리투아니아 공화국 국회의장 대리도 참석했다. 100여 점이 전시되고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행사이지만, 정작 이 행사는 리투아니아, 북한 양국의 외교적 성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쿠스 브루르센이라는 네덜란드 사업가가 직접 모은 수집품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100% 민간 차원 행사다.

브루르센은 업무 때문에 여러 차례 북한을 다니면서 북한의 예술품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북한 문화부와 수많은 접촉을 통해서 북한의 현대예술품을 구매하는 한편 외국으로 가지고 나오는 데 필요한 허가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는 사업 동료들과 스프링타임 아트 (Springtime Art)라고 하는 재단을 설립하여 북한 예술품 구입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수집품에 개성콜렉션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개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인들이 이 국경 근처 도시에서 희망을 양산하는 남북의 합의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a  김성민 '노들강변'(1996년).

김성민 '노들강변'(1996년). ⓒ 전시회 조직위원회 제공


"북한에 이런 작품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브루르센은 수집한 작품이 2000점 가까이 되자 이를 대중에게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평양에서 가져온 작품들을 맨 먼저 소더비 경매시장에 내보였다. 그런데 소더비 관계자들의 반응은 예상밖이었다. "우린 북한에 이런 작품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이후 대영박물관 쪽에서도 북한을 방문, 작품을 직접 구입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난관을 뚫고 수집된 그의 개성콜렉션에는 유화, 동양화, 수채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모여 있다.

빌뉴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 현대미술전시회에는 김성희, 정창모, 문화춘 등 만수대예술관에서도 진열되었을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화가들을 비롯해 북한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이 총망라되어 있다. 빌뉴스 전시장에 걸려 있는 작품들은 정치적 선동이나 체제 선전 등의 메시지를 전혀 담지 않고 있다.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신비로운 자연과 수줍은 여인들의 미소가 아름다운 북녘 땅과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매료되고 있다.

이 행사가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이유로는 수집가의 부인이 리투아니아 사람이기 때문에 전시장 선정이나 홍보활동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물론 수집가가 오랜 기간 동안 리투아니아에서 사업을 하기도 했다.

북한 현대미술전시회는 4월 중순 리투아니아 일정이 끝나면 라트비아의 리가,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a  김성민 '옹헤야'.

김성민 '옹헤야'. ⓒ 전시회 조직위원회 제공


a  리동준 '여인의 초상'(조직위원회에서 임의로 붙인 제목이다). 유화, 2007년.

리동준 '여인의 초상'(조직위원회에서 임의로 붙인 제목이다). 유화, 2007년. ⓒ 전시회 조직위원회 제공

#북한현대미술전시회 #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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