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9시쯤, 원정대는 호텔(박씨네 호텔)을 빠져나왔다. 흔들리지 않은,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으려고 현관 앞에서 '똑딱이'를 꺼냈다. 한 대여섯 장 찍었을까. 손가락 끝이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했다. "워~ 추워라" 탄성이 절로 났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옷 속을 마구 파고들었다. 당시 기온은 섭씨 영상 1도. 수치만 보고 "웬 엄살이냐"고 생각해선 안 된다. 독일 날씨 습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곳은 습도가 높아 옷을 많이 껴입어도 추위가 스며든다. 그래서 더 춥다. 가이드는 "백만 년(?) 만에 햇살이 '쨍'하게 비추는 화창한 날"이라고 했지만, 습한 느낌은 여전했다.
오늘의 일정은 '드레스덴', '바스타이'를 둘러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쉽게 말해, '관광'이다. 흠흠, 잠깐 도시 소개를 해보겠다. '드레스덴'은 독일 남동쪽에 있는 작센 주(州)에 있는 도시다. 옛 동독 지역이라 그런지, 그다지 화려하진 않다. 평소엔 우중충한 날씨이지만, 원정대가 도착한 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보다시피 햇빛도 쨍쨍했다.
이곳은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참 아름다운 도시다. 국립 오페라 극장 '젬퍼오퍼', '츠빙거(Zwinger) 궁전' 등 유명한 건축물이 있는 곳이다. 사진은 좀만 있다가. 걱정마라. 다 찍어왔다. 일단 설명에 "집중, 집중".
영화제가 열린 '베를린'에서는 남쪽으로 약 189km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보통 2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아, '드레스덴'은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이날 현지 가이드로 만난 표세구(29)씨도 피아노를 전공하는 유학생이었다.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외모 덕에, 원정대 여성들이 급(急) 달아올랐다. 결혼 5년 차, 미디어 다음(daum) 문주원 과장님도 예외는 아니었다.(흠흠)
낮 12시쯤, 드레스덴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나 이곳 유학생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꺼낸 첫 마디, "한국 사람요? 엄청 많아요" 그는 "매년 학기 초만 되면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국 학생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대부분. 학교보다는 좋은 교수가 있는 학교로 가고 싶어 한다고 그는 전했다.
매달 드는 돈도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학비와 교통비(학생증이 있으면)는 일단 공짜, 집세·밥값 등만 따지면 한 달에 100만원이 채 안 든다고 했다. 이 정도면, 지방에서 서울에 와 대학을 다니는 것보다 더 싸다. 나이만 좀 더 어렸어도, 한 번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일본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영화 <샤인>(shine) 등 피아노에 대해 나름(?) 친숙하기에, 보다 심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에잇! 아니다. 사실, 아는 척 좀 해보려고 했다.
"혹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칠 수 있어요?" 수줍은 듯 그는 "네 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우오~오"라며 탄성이 쏟아졌다. 여성 원정대원들의 관심도 후끈 달아올랐다. 약 20여 분, 식사 시간에 나눈 짧은 대화였지만,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다.
오전 1시 30분쯤, 원정대를 태운 버스는 '츠빙거 궁전'에 도착했다. 독일 말로 '츠빙거'는 사나운 짐승을 가두는 우리를 일컫는 말인데, 그렇다고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늑대나 호랑이를 가두어 두고 정적들을 잡아넣어 뜯어먹게 하진 않았다.
궁전 입구 근처에는 국립 오페라 극장 '젬퍼오퍼'가 그 위엄을 자랑한다. 앞에 말을 타고 있는 이는 '작센 왕'이다. 그 옆에는 드레스덴의 자랑, 바로크 양식의 결정체, '츠빙거 궁전'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성벽 위에 올라가 궁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조각상 하나하나에서도 장인 정신 느껴진다. 잠깐 둘러봤을 뿐인데,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2차 대전 중에 드레스덴의 파괴 명령을 받은 연합군 조종사가 하늘에서 본 도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명령을 어기고 그냥 되돌아갔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안타깝게도, 건물 곳곳엔 타거나 부서진 흔적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세계 2차 대전으로 건물 상당수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도 곳곳에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최대한 원본 그대로 복원시키려고 노력한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대폭격 속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벽화, 역대 군주의 기마 행진을 표현한 '군주의 행렬'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벽화는 가로 102m, 세로 8m 길이로, 옛 왕궁 마구간 외곽 벽면에 붙어있다. 그냥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가 도자기 타일로 돼 있다. 이를 위해, 마이센 지역에서 만든 질 좋은 도자기 타일이 무려 2만5천개가 쓰였다고 한다.
정신없이 돌다보니 어느새 '잘생긴' 가이드와 헤어질 시간이 됐다. 아쉽지만 작별 인사를 나눴다. "꼭 몇 년 뒤에는 멋진 피아니스트가 돼 돌아오세요. 그때 꼭 연주회 보러 갈게요" 수줍은 이 청년,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푹 숙인다. '안녕, 드레스덴이여~'
원정대는 버스를 타고 다시 30여 분을 이동, 국립공원 '바스타이'(bastei)에 도착했다. 이곳은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하다. '작센의 스위스'라고도 불린다. 이런 미사여구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냥 눈으로 보라. 산 곳곳에 솟은 바위기둥, 푸르고 울창한 나무, 그리고 S자형으로 내리흐르는 '엘베강'(elbe R.·체코 말로는 라베강(labe R.)이라고 한다)까지.
한 폭의 잘 그린 그림을 보는듯한 착각이 든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이런 곳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크게 숨 쉬기. "흠~~~파아~~~" 폐가 터질 정도로 숨을 마셨다 뱉었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후 4시40분. 원정대는 마지막 여행지인 체코 '프라하'로 향했다.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기분에 설레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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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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