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정전.소현세자와 강빈이 가례를 올렸던 곳이다.
이정근
세자와 강빈은 금슬이 좋았다. 세자가 다른 여자들에게 한 눈 팔지도 않았다. 헌데 혼인 5년차가 지나고 6년차가 지나갔는데도 태기가 없었다. 왕실에서도 기다렸지만 은근히 걱정스러운 것은 강빈의 친정이었다. 신랑이 나이가 어려서 그러러니 하면서도 전전긍긍했다. 세자 나이 20세가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자 불안하기 시작했다.
왕실에 겹경사가 터졌다. 삼겹이다. 인조의 후궁 소원 조씨가 임신했다. 뒤 이어 중전이 회임했다. 원손을 기다리던 인조에게는 아쉬웠지만 왕실의 경사였다.
드디어 기쁜 소식이 순화방에 날아들었다. 강빈이 회임한 것이다. 세자빈의 회임은 친정 강석기의 집을 안도케 했으며 왕실의 축복이었다. 하지만 강빈은 드러내놓고 기뻐할 수도 없었다. 강빈이 회임 7개월 때 중전이 만삭이었다. 사가의 경우라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동시에 임신한 것이다.
궁궐 세여인의 임신과 출산소원 조씨가 딸을 순산했다. 효명옹주다. 아들을 사산하고 산후통으로 위독 상태에 빠져 사흘을 혼수상태를 헤매던 중전이 산실청에서 승하했다. 인열왕후 한씨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강빈은 아들을 순산했다. 원손 이석철이다. 대상(大喪) 중에 원손이 태어났으니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난감했다. 예조에서 문제점을 제시했다.
“원손의 탄생은 온 나라의 경사입니다. 택일하여 종묘에 고하고 반교와 진하(陳賀)의 일을 마땅히 전례에 따라 거행해야 합니다. 다만 인열왕후의 재궁(梓宮)이 빈소에 있으니 대신에게 의논하소서.”영의정 윤방, 영돈영 김상용, 대제학 홍서봉이 해법을 제시했다.
“진전(進箋)을 더하고 만세(山呼)를 한 번 불러서 신하들의 송축하는 정성을 펴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국장 중에 진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니 반교만 하는 것이 좋겠다.”
인조는 반교문을 내렸다.
“조상(吊喪)이 문에 있고 하례가 여(閭)에 있어 길사와 흉사가 한꺼번에 닥친 날을 당하였다. 슬픔에 가슴 아파하고 기쁨에 노래하면서 중외에 교시하는 바이니 그리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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