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 군락에 오니 오! 하느님, 환상이로다

얼레지 군락 2차 산행기

등록 2008.03.24 15:29수정 2008.04.0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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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오전 열시. 중시기군과 함께 대문을 나서는 마음이 기대로 가득하다. 바람꽃을 보겠다는 희망으로, 그것도 내 고장 백암산의 바람꽃이라니 정말 기대로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부지런히 달려가는데 손전화가 말을 한다. 어디쯤 오고 있냐고? 상투적인 대답, 다 와 간다고. 원덕터널 공사장을 지났다고. 시계를 본다. 아직 열 분이나 남았구먼, 우리 부회장은 급하시기도 하지….


북하면사무소가 저 멀리 보이자, 그곳에는 이미 부회장님과 여자 분 둘이 서 있다. 멀리서는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가까이 가서도, 유심히 봐도 그렇다. 원래 내가 사람 기억을 잘 못하니까. 그런데 '마님'은 그런대로 추측으로 때려잡고, 또 한 분은 누구인지 부회장님께 묻고 말았다.

세상에나! 꽃잔디님이셨다. 같이 산행을 한 적이 있는 그분을 몰라봤으니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어쩐다냐? 할 수 없지. 임기응변.

"저는 원래 헤어질 때 다 반납하고 잊어요. 안 그러면 내 색시한테 혼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고는 우긴다. 우리 재치덩이 부회장님이 곁에서 민망하셨던지 한 말씀 거드신다.

"머리가 가득 차면 들어갈 데가 없어서 기억을 못 하는 겁니다."


나는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물었다. 유치원 선생님을 기다리신단다. 열시반을 넘어서니 신참이 겁도 없이 늦는다고 야단들이시다(이거 이르는 거 아닙니다). 얼른 탐사를 마치고 가셔야 한다는 조바심이 그렇게 나타나나 보다.

드디어 유치원 선생님 도착. 출발하려는데 탐사객은 여섯에 차는 한 대. 어쩔 수 없이 부회장님 갤로퍼 짐칸에 중시기군이 탑승. 얼마나 미안하셨으면 우리 부회장님 또 재치를 발휘하신다.

"짐이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합니다." (하긴 짐칸에 탔으니까.)

시간을 앞당겨 가며 결행한 탐사. 날씨도 쾌쾌청.

가는 도중에 우리 부회장님 전화를 받으신다. 젊은 선 회원께서 오신다고 길 안내에, 운전에 1인 2역 하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시다. 어쨌든 우리는 남창골 현지에 도착. 낙엽을 밟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터지는 탄성. 단 두 송이가 피어 우리를 그렇게 감격케 했었는데, 일주일 남짓 사이에 그렇게 많은 꽃들이 고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아닌가. 우선 한 컷 무조건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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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쓴 얼레지 ⓒ 지누랑


넘어지고, 비틀거리고, 걷고, 조심조심 기고 그렇게 찰칵은 시작되었다. 무릎이 돌에 닿으면 아프고, 가시가 눈을, 얼굴을 심지어는 바지를 뚫고 들어와 찌르니 아니 아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접사가 뭐 그리 좋다고 불평 한마디 하는 이가 없다.

다들 찰칵에 여념이 없다. 다만 우리 '마님'께서만 언짢으신가 보다(돋보기를 안 가져 오셔서 핀트를 맞추기가 어려우시단다). 그런데 저걸 어쩌나 아무도 그건 도와드릴 수가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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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땅 속으로 파고 드는 게 나을껄 ⓒ 지누랑


그렇거나 말거나 우리 모두는 찰칵에 여념이 없다. 드디어 누군가, 흰꽃 발견. 한참을 찰칵하고 눈은 또 색다른 뭐가 없나 번뜩이는데 웬걸 우리 꽃잔디님 한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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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 형제 ⓒ 지누랑


"밥 먹으러 갑시다."
"밥 먹자는 사람 누구요. 다음부터는 데리고 다니지 말아요."

그냥 내 협박인데 우리 꽃잔디님 펄쩍 뛰신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꽃에 얼이 빠져 있었으나, 실은 나도 배가 고프기는 했지만 말을 아니 했을 뿐이면서 한 번 해본 소리. 내려가는 길에 베테랑 우리 부회장님 결국 실력 발휘하신다.

"여기 흰꽃 또 있어요."

가보니 웬걸 분홍꽃과 흰꽃이 어우러져 있지를 않은가! 오늘의 장원감이다. 기다렸다가 한 컷 찰칵하고는 마음속으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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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얼레지 ⓒ 지누랑


한 칠일 지나서는 그곳에 갔더니만
행복을 아름 곱게 안겨주던 그 녀석이
이제는 다섯 형제를 거느리고 있었네

이곳에 얼레지가 저곳에 얼레지 꽃
밟힐까 저어해서 온 신경 곤두서니
한 발짝 디딜 적마다 부처마음 따로 없네

낙엽 속 솟아나온 얼룩소 잎사귀들
그 안에 담은 대공 하나씩 밀어올려
천공이 점지하신 뜻 양광 속에 담았네

저벅저벅, 바스락바스락. 개울가에 오니 물이 맑은데 송사리가 제 세상이라고 헤엄치고 있다. 그게 신기한 모양이다.

"어머, 고기도 있네."
"끓여 먹어도 되겠다." (무슨 징그런 소리.)

너러바회에 둘러앉으니 김밥이, 바나나가 먹음직스럽다. 꽃잔디님께서 희사하신 거란다. 고럼거럼, 뭔가 있으니 그렇게 밥 먹으러 가자고 성화였지. 배고프니 어서 먹자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십 분 후 배부르니 잘 먹었습니다. 또 감사.

참 건너뛸 뻔했다. 그간에 선 회원님이 현장에 올라오셨다. 아니 점심도 같이 먹었지비.

그런데 일이 터졌다. 원래 바람꽃을 볼 계획이었으니 바람꽃을 보자는 나와, 노루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노루귀를 보자는 분들. 그 사이에서 묵묵부답이신 분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겠디.

김밥을 배불리 얻어먹은 죄로 할 수 없이 내가 양보하기로 했다. 어째 김을 볼 때부터 김이 새더라니…. 운명이거니 해야지 뭐. 바람꽃에 대한 기대는 접고 다음 기회로.

그래서 일행은 또 출발. 시간이 촉박들 하신가 보다. 눈치를 알아차리신 우리 부회장님 멀리는 못 가고 가까운 데를 가시려나 보다. 도착해 보니 산판의 현장이 아닌가! 그런데 손전화에서 말씀하시던 회원님 한 분이 마중나오신다.

차에서 내려 몇 발짝 떼어놓자마자 바알간 노루귀가 눈에 들어온다. 눈을 드니 여기저기 수두룩하다. 모두가 분홍노루귀. 꼭 한 곳에 흰노루귀가 있다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회원께서 귀띔해 주신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또 찰칵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불평할 차례인가 보다. 이건 혼잣말.

'이거 원 불편해서 살 수가 있나? 접사하려면 링을 바꾸어 끼어야 하고, 기냥 찍으려면 링을 빼야 하고……. 사진을 마음대로 찍히지도 않고, 제길 땡빚을 내서라고 접사렌즈 꼭 사고 말거야. 왕짜증이다. 사진 솜씨는 좋은데(?) 렌즈가 영 시원찮아서리(이건 순 변명).'

행여나 하늘이란 노랄까 파랄까 봐
나올 때 진빨간색 자라면 연분홍빛
어머나 어른이 되면 무슨 무늬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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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려는 노루귀에 초점 ⓒ 지누랑


그런대로 우리는 흰노루귀도 두 곳에서 더 찾아내 찰칵하고, 무더기 노루귀도 찰칵하고, 노루귀 잎사귀도 덤으로 찰칵에 담을 수 있어 행복 그 자체였다. 노루귀를 뒤로 하고 우리는 시간이란 놈에게 쫓겨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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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속에서 예쁜 모습을 드러낸 노루귀 한 송이 ⓒ 지누랑


오면서 우리는 다음 산행을 장성호 건너 복수초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를 버려두고 느긋이 하려고 음모를 꾸미시는 분이 계셨다. 내가 괜히 수요일에는 서울행이라고 했더니, 나를 놀리시려고? 내가 삐쳤다고?

노루귀 사진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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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가 더 진하다. 초점마저 거기에 ⓒ 지누랑


그래서 나는 다음 주 화요일 오전 10시 40분으로 딱 정하는 것을 듣고 차를 돌려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딱 정해졌는지는 나는 정말 모른다. 어쨌든 오늘은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모두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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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꽃이 먼저 피는 습성을 가진 노루귀인데 이 녀석은 끛은 그만두고 잎부터 불쑥 내밀고 있다 ⓒ 지누랑


분홍얼레지여, 흰얼레지여.
분홍노루귀여, 흰노루귀여.
영원하라. 내년에 또 오마.
#노루귀 #얼레지 #탐사 #산행기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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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와 시와 문학과 야생화 사진에 관심이 많아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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