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전경련 주도 '대안 경제교과서', 너무 노골적이다

등록 2008.04.13 18:03수정 2008.04.13 18:04
0
원고료로 응원

기성세대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가 무장공비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승복 신화'를 교육받았다.

 

'이승복 신화'는 어른은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까지 반공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었던 훌륭한 미담(?)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0살도 채 안된 어린 아이도 이데올로기 전선 중심에 서서 "공산당이 싫다"라고 외치다가 죽으면, 국가에 의해 사실상의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신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교육이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일본 극우 세력이 괜히 '후지샤 수정교과서'를 만들고, 뉴라이트가 괜히 '대안 국사교과서'를 만든 것이 아니다.

 

욕 먹을 때는 먹더라도 일단 만들어내면서 그것을 정식교과서로 채택하는 학교가 단 1개라도 나타난다면, 그 이후부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18대 총선으로 드러난 민심은 연대의식이나 역사의식 따위는 제쳐두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냈다. 그 '대안 국사교과서'를 주도한 뉴라이트의 대표급 인물이 지역구에서 당당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는 것은 이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대안 국사교과서'는 예외로 판단해야 할 항목이 있다. 일단, 한국인의 반일 정서는 순간 끓다가 식든 어쩌든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한일전 축구와 일본 정치인의 '독도 망언'이 멈추지 않는 한, 순간 끓다 식더라도 '반일'은 어찌됐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라이트의 '대안 국사교과서'는 그네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 그 목적을 위해 나아가려면 나름대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전경련 경제교과서'

 

앞서 이야기했듯이, 18대 총선에서 민심이 이야기한 것은 "역사의식보단 경제, 경제 중에서도 집값과 땅값"이라 할 수 있겠다. 연대의식과 상식을 가차없이 무시해버린 이 결과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자본주의 사회답게 경제가 정치를 뒤흔들 정도의 지배적인 분야로 우뚝 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란 이미 이 사회의 주류들이 주도권을 확고하게 틀어진 학문이며, '경제'라는 학문처럼 그 의미가 왜곡돼 전달되는 학문이 없다. 분명히, 자신의 신세는 서민인데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대기업이나 재벌 총수들만의 경제를 '국민 경제'로 착각하고 '좌파 세력' 운운하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존재가 그를 증명한다.

 

유권자에게 있어 '경제'의 의미를 전달하려면, 그 의미는 '국민 경제'가 돼야 한다. 하지만 '삼성 특검'에서도 드러나는 삼성의 갖가지 의혹,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발맞춰 추진되는 '금산분리 완화 및 폐지'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그리고 재계의 '상속세 폐지' 요구 등, '시장 경제'의 이름을 빌어 자신들만이 이득을 볼 정책을 요구하는 1% 부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전경련은 약 2년 전부터 치밀하게 '대안 경제교과서'를 준비해왔다. 각종 출판사들의 기존 경제교과서에 대한 "반기업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보수언론 및 경제언론 등을 앞세워 자신들의 '대안 경제교과서'의 내용과 필요성을 앞세워온 것이다.

 

'반기업정서' 엄살 속에 숨은 의도는 뭘까

 

그렇다면, 우리가 일단 알아봐야 할 것은 소위 말하는 '반기업정서'라는 말에 대한 보수언론 및 뉴라이트 인터넷 언론, 그리고 경제언론의 엄살 아닌 엄살이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한 덕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룩했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제교육 수준이 뒤떨어져 있다. 경제교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교과서는 반(反)시장주의를 부추기는 왜곡된 내용투성이다.

 

대한상의가 경제, 사회, 국사, 근현대사 등 4개 과목 교과서 60종을 분석한 결과 학생에게 잘못된 경제관을 심어주거나 한국 경제성장 과정을 폄훼하는 내용이 337곳이나 발견됐다. 대한상의가 2003년부터 좌(左)편향 내용의 시정을 촉구했는데도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은 것은 정권의 색깔과 교육당국의 무책임이 결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동아일보> 6일자 <[사설]市場원리 바로 가르쳐야 선진국 될 수 있다>의 일부

 

"'학교는 우리 아이들에게 '기업은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질이나 하는 악한'이라고 가르친다. 교과서에 따르면, 선진국의 배를 불리기 위해 우리 농민들이 희생하고 있으며, 그 것이 오늘날의 자유무역이다. 자유시장 경제는 불평등과 독점, 그리고 공황을 야기한다. "우리 살림살이가 어려운 것은 바로 시장경제 탓이다.'

교과서의 문제는 수업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전경련이 초중고 교사 2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우리나라의 빈부격차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한 교사가 48.4%에 달했으며, 외국기업의 국내진출을 나쁘게 본 교사는 54%나 됐다.

국민들의 반(反) 시장 정서는 이렇게 어릴때부터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육성된다." -<데일리안> 3월 11일자 기사 <(창간기획)`잘살아보세` 희망버리고 `같이죽자`>의 일부

 

그러면서, 전경련의 '대안 경제교과서'의 정당함을 홍보한다.

 

"'고교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이 발간된 지 8개월 정도 지났다. 일선 교사들은 대부분 "수업 시간에 활용해 본 결과 학생들이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게 됐다"는 평가다.

이 고교용 경제교과서는 현재까지 총 4만6000부가량이 배포됐다. 전경련 측은 "지금도 경제교과서를 받아보고 싶어하는 교사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오는 2월 중학생용 경제교과서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고등학생용 경제교과서의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중학생들에게도 올바른 경제지식을 심어주자는 것이다." -<한국경제> 1월 20일자 기사 <중학생용 경제교과서 만드는 이유는‥경제지식 美ㆍ日보다 턱없이 부족>의 일부

 

"전경련 관계자는 '고등학교 경제는 선택과목이기 때문에 필수과목인 중학교 사회 교과과정에서의 경제교육의 중요성이 더 크다'며 '차세대 교과서는 이념적인 편향성을 배제하고 학생들이 시장경제 원리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4일자 기사 <전경련 하반기 발간 ‘차세대 중학교 경제’ 들여다보니>의 일부

 

"고등학교 경제는 선택과목이기 때문에 필수과목인 중학교 사회 교과과정에서의 경제교육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전경련 관계자의 말에서, 나는 섬뜩함을 느낀다. 더 어리고, 필수적으로 경제를 배워야 하는 교과과정을 거쳐야 하는 중학생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경제교육의 중요성'이라는 표현을 빌은 '기업 이데올로기의 세뇌'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반기업 정서'가 큰 문제라고 하지만,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오래전부터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손꼽혀 오고 있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는 국민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김용철 배신자론'을 외치는 사람들의 존재에서도 알 수 있는 일.

 

삼성을 예로 들었으니, 삼성의 예로 설명해보자. 삼성이 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삼성비판론자들은 전략기획실을 축으로 지배권 승계를 위해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법체계까지 움직이려드는 총수 일가를 비판할 뿐이며, '윤리경영'을 주문하고 있을 뿐이다.

 

재벌 회장이 불법을 저지를 때마다 '경제논리'로 우리만큼 그네들의 편의를 봐주는 사회가 또 어디에 있을 것이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하청기업에 우리 재벌이나 대기업만큼 폭력을 휘둘러온 사회는 또 어디에 있을까? 그 중소기업 중 일부는 이주노동자를 데려와 "불법체류자로 전락시켜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고질적인 착취를 일삼는다. 우리만큼 '친기업 사회'가 어디에 있다고 엄살을 부리는가.

 

물론, '윤리경영'이라는 말 자체에 불만을 품고 '좌편향'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 기사를 살펴보자.

 

"재계는 우선 초ㆍ중ㆍ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 교과서가 기업의 역할에 대해 `이윤 창출을 통한 사회적 기여`라는 본질적인 부분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라는 당위를 지나치게 강조해 청소년들의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된 시각을 담은 내용을 여과 없이 반영함으로써 반기업 정서 확산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럴드경제> 2004년 6월 7일자 기사 < [I Love Companies] `기업본질 편향전달` 교과서부터 고치자>의 일부

 

"나는 기업을 사랑합니다"라는 제목의 일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의 당위를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것 자체가 청소년들을 향해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게임 '서든 어택'을 하느라 반기업이고 친기업이고 관심 자체가 없다. 대학생들은 거대재벌 삼성그룹의 수장에 대한 보수언론과 경제언론의 찬양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이건희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꼽고 있다.  

 

전경련은, '서든 어택'에서 총을 쏘느라 바쁜 청소년들의 현실을 눈여겨보면서, 일찍부터 그 '관심없음'을 악용해 '불법으로 얼룩진 경영자 및 재벌 오너'라는 치부를 감추며 그 당위성을 세뇌하려고 할 뿐이다. 말은 똑바로 하도록 하자.

 

전경련이 학생들에게 '경제'를 가르칠 입장이 되나

 

자유기업원을 위시한 친기업 이데올로그들이 '레이거노믹스'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를 수입해왔다가, 오히려 자승자박에 빠지게 된 이유는 '주주 자본주의'에 있다.

 

제대로 된 '친기업 문화'대로라면, 기업 내에서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야 한다. 주주 자본주의 속에서,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 오너들은 위기에 몰리게 된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벌 오너들은 대개 그룹 내에서의 지분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려다 보니,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형성, 그리고 차명계좌를 동원한 차명주식 구입, 지배권 승계를 위한 전환사채 놀음 등의, 온갖 '반기업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전경련은 학생들에게 경제를 가르칠 입장이 못된다. 학생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려면, 전경련에 가입한 재벌 회장들의 그룹 내 지분을 명백하게 조사해, 지분이 얼마 되지도 않음에도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재벌 회장들의 퇴진부터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전경련의 '대안 경제교과서'는 보수언론의 "인기가 좋다"는 홍보 속에 군부대에까지 전파됐다고 한다.

 

군부대야말로 유권자를 향한 '국가'라는 조직의 세뇌가 확실하게 통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대안 경제교과서'를 보고 사회로 돌아온다면, 88만원 세대가 상위 1% 부자들에 대한 세제를 비난하는 코미디같은 상황이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것이 전경련과 보수언론 및 뉴라이트 인터넷 언론, 그리고 경제언론이 꿈꾸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집값'과 '땅값'이라는 단어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는 유권자들의 성향 속에서 조만간 현실로 자리잡을 것이다. '대안 국사교과서'를 주도한 대학 교수의 강연을 주최한 뉴라이트의 핵심인물과 외국 유학을 다녀와 젊은 나이에 돈을 많이 벌기로 유명한 특정언론의 오너가 이미 의회로 진출한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반기업 사회'가 아니다. '반기업 정서'는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오히려 대한민국만큼 '친재벌오너 사회'는 있을 수 없다. '반기업 정서'라는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1%들의 세상을 구축해 국민들을 세뇌하려는 의도라는 것, '대안 경제교과서'의 의도가 이것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영화는 프리츠 랑의 1925년작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다. 전경련 회장단들을 향해 이 영화에 대한 상영회를 추진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도, "이렇게 좌편향된 영화는 상영을 중지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을까? 자신들의 의견을 '세뇌'하려고만 할 뿐인 사람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파시스트'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13 18:03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뉴라이트교과서 #전경련 #대안교과서 #뉴라이트 #전경련 경제교과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판도라의 상자' 만지작거리는 교육부... 감당 가능한가
  3. 3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4. 4 쌍방울이 이재명 위해 돈 보냈다? 다른 정황 나왔다
  5. 5 카톡 안 보는 '요즘 10대 애들'의 소통법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