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의 총선패배 원인, '분당'에 있지 않다

[주장] '실용주의' 폭식증, 멈출 세력은 진보진영뿐

등록 2008.04.11 11:12수정 2008.04.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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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뉴타운 공약'으로 대표되는 개발주의에 밀려 주춤했다. ⓒ 선대식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뉴타운 공약'으로 대표되는 개발주의에 밀려 주춤했다. ⓒ 선대식

한나라당은 압승했고, 민주당은 분전했다. 한나라당과 동색인 자유선진당은 충남지역당으로 등극했고, 이른바 박근혜의 사당을 자처하며 공당의 개념을 '몸종정당'으로 격하시킨 친박연대는 주인님의 안마당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진보정당의 한 축인 민주노동당은 경남에서 두 석을 건지는 선전을 했고, 진보신당은 전패했다.

 

전체 유권자의 과반 이상인 54%의 유권자가 투표하기를 포기하고, 과반 미달인 46%의 유권자가 선택한 2008년 4월 9일 제 18대 총선의 결과가 이와 같다.

 

'경제를 살리면 그만'이라는 지난 대선의 악몽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명실 공히 보수가 판치는 세상이 도래했고, 진보의 위기가 닥쳐왔다. 선거가 민심의 정확한 반영이라면, 절반 이상의 민심이 신물 나는 정치를 외면하는 동안 나머지 절반 이하의 민심이 오른쪽 날개로만 하늘을 날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왼쪽 날개는 꺾였다.

 

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이명박 대통령이 '민관 합동 한반도대운하 특별위원회'를 국민들에게 곧 선물로 안겨줄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절대 다수 국민들의 반대 여론조차 이제 노골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힘이 보수의 손에 쥐어졌다.

 

그뿐인가?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사라질 운명에 처했고, 공기업 민영화와 건강보험당연지정제의 폐지로 의료보험 민영화가 본격화할 예정이다. 부동산 보유세 완화에 이어 수도권 토지규제 대폭 완화로 땅 부자들의 천국이 곧 실현될 예정이고, 금산분리 완화로 대기업의 은행권 진출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산 뼈있는 값싼 쇠고기를 씹으면서 한미FTA가 국회에서 비준되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목격할 것이다.

 

2008년 4월 9일 대한민국의 민심은 이러했다.

 

로또아파트에 무너진 진보, 다음을 준비할 때

 

이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살리기만이 유일한 활로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온 정부와 과반 이하의 민심이 이에 동의한 결과였다.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강북벨트'가 재개발 호재로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한나라당 텃밭이 되어 버린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사람들 눈앞엔 '로또 아파트'가 아른거렸고 결국 수백만 분의 당첨확률을 위해 민심은 베팅을 했다. 설사 당첨이 안 된다 해도 로또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곧 한미FTA가 성사되면 농촌은 박살나고 농업은 망한다. 병에 걸려도 턱없이 비싼 병원비 때문에 값싼 병원을 찾아 전국을 헤매야 하고, 집 없는 서민들은 전세금 올려주느라 등골을 빼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분간 '경제만 살리면 그만'인 로또를 향한 민심은 계속될 것이다.  

 

엎친 데 덮쳐서 진보는 분열했다. 케케묵은 80년대 종파논쟁의 마무리를 선거 직전 '분당'이라는 멋진 피날레로 장식했다. 그리고 통통 털어 200석이 넘는 보수의자들이 국회 안에 채워지는 동안 진보는 5개의 의자를 겨우 끼워 넣는 선전(?)을 발휘했다. 이렇게 한국 사회는 비대칭의 1%를 위한 성장을 계속하는가?

 

그러나 진보는 망하지 않았다. 케케묵은 80년대 종파논쟁에서 시작된 뿌리가 깊은, 그리고 언젠가는 끝내야 할 진보의 빌어먹을 '유산'이었을 뿐이다. 정치권력의 장에서 언제나 있어온 파벌싸움과는 확연히 다른 지향의 다름이었다. 엄혹한 시기를 지나왔고 진보의 세기가 미약했기에 우선 연대라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연대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다만 전략적 지향의 차이를 애면글면 감추고 지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참 진보를 향한 시기가 왔다. '분당'이라는 방식도 굳이 비판할 문제는 아니다. 두 정파 중 누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담론은 이제 무의미하다. 역사는 돈다. 바닥을 치면 오르는 일만 남는다. 떨어지면 올라가야 하고, 슬픔 뒤엔 기쁨이 있다. 굳이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게 인간사의 진리다. 불변하지 않는 반복이다. 이제 담담하게 오름과 기쁨의 시기를 준비해야 할 때다.

 

진보의 몰락, 분당 아닌 보수적 민의가 원인

 

이번 총선에서의 패배는 '분당'이 아닌 이명박 정부를 탄생 시킨 보수적인 민의였음을 진보진영은 잊지 말아야 한다. ⓒ 연합뉴스

이번 총선에서의 패배는 '분당'이 아닌 이명박 정부를 탄생 시킨 보수적인 민의였음을 진보진영은 잊지 말아야 한다. ⓒ 연합뉴스

지금 진보는 역사의 질곡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2004년 대한민국 최초 진보정당 국회입성의 기쁨 뒤에 와야만 하는 당연한 결과다. 다수파와 소수파의 어정쩡한 연대를 오래 지속하기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헤어질 때가 도래한 것이었다.

 

3% 지지대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그걸 부추겼고 이어서 닥친 국회의원 선거라는 정치권력을 향한 중차대한 일전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그 갈라섬의 예봉이 날카로웠던 것이다. '만약 분당사태가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었던 민심을 되돌리기엔 이미 진보진영은 분당 이전부터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창당한 진보신당의 존재를 국민들에게 선명하게 알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분당의 터널을 막 지나온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게 이번 18대 총선의 결과는 차라리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보가 지금 빠져 있는 질곡은 분당이 불러온 결과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민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는 한국정치를 팽개친 54%의 국민들을 기억해야 한다. 더불어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표를 던진 8.9%의 국민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진영이 과반도 안 되는 민심으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들을 양산하겠지만 이는 곧바로 진보진영의 숨통을 틔워줄 호기로 작용할 것이다.

 

어느 역사학자의 말처럼 30년을 주기로 닥쳐오는 일대 한국사회의 커다란 변혁의 파도가 밀려 올 날이 머지않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부자정책들이 서민경제를 파탄 낼 날도 경제학자들의 말을 빌면 2~3년이면 충분하다.

 

'실용주의'의 폭식증, 멈출 세력은 진보진영

 

강기갑의 당선은 진보진영에 실낱 같은 희망을 남겼다. 이제 진보진영은 일반 서민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이미자

강기갑의 당선은 진보진영에 실낱 같은 희망을 남겼다. 이제 진보진영은 일반 서민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이미자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진보진영의 기회가 된다.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어쭙잖게 지금의 위기를 분당 때문이라고 결정짓고 다시 합당이라는 꼼수(?)를 부린다면 진보의 위기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다수 패권주의의 폐해와 통일지상주의의 전략적 한계를 통 크게 혁신해야 한다. 진보신당은 진보의 새로운 지평으로 제시한 생태와 평등과 평화와 연대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대중으로의 하방운동을 진전 시켜야 한다.

 

더 이상 상대세력의 패권주의에 대한 시시비비 때문에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기보다 분당 이후 각자가 선택했던 진보의 자기주체화를 위한 길에 또박또박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이번 선거는 백일도 지나지 않은 진보신당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크게 도약의 발판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정치적 사건이었고 결과 역시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강기갑이라는 민주노동당의 뜻밖의 수확이 그나마 진보진영의 존재에 실낱 같은 희망으로 남겨졌을 뿐이다. 진보는 어쨌든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시작은 아니다. 몇 달 전 분당이라는 산고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진보정당 운동의 힘찬 발걸음은 벌써 시작됐다.

 

이제 실용주의라는 거대 자본의 폭식증이 선거가 끝난 다음 날부터 곧바로 대운하를 필두로 하는 구취 나는 입으로 서민대중의 삶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먹어치우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폭식증의 종말은 어지러움, 손발의 부종, 허약감, 무기력증, 근육 경련 등의 증세로 나타난다, 곧.

 

한국 사회에서 이 폭식증에 몸을 떠는 불쌍한 실용주의를 구제할 세력은 유일하게 진보진영밖에 없다. 진보의 꺾인 날개가 다시 한국 사회라는 몸뚱어리에서 새롭게 날갯짓을 해야 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불을 뿜는 총칼 앞에서도 보편적 정의를 언제나 되살렸던 대한민국 역사가 진보진영에 주는 의무이기도 하다.

2008.04.11 11:12 ⓒ 2008 OhmyNews
#18대총선 #진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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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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