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인디언포커' 치고 자기도취 빠진 이명박 외교

등록 2008.04.23 09:55수정 2008.04.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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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임기 동안 정권을 공격하던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서면 "(나라가) 참 조용해서 좋다"고 비아냥거리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6박7일 간 미국과 일본 순방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나라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대통령 출국 직전에 타결된 쇠고기 협상은 말이 좋아 타결이지, 우리의 건강 주권과 검역 주권을 사실상 무장해제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조공외교'라는 비난이 출발 전부터 이어졌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 스스로 90점이라고 매긴 한미정상회담 성과는 '21세기 전략동맹구축'이니, '대외군사판매지위조정'이니 하는 매우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건강 주권과 외교적 자주권을 팔아 넘긴 사실상의 매국(sales) 외교였다.

 

대통령의 방미 전부터 모락모락 새어나오던 아프가니스탄 경찰훈련지원요청설이나 재파병 검토설이 대통령 귀국 하루 만에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것은 총선이 끝난 시점에서 정권이 더 이상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 이 땅을 유린한 일제의 수탈과 만행의 흔적이 채 아물기는 고사하고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망언 망동이 이어지는 오늘날 "천왕의 한국 방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 먹고 일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즈음에 종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눈에는 피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이번 방일, 방미 외교의 성과라고 떠벌이는 일들 중 한미동맹강화나 주한미군현수준 동결 같은 사안은 외교적 성과라고 보기에는 시대착오적 요인이 다분하다.

 

안보는 물론 중요하고 우리는 북한과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이 단독으로 남한을 공격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 러시아나 중국의 군사 지원없이 단독으로 남침을 강행한다면 북한 정권의 자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러시아나 중국이 미국과의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북한의 남침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이 시점에서 한미 간의 군사 동맹강화나 필요 이상의 미군 주둔은 안보적 실익은 거의 없이 우리 측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측이 주둔비용을 인상하면서까지 머물러 달라는 데야 미국 측이 이를 외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미 FTA 인준안 의회 조기 상정이 외교적 업적이라는 것도 사탕발림이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한미 FTA 는 한국과 미국 양자 필요에 의해서 협상을 전개하여 협정을 맺은 것이고 협정 내용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 모두에 찬반 양론이 팽배하고 있다.

 

한미 FTA 의회 인준이 이명박 정권의 외교적 성과가 되려면 이 협정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이후 한국 정부의 행보는 프로 갬블러를 상대로 인디언 포커(히든 카드를 자기 이마에 붙여서 상대는 자신의 패를 알지만 당사자는 자신의 패를 모르는 채 배팅하는 게임)를 하는 어리석은 외교를 펼쳤다.

 

우리 정부가 반대 여론을 회유하기 위해 협상 성과를 부풀려 선전하고 있는 사이에, 미국 측은 얻을 것을 다 얻고도 공공연하게 협상 과정에서 자국 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 만을 지적하며 재협상을 거론하며 한국 측을 압박했고, 결국 자기들이 원하는 바 외에도 소고기 검역 철폐란 보너스까지 알뜰하게 챙긴 것이다.

 

결국 실용이니 세일즈 외교니하며 소란을 떤 대미-대일 외교가 결과적으로 국민의 민족적 자존심과 안보 및 외교 주권을 팔아 넘긴 사실상의 매국 외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이를 실용주의로 포장하고 미화하는 정권과 수구 언론들의 작태를 보자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힐 수가 없다.

 

이 땅에 참된 자주와 민주주의를 꽃 피울 그 날은 아직도 멀리 있는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23 09:5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아키히토 #부시 #굴욕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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