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탁발순례, 그 발걸음을 읽어보세요

[소슬바람의 평화로운 책읽기10] 김택근 지음 <사람의 길>

등록 2008.03.21 14:15수정 2008.03.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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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람의 길>표지  '도법스님 생명평화 순례기'란 부제가 붙어있다.

<사람의 길>표지 '도법스님 생명평화 순례기'란 부제가 붙어있다. ⓒ 들녘

▲ <사람의 길>표지 '도법스님 생명평화 순례기'란 부제가 붙어있다. ⓒ 들녘
"2004년 3월 1일 새벽, 지리산에 기대어 있는 고찰 실상사는 고요했다. 천년을 넘게 서있는 탑들이 아침을 부르고 있었다. 보내는 사람도 복받쳐 올랐다. 도법없는 실상사는 어딘가 빌 것이다. 주지 자리를 내놓고 길떠나는 도법, 산사의 아침은 무겁고 추웠다. 불쑥 도법이 수경과 함께 나타났다. 휘적휘적 산문을 나섰다. 실상사 스님들이 뒤따랐다. 보살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책 본문 중에서

 

4년 전 이른 봄에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떠난 도법은 아직 길 위에 있다.

 

바다 건너 제주도를 시작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걷고, 북쪽으로 올라와 충청도와 강원도를 걸었다. 지난 4년의 세월동안 그는 서울·경기를 제외한 남한 땅 2만8천리를 오직 두 발로 걸으며 얻어먹고 얻어자는 탁발 여행을 했다.

 

이 책 <사람의 길>은 경향신문 논설위원인 저자가 순례 길을 함께 걸으며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이어졌던 생명평화탁발순례를 기록한 책이다.

 

쉼없이 걸어도 끈질기게 붙어있는 상념, 길을 걷다 마주친 화두를 두고 벌인 도법과의 문답, 길 위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다양한 갈래로 흐르지만, 결국엔 순례의 주제인 생명, 그리고 평화의 줄기로 모인다.

 

인류의 역사만큼 아주 오래된 물음, 그러나 어떤 답도 시원하지 않았던 물음. '인간은 왜 끊임없이 갈등과 전쟁을 겪는가'의 물음에 도법은 명쾌한 답을 준다. 그것은 너와 내가 하나가 아니라 둘로 나뉘어있다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불교용어로 말하자면 '전도몽상'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것.

 

더 나아가 그는 아주 친절하게도 전도몽상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 귀띔해준다. 그것은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바른 방법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실'을 보는 눈이 없기에, 그리하여 나와 너의 분리를 완고하게 믿기에 물음은 도로 출발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것이 사람이 가끔, 혹은 주구장창 길을 잃는 까닭이 아닐까.

 

이 책 <사람의 길>은 현대 사회에서 종종 길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빠른 길 찾기가 아닌 지혜로운 길 찾기를 안내해 준다.

 

"모든 문제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존재의 참모습을 모르니 당연히 내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알지 못하니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책 본문 중에서

 

순례단이 걷는 길은 차에 치어죽은 들짐승의 말라붙은 시체가 즐비하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불안과 공포만 남기는 길이 허다하다. 농촌은 잘 닦인 도로가 나면서 오히려 더 황폐해지기도 한다.

 

평화를 품고있는 눈맑은 사람들을 만나 배우고, 평화가 깨져 갈등을 겪는 사람들과 만나 배우며 생명과 평화는 관념 속에서 걸어 나와 생활이 되고 삶이 된다.   

 

도법이 길에서 7만여 명의 만난 사람들은 제자이기도 했고 스승이기도 했다. 남도의 들녘에서 만난 절망에 찬 농민들, 한치 앞도 못 보는 경제논리로 생명의 터전을 마구 헤집는 개발론자들, 그중에서 주요한 만남은 과거 6·25전쟁 당시 좌우갈등 속에 희생된 영령과 해소되지 않은 통한을 안고 살아가는 현재의 사람들이다.

 

순례단은 아무도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빨치산 무덤의 풀을 베어주고 위령제를 지내준다.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발길 닿는 지역마다 좌우갈등의 희생지가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은 경악할 만한 일이다. 골짜기를 안고 있는 어느 고장이나 학살지가 존재하고 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유족들은 그 아픔을 소리 내어 표현 못하고 있다. 

 

도법은 아직 길 위에 있다. 그러나 그의 발길은 이제 남한에서 마지막 남은 순례지인 서울·경기도를 향해야 하지만, 잠시 멈추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무엇이 그의 순례행보를 돌리게 했는가. 그는 새 정부의 운하건설계획으로 위기에 처한 강을 찾아갔다. 그는 현재 '생명의 강 모시는 사람들 도보순례단'의 일원이 되어 어쩌면 경부운하를 파게 될지 모르는 남한강, 낙동강을 따라 걷고 있다. 

 

도법의 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이 책은 미완의 순례기이며 진행형의 순례기라 할 수 있다.

 

생명평화순례는 처음 시작한 어느 한 승려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생명평화의 길을 찾고자 순례길을 따라 함께 걷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람의 길>, 2008, 들녘

2008.03.21 14:15ⓒ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사람의 길>, 2008, 들녘

사람의 길 - 도법스님 생명평화 순례기

김택근 지음,
들녘, 2008


#도법 #생명평화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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