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세상'을 바꾸는 건 시민의 몫

[주장] 개체 생존에 필수적 조건인 다양성은 정치에도 필요하다

등록 2008.04.08 18:16수정 2008.04.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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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시 하나의 생물종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 기본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개체 생존의 필수적 조건이다. 근친교배가 기형이나 질병으로 인한 종의 절멸을 가져오는 이유는 바로 자기복제로 인한 다양성의 상실 때문이듯, 다양성은 개체의 진화와 발전의 핵심적 고리중의 하나다. 다양성은 종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종과 종간에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사자나 호랑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아프리카 초원의 임팔라는 모두 비대해진 몸집으로 동맥경화가 걸려 죽어 갈 것이고, 하이에나와 독수리가 없다면 아프리카 초원은 동물의 사체가 퍼트린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다.

 

다양성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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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탄핵세력 심판론'을 내세워 152석의 과반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시민들은 '견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탄핵세력 심판론'을 내세워 152석의 과반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시민들은 '견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렇듯 생물학적 다양성이 생물의 공진화를 가져오듯, 인간 사회에서의 문화적, 혹은 정치적 다양성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를테면 다양성의 관점에서보면 맑스와 레닌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최대 공로자다. 만약 맑스가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치지 않았더라면, 자본주의는 마치 무성생식을 하듯 팽창하다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맑스의 주장이 현실화될 때 가져올 두려움이 (혹은 소비에트의 등장에서 본 교훈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게 하는 힘이 됐고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가 때로는 소수자의 주장이나, 약자의 주장에 귀를 귀울이고, 배척이나 제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되고, 더욱 발전하고, 스스로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나아가게 만들 수 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나름대로 대단한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입장에서는 현실감이 결여된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들리겠지만, 지금 우리 나라에서 이런 소수의 주장들이 제척되지 않는 것만 해도 양적인 부분은 몰라도 최소한 질적인 성과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중이 동성애자나 심지어 대마초 옹호자의 주장까지도 들을 수 있고, 그들의 목소리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인권이나 주장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 모여서 미래에 우리가 지키고, 받들어야 할 '민주주의의 바탕 위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자본주의'를 만드는 토대가 될 것이다.

 

서론이 길었고, 견강부회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바로 그점이 정치·사회·문화 각분야에서 '다양성', 혹은 '견제'라는 화두가 '이 뭣고'만큼이나 보편적인 가치가 되는 것이다.

 

'방식'의 문제제기하는 민심, 내일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 총선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총선 결과는 대체로 집권당이 유리하다. 그것은 국민의 냉정한 판단이자 평가다. 반대당의 입장에서 그 점이 억울하고 속상하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지난 4년 전 혹은 5년 전에 국민들은 참여정부에 가히 폭발적인 기대를 실었었고, 그 기대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압도적 원내 의석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민은 불과 4, 5년 만에 싸늘하게 돌아섰다. 혹자는 대중이 어리석다고 말할지 몰라도 그것은 아니다. 대중은 현명하고 역사의 강물은 도도하다. 지난 정부가 아무리 옳았다고 주장해도 그 방식이 틀렸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틀렸을지도 모른다.

 

정치인은 민심에 겸허해야 하고, 정치인의 집단인 정당은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민심을 '대중'이라 부르고, 그것을 폄훼하고 얕잡아 보면 반드시 징치를 당한다. 참여정부의 공과는 나중에 역사가 판단할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거나 바로 그 공과를 두고 국민은 지금 이 순간에 냉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많겠지만, 민심은 지난 정부의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방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나라가 과거 계몽시대나 러시아 제정시대의 지식인들이 어리석은 대중을 가르치고 계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의 뜻을 받들고 반영하고 무릎걸음으로 다가서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을 탓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만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총선이 야권의 무참한 패배로 마무리된다면,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치열한 반성의 바탕 위에서 새로 서야 한다.

 

하지만 무섭지만, 때로는 지혜롭고, 또 때로는 자애로운 것이 민심이다. 앞서 다양성을 거론했던 것처럼, 민심은 균형의 가치를 모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앞으로 5년도 민심이 판단할 뿐, 이제 겨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못할 것이다' 혹은 '못한다'라고 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잘하는 것이 좋은 일이고 잘해야 한다. 하지만 '잘하기 위해서' 혹은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앞서 탄핵 이후 총선에서 만약 민심이 한나라당을 모두 배척하고, 당시 여당에 개헌선을 넘는 압도적 의석을 몰아주었더라면 과연 지금보다 결과가 좋았을까? 아니면 더 나빴을까?. 

 

그것이 바로 견제의 힘이고 의미다.

 

견제란 생물종으로 치면 다양성이고, 역사로 치면 공진화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자기가 믿고 있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만 본다. 길을 가는 이는 다른 길을 보지 못하고, 길가의 돌이 예뻐 집어드는 이는 그 돌아래 개미들의 평화가 깨어짐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정치와 사회는 건강한 감시자와 견제가 그리고 균형자가 필요하다.

 

그 점에서 이번 총선에서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집권당은 '더 잘하기 위해서' 압도적인 표를 몰아 달라고 하고 있고, 야당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견제 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필자는 후자가 바람직하다고 믿지만, 물론 판단은 개별 유권자의 몫이다. 그리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선택들이 모아져서 4월 9일 밤이면 민심의 선택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현재 이 시점에서 그리고 4년 후 다시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이 놈의 세상', 바꾸는 것은 시민의 몫

 

그리고 한 가지 더,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투표 문제다. 우리는 흔히 살면서 "이 놈의 세상"이란 말을 자주한다. 기본적으로 열패감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이 놈의 세상' 다음에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너무 희미한 존재들이다. 과거 군주시대의 백성들은 그것이 충성이지만, 민주사회의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이놈의 세상'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 세상을 고치고, 바로 잡아야 백성이 아닌 시민이다.

 

시민은 눈앞에 보여지는 것, 들리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시민은 내게 입력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그 바탕에서 '자신의 바른 견해'를 세운다. 그리고 그 견해를 실천하는 것이 시민이다.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은 사이비이고,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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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외부공천심사위원 ⓒ 오마이뉴스

시민이 참여하는 가장 손쉽고 의미 있는 길은 투표다.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커져 버렸고, 대의민주주의는 왠지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백성이 아닌 시민으로서 한 표를 던지는 행위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다. 만약 우리가 그것으로서 부족하다 여기면, 발언하고 행동하고, 심지어는 직접 나서서 대표를 자임하는 것이 민주주의고 투표는 그 길목이다. 그러니 내일 선거일에 한표를 행사하고 길을 떠나는 이는 시민이고, '고작 내 한표'라 여기고 기권하는 이는 가엾은 백성이다.  

 

지금 이 땅에 '백성'은 없다. 오직 '시민'만이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박경철 기자는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외부 공천심사위원입니다.

2008.04.08 18:16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박경철 기자는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외부 공천심사위원입니다.
#총선 #견제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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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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