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 "우리 학교 삼겹살 소풍, 킹왕짱이에요"

[현장] 경남 창원 경일여고 3학년 학생들의 이색 소풍

등록 2008.04.12 11:58수정 2008.04.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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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에 삼겹살이 빠지면 무슨 재미?"


소풍이라고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를까. 아마 40, 50대들은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과 사이다가 생각날 것이고 20대는 출석만 하고 흩어지는 명목상의 소풍만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자연과 더불어 삼겹살 파티를 벌이는 봄소풍을 떠난 처자들이 있다. 바로 경남 창원의 경일여자고등학교. 지난 11일 창원 올림픽공원을 습격한 경일여고생들의 봄소풍 현장에 동행했다.

김밥 대신 삼겹살과 함께한 고3 소풍 

a  "한 입 드세요"

"한 입 드세요" ⓒ 정영현



a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한입 베어먹는 냉면의 맛. 그런데 이들의 냉면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한입 베어먹는 냉면의 맛. 그런데 이들의 냉면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 정영현




창원 시민들이 자주 찾는 꽃놀이 장소인 창원 올림픽 공원. 4월 중순이 되면서 벚꽃은 많이 떨어졌지만 그곳을 명랑한 고등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봄향기 가득해야 할 이곳에 불판에서 고기 익어가는 소리와 느끼하면서도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고기 굽는 주인공들은 바로 경일여고 3학년 학생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거나 고기를 구우며 그동안 친구들과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삼겹살 파티와 함께하는 경일여고 3학년들의 이색 봄소풍은 올해로 3년째.

김해룡(41) 경일여고 3학년 학생부장 교사는 "이전 소풍은 단체로 영화 한 편 보고 사진 찍고 헤어지는 걸로 끝이었다. 삭막한 도시와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나 봄의 기운을 만끽하는 소풍을 생각하다가 마련된 행사"라고 밝혔다. 1, 2학년들은 이 흥겨운 삼겹살 파티에 동행하지 않고 테마여행을 간다고.

김 교사는 "당장 내일 모레가 수능이긴 하지만 명목적인 소풍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마련되어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사의 말에는 창원 최초이자 유일의 고3 소풍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교실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해방감을 한껏 느겼다. 사실 아침도 먹지 않아 출출했던 터라 학생들이 주는 고기쌈을 넙쭉 받아들고는 함께 자리를 잡았다.

"우리 학교 소풍이요? 킹왕짱이에요!"

a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자른다" 친구들이 구워 준 고기를 신중하게 자르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자른다" 친구들이 구워 준 고기를 신중하게 자르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 ⓒ 정영현



지글지글 불판에 고기는 기본, 상추에 깻잎, 각종 쌈장에 참기름장까지. 이만하면 고기 한 번 제대로 먹는 거다. 이 외에도 과자나 음료수도 갖추고 있어 야유회 분위기가 한껏 났다. 

"우리 학교 소풍이요? 킹왕짱이에요"

이날 소풍을 한마디로 설명해 달라는 주문에 배나영양이 그야말로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고3 삼겹살 파티 소풍에 대한 평이 나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소풍을 나온 박민주양은 "처음엔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학교가 이런 소풍을 하겠느냐?"며 "이제 소풍이라고 하면 오늘 친구들과 고기 구워먹던 기억이 날 것 같다. 아마도 나의 고등학교 3학년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추억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서영양도 "고기는 각자 사고 여러 가지 물품을 분배해 가져오는데 신선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교육정책 얘기에 맛난 고기 목에 걸릴 뻔했네

a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아악~ 즐겁기만 한 아이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아악~ 즐겁기만 한 아이들. ⓒ 정영현


a  나중에 졸업앨범에 쓰일 소풍사진. 아마 이들의 사진에는 무엇인가 다른 추억이 존재할 것이라 확신한다.

나중에 졸업앨범에 쓰일 소풍사진. 아마 이들의 사진에는 무엇인가 다른 추억이 존재할 것이라 확신한다. ⓒ 정영현



하지만 역시나 소풍을 나와도 고3은 고3이었다. 교육정책에 대한 생각을 슬쩍 떠봤더니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학생은 "청소년은 나라의 기둥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따라 열심히 산에 올라가 정상에 다 왔다고 생각하면 또 다시 정책이 바뀐다. 산을 다시 내려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기분이 든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창원은 학원 운영시간이 새벽 1시 30분까지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자는 게 아니라 거의 기절하는 거다"라며 녹록지 않은 고3 생활을 전했다.

a  아이들 관리에 바쁜 선생님께 정성스레 쌈을 싸는 학생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아이들 관리에 바쁜 선생님께 정성스레 쌈을 싸는 학생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 정영현



교육정책 얘기를 하다보니 맛있게 구운 고기가 목에 걸릴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결국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학교 선생님 이야기.

한 학생은 "선생님들끼리 정이 많으신 것 같다. 특히 사립학교라 그런지 오래 근무하신 분들이 많아 선생님들끼리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것 같다"며 "편안한 분위기라 우리들도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다. 정도 많고 행복이 넘쳐나는 우리 학교가 너무 좋다"며 학교 자랑을 이어갔다.

2시간여의 소풍이 끝나고 이제는 돌아갈 시간. 경일여고 3학년 학생들은 가져온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꼼꼼히 챙겼다. 왁자지껄 삼겹살 파티까지 벌였지만 머물다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정말 '강추'하고 싶은 환상적인 봄소풍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a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한참 어지러져 있던 자리를 말끔하게 치운다.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한참 어지러져 있던 자리를 말끔하게 치운다. ⓒ 정영현


#소풍 #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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