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명소로 구경 오세요

[사진] 진달래꽃이 흐드러진 서울 강북구 오동공원

등록 2008.04.04 16:51수정 2008.04.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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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쪽 산자락을 뒤덮은 진달래꽃 ⓒ 이승철


"참 곱기도 해라.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네."
"먼 곳으로 진달래꽃구경 갈 필요 없겠는데요."
"정말 그러네, 꽃도 많고 가까워서 구경 오기도 쉽고."


60대 중반 쯤이나 되었을까. 그리 늙어 보이지 않는 할머니 두 분이 흐드러진 진달래꽃들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으니 조금 떨어진 장위동에서 왔다고 한다. 이웃집 사람에게서 이곳에 진달래꽃이 많이 피었다는 말을 듣고 30여분을 걸어 찾아 왔다는 것이었다.

어제(3일)오후, 진달래꽃을 보기 위해 다시 찾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과 번동 사이에 길게 누워 있는 오동공원 번동 쪽 한쪽 산자락이 온통 진달래 꽃동산이 되어 있었다. 꽃은 엊그제 왔을 때보다 훨씬 더 흐드러진 모습이었다. 석양 무렵이어서인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이사이 나지막한 구릉들이 뻗어 내린 산자락은 드문드문 서있는 소나무와 잡목 사이로 온통 연분홍 진달래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한쪽 산자락이 온통 진달래꽃으로 뒤덮였지만 꽃들이 모두 한꺼번에 피어나거나 색깔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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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진달래 꽃송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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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도 캐고 꽃구경도 하고 ⓒ 이승철


산자락에 높낮이가 다른 언덕들이 뻗어있어서 햇볕을 많이 받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공존하기 때문이었다. 진달래꽃은 대부분 분홍색이다. 그러나 어떤 진달래꽃은 분홍색이라기보다 붉은 빛이 나는 것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주 연한 색조를 띤 것은 거의 흰색에 가까워 보인다.

일찍 피어나 잎이 지기 시작한 것도 있었지만 이제 꽃봉오리가 막 벌어지고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진달래꽃 잔치는 다음주초까지 이어질 것 같았다. 40대의 어떤 아주머니는 하얀 강아지를 네 마리나 끌고 산책을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강아지들의 배설물을 준비해 가지고온 비닐봉지에 깨끗이 처리하는 모습이 남달랐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 아주머니는 요즘 진달래꽃이 한창이어서 날마다 꽃길 산책을 나온다고 한다. 강아지들은 왜 끌고 나왔느냐고 물으니 "강아지들도 진달래꽃 구경하라고요" 하며 호호 웃는다. 말은 못하지만 강아지들이라고 해서 꽃을 싫어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언덕길 산책로 주변의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 건너편 산책로에 10여명의 사람들이 일렬로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일반인의 모습이 아니다.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었는데 모두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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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분홍 진달래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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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 나온 할머니들 ⓒ 이승철


"단체로 진달래꽃 구경 나온 것은 아니고요, 야외학습 나왔습니다. 꽃밭으로요, 그런데 꽃이 참 예쁘고 좋네요."

십여 명이 넘는 수녀들은 커다란 소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부분 젊은 수녀들이었다. 카메라를 꺼내들자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수녀 하나가 손을 내젓는다.

주변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수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진달래 고운 꽃처럼 싱그럽게 들려온다. 수행 중인 젊은 수녀들이 아름답고 화사한 꽃밭 한 가운데서 야외학습을 하는 중이어서 꽃처럼 곱고 맑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리라.

진달래꽃은 초봄에 피어나는 대개의 꽃들이 그런 것처럼 잎보다 꽃을 먼저 피워낸다. 그래서 초록색 무성한 잎에 가리지 않아 그 화사함이 더욱 돋보이는 꽃이다. 잎이 없는 줄기와 가지에 피워낸 꽃은 화려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애잔하기도 하다.

그래서 소월 시인도 진달래꽃을 버림받은 여인의 슬픔과 인종(忍從)을 시적 자아로 풀어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싫어서(역겨워) 떠나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라는 우리 옛 정서적인 체념과 함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극복 의지를 시어로 승화시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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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양의 진달래 꽃송이 보셨나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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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따라 꽃구경 나온 강아지들 ⓒ 이승철


더구나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임의 앞길에 요즘처럼 흐드러진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가 '가실 길에 뿌리겠다'는 절대적 사랑을 노래한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로써 그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구절이다.

또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버림받은 여인의 아픔과 이별의 슬픔을 기막힌 시어로 표현한 것이다. '즈려밟다'는 '지르밟다'라는 북쪽지방의 방언으로 '짓밟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자신을 버리고 가는 임의 앞길에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나타내는 진달래꽃을 뿌려주고 그 꽃들을 '사뿐히 짓밟고 가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절묘한 시어인가. 소월은 버림받은 여인의 아픔과 슬픔 그 자체를 이 구절에서 축복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월의 '진달래꽃'은 옛날 북쪽 평안도지방에 있는 영변 약산에 피어난 꽃으로 한 여인의 슬프고 아픈 마음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그 진달래꽃은 오늘 서울 도심인 강북의 오동공원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세상살이 속에서 사랑과 욕망을 접고 살아가는 수녀들에게까지 풋풋하고 화사한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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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동산에 야외수업 나온 수녀님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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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처럼 탐스러운 진달래 꽃송이 ⓒ 이승철


작은 비닐봉투를 손에 든 할머니 한 분은 진달래꽃나무 밑에서 쑥을 뜯고 있었다. "꽃놀이는 안 하시고 나물만 캐느냐"고 물으니 "꽃나무 동산에서 나물 캐는 것이 바로 꽃놀이"라고 답한다.

진달래꽃동산에서 예쁜 꽃들과 어울리다보니 어느새 석양빛이 기울었다. 동산 너머로 기운 햇빛을 받은 진달래꽃잎들이 새하얗게 투명한 모습이었다. 저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휴대전화기에 진달래꽃과 꽃동산을 담고 있었다.

꽃들이 지기 전에 서울 강북 오동공원에 진달래꽃 보러 오세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 #진달래꽃 #오동공원 #수녀 #야외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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