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향한 한줄 서기... 전문계고는 어디 설까

전문계 학생들의 전공지식과 기능도 공부임을 인정해야

등록 2008.04.17 09:27수정 2008.04.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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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6일 낮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왼쪽 세번째)이 김형진 자유교원노조 위원장, 이원한 한국교원노조 위원장,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과 함께 오찬모임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날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 발표가 거센 반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날 회동에서 교원단체 위원장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16일 낮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왼쪽 세번째)이 김형진 자유교원노조 위원장, 이원한 한국교원노조 위원장,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과 함께 오찬모임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날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 발표가 거센 반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날 회동에서 교원단체 위원장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 권우성

16일 낮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왼쪽 세번째)이 김형진 자유교원노조 위원장, 이원한 한국교원노조 위원장,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과 함께 오찬모임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날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 발표가 거센 반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날 회동에서 교원단체 위원장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 권우성

새 정부답게 전봇대 뽑듯, 십여 년간 애써 일궈온 교육정책들을 시원시원 뽑아내고 있다. 0교시 허용, 일제고사 시행, 사설 모의고사 허용…. 그동안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있던 실업계 고등학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잘 사는 동네에 실업계 고등학교가 들어온다고 했더니, 주민들이 무슨 혐오시설 대하듯 반대한 일이 있었다. 그 탓인지 얼마 전부터 명칭을 '전문계 고등학교'로 바꾸었다.

 

명칭만 바뀐 것이 아니다. 요즘 들어 때아닌 '야자'와 '보충'수업을 하는 전문계 고등학교들이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해, 전문계 고등학교는 취업을 주 진로로 삼고 있기에 색다른 변화라 하겠다.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왜 '야자'를 하지?

 

인문계 고등학교 서넛을 세우는 예산이 들어간다는 전문계 고등학교는 국가적으로 산업인력의 수요를 판단하여, 기능 인력을 기르기 위해 세워진 공업계나 상업계·정보산업계 등의 학교를 말한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실업계고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우선 선발하는 호시절을 누렸다. 그러나 현재 전체 고교의 절반에 달하는 전문계고는 한때의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중학 시절에 학력이 낮은 학생들이 등 떠밀려서 오다 보니, 전문계고의 정체성이나 특성을 살려내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적성이나 진로에 따라 자발적으로 입학한 학생은 극소수이다. 공부를 못해서 인문계고를 가지 못했다는 상실감 탓에 전문계고 학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진학에 더욱 집착한다.

 

실제로 전문계고 학생들 대다수가 자신이 삼년간 익힌 전공과는 동떨어진 분야로 진로를 삼는 경우가 많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가르친 기능 인력의 유출은 전문계고의 존속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기피하는 전문계고의 입장에서는 학교 설립목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학교의 정원을 채우는 일이 더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들어, 학생들의 현실적 요구를 받아들여, 진학반이나 대입을 위한 '야자'와 '보충수업'을 시행하는 전문계고가 늘고 있는 것도 이런 고민의 일단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전문계고에서는 적잖은 내부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고, 시대 변화에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현실론과, 국가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돈을 세워 만든 전문계고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지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론이 맞선다. 이를 둘러싸고 학부모와 학교, 학교장과 교사, 인문계 교사와 전공 교사 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제 일제고사, 0교시 부활, 입시 교과목의 방과후 교육 허용, 대학별 학생 선발 재량권의 부여 등은 인문계고와 마찬가지로 전문계고에도 비슷한 걱정을 불러 일으킨다.

 

대학을 향한 한 줄 세우기 교육

 

a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열린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규탄 기자회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열린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규탄 기자회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열린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규탄 기자회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과도한 학력 경쟁과 이로 인한 인성교육의 후퇴, 입시교육에 붙들린 특기적성교육의 위축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또한 학력이 뒤처지는 학생들이 많은 전문계고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인문계고와의 교육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를 따라잡기 위해 많은 전문계고들이 본래 교육과정을 벗어나, 파행적인 입시 교육에 기대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전문계고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지금도 학생들에게 외면 받는 전공교육은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공교육과정이 소외되는 전문계고가 계속 존립할 필요가 있을까. 입시교육 중심의 무한 경쟁 체제가 강화될수록, 전문계고와 인문계고는 차별성이 줄어들 것이다. '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력 하향과 획일성을 이유로 평준화정책을 꼬집어 오던 교육정책가들이 즐겨 써 온 '교육의 다양성'이란 것이 어찌 보면 대입을 위한 서열화가 아닌지 자못 의문스러워진다. 큰 덩어리로 묶는 내신이나 수능제를 벗어나, 소수점 몇 자리까지 쪼개어 학생들이 제 실력대로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벌여 보도록 하자는 말씀이 '다양성'일까.

 

대학을 향한 한줄 서기의 이 대열에 전문계고가 어디쯤 자리잡게 될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새로운 교육정책에서는 '공정한 경쟁과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지만, 이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지나치게 도외시한 말이다. 얼마 전, 서울시 의회에서 학원 수업의 시간 제한을 풀자는 주장을 했을 때, '하고 싶은 학생은 하고, 말고 싶은 학생은 말면 되는 것'이라는 내용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대입의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남들은 다 자정이 넘도록 학원을 다니는데, 저 혼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학생은 학생에 대한 이리'로 몰아가는 입시 경쟁의 비인간적 구도에서, 그것은 몽상에 가까운 말이다. 실력대로, 선택대로 자유롭게 경쟁하게 놓아두자는 말은 뒤처지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한 말일 수밖에 없다. 뛰어난 한 명을 기르기보다, 뒤처진 아홉 명을 살펴 바로 세우는 것이 교육의 원래 모습이 아닐까.

 

욕심과 불안의 '선착순'

 

군대의 체벌 가운데 '선착순'이라는 것이 있다. 일정 지점을 달려오게 해, 뒤처진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벌을 주는 달리기 경쟁이다. 그 괴로움을 알기 때문에 달리기 전에 '모두 천천히 뛰자'고 다짐을 해 보지만, 그 다짐은 언제나 앞서 뛰는 최초의 욕심쟁이 탓에 깨지고 만다. 앞서 달려나가는 이를 욕하면서도, 남은 이들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숨이 목에 차도록 뛰게 되는 것이다. 옆에서 동료가 넘어지거나 말거나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우리 교육은 바로 '선착순'에서 나타나는 '욕심과 불안'의 두 기제 사이에서 파행을 멈추지 않는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려는 이들의 욕심과, 이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불안이 학교를 입시교육의 학원으로 전락시키고, 과도한 사교육의 광풍으로 공교육을 황폐화시키는 것이다.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이 횡행하는 것이라는 예단은 황당하기조차 하다. 사교육은 기본적인 공교육에서 한발 앞서려는 이들의 욕심과, 이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울면서 가랑이가 찢어지는' 서민의 불안에서 호황을 누리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전문계고도 이러한 '선착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특성화고도 그 의욕적인 설립 취지와 신선한 교육과정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라는 벽 앞에 이르러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계고와 특성화고들이 애초의 설립 목적을 방기한 채 대학 입시에 집착하는 현실을 비난만 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무작정 전공을 살려 고졸로 취업하라고 권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우리 교육의 '절반의 실패'라 불리는 전문계고의 슬픈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학력이 가져다주는 무참한 사회 차별부터 해소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전문계고도 산업구조와 시대적 변화를 앞서가는 능동적인 변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의 기능 인력 양산 체제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산업 구조를 따라잡기 어렵다. 학교별로 다양한 교육과정과 시대 변화를 앞서 판단하는 교육과정과 교원 양성 정책, 지금이 아니라 아이들이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를 내다보는 전망 등을 반영하는 정책 배려가 앞서야 할 것이다.

 

입시 준비만이 공부는 아니다

 

이제 새 정부의 자율과 다양성을 중심으로 한 무한 경쟁의 교육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그 동안 '앞서 뛰려는' 몇몇 학교들의 욕심은 폭넓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공연히 전공만 고집하다가 아무도 오지 않는 학교가 되리라는 '불안감'을 벗어낼 학교가 얼마나 될까.

 

결국 모든 학교는 인문계고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며, 더 심하게 말하면 마음대로 뛰어보라고 부추기는 입시경쟁의 경마장에서, 0교시와 자정까지의 야자로도 성에 안 찬 '욕심'은 결국 모든 학교에 기숙사를 만들어, 밤새워 공부하는 기숙학원 꼴이 되고 말 것이다. 학교와 학원이 다르지 않고, 전문계고와 인문계고가 구별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힘주어 말해 온 '교육의 다양성'인지 묻고 싶다.

 

새 정부가 내어 놓은 교육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은 지나치게 학력지상주의라는 점이다. '공부'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는 근원적인 물음을 되살리고 싶다. 적어도 새 정부가 내어 놓은 교육정책은 자유와 능력을 앞에 내걸었지만, '교육'보다는 '입시'에 노골적으로 치우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학력에 속하지 않는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적성교육이나 봉사활동, 인성교육 등은 '공부'에 속하지 않으며,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제 대학에서 알아서 결정하기로 한 '대학 입학 선발 기준'에 속하지 않는 것들은 더 이상 '공부'도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적어도 대입에 필요한 것은 아니더라도, 취업을 준비하는 전문계고 학생들이 땀 흘려 익히는 전공지식과 기능도 엄연한 '공부'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교육정책가라 할 수 있을까. 사설 학원의 입시 전문가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17 09:2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입시교육 #0교시 #일제고사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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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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