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이주의 새책] 샤갈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어떻게 마음에 담았나

등록 2008.04.12 10:41수정 2008.05.0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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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랑과 외설의 경계에서 뜨겁게 살다간 '전설적 컬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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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길아트

페기 구겐하임 - 예술과 사랑과 외설의 경계에서 | 앤톤 길 지음 | 노승림 옮김 | 한길아트 | 787쪽 | 2만5000원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유대인 광산 재벌 가문의 소녀. 그녀는 자라나 거듭된 결혼과 이혼, 그리고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 방황과 방탕의 삶을 살았고, 당연히 수많은 가십과 악담, 스캔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또한 그녀는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현대미술의 후원자였으며, 자신이 세운 '금세기미술관'이란 이름처럼 자신의 컬렉션으로 현대미술사를 써내려간 예술 중독자였다.

이 책은, 그리하여 이제는 전설이 된 미술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1878-1979)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출판물, 기사 등 공식 자료뿐만 아니라 미출간 원고, 일기, 가십, 이메일, 전화통화 등 사적인 자료들도 샅샅이 뒤져 '예술과 사랑과 외설의 경계에서' 뜨겁게 살다간 그녀의 삶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컬렉션 가운데 자식들에게 돌아간 작품은 한 점도 없다고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내 모 재벌의 컬렉션의 운명은 어찌 될지 새삼 궁금해진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아들과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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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룸

엄마, 돌아와요(Mother, Come Home) | 폴 혼슈마이어 글·그림 | 한진영 옮김 | 이룸 | 128쪽 | 1만800원

어느 날 엄마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7살 아들과 아내를 잃은 아빠가 남았다. 아들은 엄마가 떠난 공간을 지키며 엄마를 기다리고, 아빠는 아내를 못 잊어 현실로부터 도피한다. 결국 아빠는 정신병원에 스스로(?) 갇히고, 아들은 아빠의 탈출을 계획한다.


미국 그래픽 노블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저자는 무채색의, 그래서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그림 위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들의 힘겨운 삶을 아들의 시선에서 또박또박 적어나간다.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또 하나의 죽음이 기다리지만, 소년은 그로부터 성장한다. 서문이 끝나고 이제 1장이 시작되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워졌다." 주의! 어린이를 위한 만화책이 아니다. 혹시 무심코 책을 집어든 아이가 내용을 물어온다면 조금 난감할 듯싶다.

노동자는 왜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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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울아카데미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 생산의 지점 | 존 우딩·찰스 레벤스타인 지음 | 김명희 등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70쪽 | 2만2000원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자 수는 9만147명, 그 가운데 2,406명은 목숨까지 잃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왜 아프고, 죽어가야 하는가. 이 책은 100년 이상의 노동운동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왜 여전히 작업환경이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비록 미국의 사례와 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직업병과 산업재해를 이해하는 근본적인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사회적·경제적·정치적 힘은 직업 환경보건에서 단순한 배경요인이 아닌, 본격적인 병인(病因)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머리말에서)는 것. 또한 의학박사를 중심으로 한 옮긴이들이 각 장의 주제별로 한국 상황을 덧붙임으로써 우리 현실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한다.

분량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으나 책값은 조금 부담스럽다.

옹녀가 탕녀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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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스트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1-4 | 신동흔 등 지음 | 서대석 엮음 | 휴머니스트 | 각권 370쪽 내외 | 각권 1만3500원

당신은 우리 고전문학 속 인물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흥부, 심청, 춘향, 홍길동, 장화와 홍련…?

책을 엮은 서대석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85명의 한국고전문학 연구자들이 각자 1명씩 85명의 고전 속 인물에 대해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옹녀'에 대한 '탕녀론'을 뒤집고, '장화홍련'이 만들어낸 착한 아이 신화를 꼬집기도 한다. 고전소설뿐만 아니라 설화, 전설, 민담 등 구비문학의 인물들도 되살려냈다. 웅녀, 마고할미, 바리공주 등 신화의 인물부터 강감찬, 황진이, 박문수 등 실존인물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4권을 모두 읽기 부담스럽다면 일단 그 가운데 아무 편이나 1권을 먼저 읽어도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고전이 고루하다거나 고전 속 인물이 밋밋하다는 선입견은 지울 수 있을 것이다. 토속적인 삽화도 정감이 간다.

봉정암을 오르내리며 마음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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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북스

열림 - 마음이 길을 만나는 시간 | 임윤수 지음 | 가야북스 | 196쪽 | 1만1000원

강원 인제군 백담사 봉정암. 국내에서 가장 하늘 가까운 곳에 자리한 암자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 중 하나로,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 고승 자장율사에 의해 세워졌다.

'무시로 출가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둔한 중생'이라고 자신을 밝힌 저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계속 산사 행을 연재한 그가 5년에 걸쳐 봉정암을 오르내리며 만난 사계절과 사람들을 정성껏 카메라에 담고 "뚝뚝 흘렸던 땀방울을 묻혀가며 마음으로만" 글을 썼다.

여유가 안 되는 독자라면 책으로나마 저자와 동행해 봉정암에 올라보는 건 어떨까. 물론 책을 읽은 뒤 직접 올라보면 더욱 좋겠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미리 보여주는 미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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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세움

세상을 뒤집을 100가지 미래 상품 | 테오도르 핸슈 지음 | 김영옥·최중호 옮김 | 콜로세움 | 368쪽 | 2만원

대통령직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 파동으로 여전히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그런데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또 시각장애인이 시력을 되찾고, 암이나 치매 등 불치병을 예방할 수 있다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현재 실제로 독일에서 연구와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미래 상품 이야기다. 200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저자가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과 함께 선택한 상품이니 단지 뜬구름 잡는 소리만은 아닐 터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제품을 10년 안에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아참, 외국어를 완벽하게 소통하게 만드는 뇌이식 언어번역 칩의 출하 시기는 안타깝게도 가깝게는 2020년, 멀게는 2050년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별 수 없이 각자 알아서 나름대로 영어 공부를 할 수밖에 없겠다.

제 발로 나치의 깃발 아래 모인 독일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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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대중의 국민화 - 독일 대중은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었는가? | 조지 L. 모스 지음 | 임지현·김지혜 옮김 | 소나무 | 336쪽 | 1만8000원

"무수한 대중을 국민으로 만드는 일은… 목표를 향해 무자비하고 광적이며 일방적으로 나아가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나의 투쟁>에 적은 아돌프 히틀러의 글에서 책의 제목(The Nationalization of the Masses)을 따왔다.

그러나 저자의 해석은 히틀러의 주장과는 다르다. 독일 대중이 히틀러의 국민이 된 것은, 히틀러의 표현대로 무자비하고 광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문화적인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논지를 기념비와 미장센, 체조·사격 동호회와 연극·영화 등 대중예술, 그리고 군중대회와 국민의례 등의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의 이 같은 분석은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1975년 당시 서구 학계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저자 자신이 나치가 집권한 뒤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공식행사마다 여전히 국민의례가 앞서고, 얼마 전까지 '국기에 대한 맹세'로 애국심을 증명해야 했던 우리이기에 결코 흘러간 먼 나라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작은 것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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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윙스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 세상의 변화를 읽는 디테일 코드 | 팔란티리 2020 지음 | 웅진윙스 | 328쪽 | 1만3000원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친구나 가족과 소통하는 양이 많이 늘었다는데, 그럼 그만큼 더 친해진 걸까?'

국내 최대의 인터넷 포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만든 소장파 연구자 모임인 '팔란티리 2020'의 토론은 이런 사소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질문은 곧 '과연 우리 삶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고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로 확대됐고, 거듭된 토론을 통해 답은 '작고 사소한 힘의 재발견'으로 모아졌다.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란 '티끌 모아 태산'의 교훈이 실현되는, 작고 사소한 힘이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회.

이 책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미래인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의 면면을 개인의 정체성과 프라이버시, 지식의 개념과 습득, 권력과 권위의 변화, 경제ㆍ놀이ㆍ예술 등 7개의 영역에서 살펴보고 있다. '팔란티리'란 이름은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미래를 내다보는 돌'에서 따왔다고 한다.

'색채의 마술사'가 아픔 속에서 그려낸 '아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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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콜론

샤갈의 아라비안 나이트 | 리처드 E. 버턴 지음 | 마르크 샤갈 그림 | 김원중·이명 옮김 | 세미콜론 | 256쪽 | 1만6000원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그림과 '아라비안 나이트'의 관능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어울린 책. 그만큼 더 황홀하고 신비롭다. 또한 더 에로틱하다.

삽화를 그린 샤갈이 직접 300여 편의 '천일야화' 가운데 네 편의 이야기를 골라, 컬러 석판화와 흑백 드로잉 26점의 그림을 입혔다.

당시 망명지에서 사랑하는 아내 벨라를 폐렴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황폐해져 있던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위로하고자 했던 것일까. 네 편의 이야기는, 샤갈의 인생처럼,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불가분의 인연, 불가역의 사랑, 이별과 재회,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각각 담고 있다.

색채로 사랑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한 샤갈의 그림이 자꾸 눈길을 붙잡기는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기까지는 '천일'이 아니라 하룻밤이어도 충분할 듯. 고대 그리스 염소치기 소년과 양치기 소녀의 사랑 이야기인 <샤갈의 다프니스와 클로에>도 함께 출간됐다.
#이주의 새책 #샤갈의 아라비안 나이트 #페기 구겐하임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미래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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