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왜 '파인 땡큐'만 할까?

서양인들만이 가진 어떤 것에 관한 고찰

등록 2008.04.11 15:02수정 2008.04.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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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열풍이다. 이미 십수 년 전부터 국제화다, 뭐다 영어에 열을 올리더니, 이젠 영어 학원 하나 안 다니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온 국민이 영어에 목을 맨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강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왜 한국학생들은 '하우 아 유(How are you?)'라고 물으면 ‘파인 땡큐(Fine, thank you,)’라고만 대답 하나요?"

 

그렇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답한다.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걸 알면서도, 다른 말을 해 주길 바라는 걸 알면서도, 또 자조적으로 "파인 땡큐"만 반복해서 외친다. 왜 우리는 하고많은 대답 중에 일관되게 '파인 땡큐'만 선택할까?

 

국민대학교 교양과정부의 파슨스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 학생들은 교과서에 나온 대로만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단순히 획일화된 교육정책으로 인해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모범답안'에 경도되었다고 하기에는 그 인과관계가 부족하다. 언제부터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교과서대로만 살아왔단 말인가? 분명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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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90년대 중반의 영어자습서 ⓒ 김상훈

▲ 사진1 90년대 중반의 영어자습서 ⓒ 김상훈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How are you?"

 

자, 무어라고 대답할 텐가? 대답을 하려면 우선 질문의 뜻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How are you?' 직역하면 '당신은 어떠십니까?' 정도가 될 것이다. 상대방이 당신의 상태를 묻고 있다. 그럼 우선, 당신의 상태를 파악해야 보라.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떤가?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쁜 날을 제외하곤, 지금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를 파악하고, 또 그것을 적당한 단어로 표현하는 일은 상당한 정도의 통찰력과 어휘력이 없이는 벅찬 작업이다. 더군다나 그 모든 과정을 질문을 받은 지 1초 내외로 마무리해야 하지 않는가?

 

자, 이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분을 파악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How are you?'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안녕하세요?' 정도가 된다. '안녕하세요?'는 역시 '안녕하세요?'로 맞받아치면 되니까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데 반해, 영어로 저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때 가장 무난한 해결책은 바로 '배운 대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온 국민이 상황불문하고 '파인 땡큐'만 입에 담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예컨대, 영어엔 우리말에는 없는 'favorite'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가장 좋아하는'이라고 두 낱말을 연결해야 겨우 비슷한 뜻을 만들 수 있는 저 표현. 'my favorite food', 'my favorite season'따위를 그들은 일일이 꼽아 놓고 산다. 요즘에야 우리도 '가장 좋아하는 과일',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챙기며 살지만, 저 말이 수입되기 전, 그런 개념조차 없던 옛날에도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또 있다. 우리가 '여기가 어디냐?'라고 묻는데 반해 그들은 '내가 어딨냐?(Where am I?)'라고 묻는다. 왜 'Where is here?'라고 하지 않고 'Where am I?'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갸우뚱 했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 나의 기분이 어떤지를 늘 상기하는 버릇이 있는 서양인들은 'How are you?'란 난제에 대해 우리보단 훨씬 수월하게 접근한다. 그 결과 너무도 손쉽게 '굿', '인크레더블'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부족한 대답이다. 우리도 나름 오랫동안 영어를 배운다. 초중고 대학까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영어를 배우고서도 미국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굿', '인크레더블'이란 말을 하지 못해 다시 '파인 땡큐'라고 할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한 걸까? 또한 그들은 전부 통찰력과 어휘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번개 같은 머리를 타고난 것일까?

 

나는 여기서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들었던 어린이 영어교육테이프를 떠올려본다.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한국인 선생의 목소리(안타깝게도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굿모닝 하우 아 유? 아임 파인 땡큐. 굿 애프터 눈 하우 아 유? 아임 파인 땡큐······."

 

여기서도 어김없이 '파인 땡큐'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건 그 부분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굿모닝'이다. 노래가 끝난 후에 한국인 선생의 다음과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영국 사람들은 아침에 만나면 '굿모닝'하고 인사를 합니다. 영국에서는 비가 많이 오므로, 좋은 아침, 상쾌한 아침이 되라고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합니다."

 

자,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는 영국 사람들은 '좋은 아침이기 때문에' 굿모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아침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굿모닝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서양인들이 '굿', '인크레더블' 하는 것은 모두 그들이 기분이 좋아서만은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우리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은 자기 자신이 '굿', '인크레더블'이 되고픈 마음에 습관적으로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서양인들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긍정성'이란 낱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굿'이란 단어의 의미이다. 한국 사람들은 특별히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굿'이라는 단어를 쓴다. 하지만 파슨스 교수는 "서양 사람들은 딱히 문제될 게 없는 상황이면 '굿'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그들 기준으로는 '굿'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그냥 '굿'하면 될 상황에서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불필요한 고민을 해 왔던 것이다.

 

한국인들이 '파인 땡큐'만 하는 두 번 째 이유다. 우리가 그들처럼 손쉽게 '굿', ' 인크레더블'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good'과 우리가 생각하는 '굿'의 의미가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good'이라고 말하기엔 딱히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bad'할 만큼 나쁘지도 않아서 할 수 없이 교과서에 나온 대로 '파인'이라고 대답은 했지만, 실제로는 딱히 'fine'한 것도 아니어서 말을 하고도 스스로 다소 민망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 파슨스 교수는 한국에 오기 전에 일본과 중국 학생들도 가르쳤는데, 그들도 우리처럼 '교과서 답변'으로만 일관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인 땡큐' 문제가 동서양의 문화차이에 상당부분 기인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 이제 여러분에게 과제를 주겠다. 5분 후에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어떤 서양인이 당신에게 '하우 아 유?'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제 서양인들 하는 방식을 알았으니,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그들이 하는대로 '굿', '인크레더블', 혹은 다른 긍정적인 표현으로 대답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식대로 '보통'이라고 답한 후에 그 사람들이 '왜? 무슨 있니?'라고 물어보면 '아니, 한국에서는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은 이상 이렇게 대답해'라고 부연설명을 할 것이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들의 영원한 진리요, 모법답안인 '파인 땡큐 앤드 유?'라고 답할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blog.daum.net/ratkilli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11 15:0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blog.daum.net/ratkilli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어 #파인 땡큐 #교과서 #원어민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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