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은 동네 우체국 계단에 핀 목련화

등록 2008.03.11 12:27수정 2008.03.1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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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목련꽃 우체국 앞에서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쓴다. ⓒ 송유미

▲ 3월의 목련꽃 우체국 앞에서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쓴다. ⓒ 송유미
3월의 목련꽃이 묻닫힌 우체국(부산시 해운대구 중2동) 앞에 피었습니다. 9시만 되면 셔터가 올라가서 편지를 접수하는 우체국이 아니라 영영 문을 닫은 우체국 앞에 피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일찍 핀 3월의 목련꽃, 아직 활짝 피지 않았지만, 활짝 핀 목련보다 더 순수하고 청결합니다. 이 목련화의 꽃말은 '숭고한 정신'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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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목련꽃 하얀 아기새들이 날아와 재줄 대는 듯. ⓒ 송유미

▲ 3월의 목련꽃 하얀 아기새들이 날아와 재줄 대는 듯. ⓒ 송유미
목련은 겨울에 잎이 다 지더라도 씨 든 꽃봉오리는 떨어지지 아니하므로 '거상화(拒霜花)
란 이름을 따로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초강목'에는 '이 꽃이 곱기는 연화와 같은 고로 목부용이라 목련(木蓮)이라 이름 한다고 적혀 있고, 8,9월에 비로소 꽃이 피는 고로 거상화라고 적혀 있습니다. 두 설이 달라서 어느게 옳은지 모르지만, 목련은 예로부터 이름이 높은 꽃입니다. 목련화를 일러 꽃의 군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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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그리움을 쓰게 하던... 간판 내려진 동네 우체국 두 그루 목련 꽃만 편지를 씁니다. ⓒ 송유미

▲ 내게 그리움을 쓰게 하던... 간판 내려진 동네 우체국 두 그루 목련 꽃만 편지를 씁니다. ⓒ 송유미
꽃빛도 홍. 황. 백 등 여러가지 핍니다. 순수한 우리의 목련은 백색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목련은 다른 색보다 하얀 색이 가장 고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개성 천마산 대흥동에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진 목련화가 성개하면 맑은 향기가 꽃을 찌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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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새들의 지저귐 같은 하얀 목련 꽃의 순수한 사랑 그립다 ⓒ 송유미

▲ 3월의 새들의 지저귐 같은 하얀 목련 꽃의 순수한 사랑 그립다 ⓒ 송유미
'철학 개론일랑 말자/ 면사포를 벗어버린 목련이란다//지나간 남풍이 서러워/익잖은 추억같이 피었어라/ '베아트리체'보다 곱던 날의 을남이는/ 흰 블라우스만 입으면 목련화이었어라.//황홀한 화관에//사월은 오잖는 기다림을 주어 놓고/ 아름다운 것은 지네 지네/호올로'  <목련화>-'조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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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은 감잎과 같고 꽃은 백련과 같고 봉오리는 도꼬마리와 같고 씨는 빨가므로 산 사람이 이름하여 목련이라 한다.-'김시습' ⓒ 송유미

▲ 잎은 감잎과 같고 꽃은 백련과 같고 봉오리는 도꼬마리와 같고 씨는 빨가므로 산 사람이 이름하여 목련이라 한다.-'김시습' ⓒ 송유미
파란 하늘에다 촉을 세워 편지를 쓰는 3월의 목련꽃. 문닫힌 우체국에 핀 목련 두 그루의 나이는 정말 많아 보입니다. 나는 유행가 가사처럼 우체국 계단에 앉아 보낼 수 없는 그리움을 쿡쿡 연필에 침을 묻혀 적어 봅니다. 그런데 정말 목련화가 활짝 피지 않아서 인지 새들이 날아와서 지줄 대는 풍경같습니다.
 
목련은 남극의 식물이라 북극 지방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불교의 상징화이기도 한 하얀 목련, 그러나 이 깨끗하고 순결한 목련은 활짝 피는 순간, 세상에 물든 사람처럼 더럽게 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한없이 아쉬움을 주는 목련화. 순수한 소년과 소녀들과 세상에 물들지 않은 시인들...그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목련화 곧 내일이면 성개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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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살리라 너는 스스로 충만한 샘물 ⓒ 송유미

▲ 맑게 살리라 너는 스스로 충만한 샘물 ⓒ 송유미
꿈꾸는 듯한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나는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한즉한 목장엔 그득하니
곱디 고운 꽃들이 피어 있다
누구에게 주려는 생각도 없이
나는 꽃들을 꺾어 본다.
'양치는 목동의 탄식'-'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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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 송이 무엇을 마냥 갈구하는 산 염불이랴 꿈속의 꿈인양 엇갈리는 백년의 사랑 흙비 뿌리는 뜰에 언덕에 '목련'-'박용래' ⓒ 송유미

▲ 송이 송이 무엇을 마냥 갈구하는 산 염불이랴 꿈속의 꿈인양 엇갈리는 백년의 사랑 흙비 뿌리는 뜰에 언덕에 '목련'-'박용래' ⓒ 송유미
3월은 산에 사는 목동도 아무 이유 없이 산을 내려오게 하는 계절인 듯 합니다. 3월에 핀 목련의 계절은, 활짝 만개한 4월의 목련화와는 너무 차이가 납니다. 목련꽃은 지면 아주 보기 흉합니다. 더구나 땅에 추락한 목련꽃은 마치 걸레와 같습니다.
 
동백꽃은 떨어질 때 모가지 채로 떨어지지만, 목련꽃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너무나 하얀 순수했던 마음이 때가 묻은 것처럼, 꽃잎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너무 더럽게 변합니다. 마치 깨끗한 마음이 흙탕물에 떨어진 듯 말입니다. 그래서 목련화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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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무너진 터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솟아난 백련 한떨기 /사막인듯 메마른 나의 마음에다/어쩌자고 꽃망울 맺어 놓고야//이제 더 피울래야 피울 길 없는 백련 한 송이 -'백련'-'구상' ⓒ 송유미

▲ 내 가슴 무너진 터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솟아난 백련 한떨기 /사막인듯 메마른 나의 마음에다/어쩌자고 꽃망울 맺어 놓고야//이제 더 피울래야 피울 길 없는 백련 한 송이 -'백련'-'구상' ⓒ 송유미
눈이 부신 아름다운 '백련'의 재미 난 설화가 있네요. 흉악한 바다의 신을 사랑한 하늘 나라 공주가 있었는데, 이 바다의 신은 결혼을 한 몸이라, 그만 공주는 바다에 뛰어 들어 죽고 말았는데, 이를 안 바다의 신이 안타까워, 자기의 부인에게 잠자는 약을 먹여 함께 묻어 주었는데, 그 공주의 무덤에는 흰꽃이, 부인의 무덤에는 자주빛 목련이 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련이 많은 백련의 꽃봉오리는, 모두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동네 우체국 계단에 무수한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백련 두 그루는, 곧 철거 될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듯, 그저 3월의 보낼 수 없는 연서를 하염 없이 쓰고 있네요. 
2008.03.11 12:27 ⓒ 2008 OhmyNews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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