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재밌었던 '4·9 총선'

선거판은 '전쟁판'?... '불확실성' 때문에 더 재밌게 느껴졌던 '선거'

등록 2008.05.01 12:43수정 2008.05.0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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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인 우리 딸아이는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올해 처음 얻었다. 생애 처음으로 얻은 투표권이었지만 딸아이는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투표권이 없을 때는 투표할 수 있는 나이가 빨리 됐으면 하더니 막상 투표권이 주어지자 투표를 하지 않았다.

 

딸애는 집을 떠나 혼자 서울에서 살고 있다. 살고 있는 곳은 서울이지만 따로 독립하여 단독세대를 형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딸애 주소지는 우리집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도 당연히 주소지인 강화에 와서 해야 한다. 하지만 딸애는 투표를 하러 집으로 오지 않았고, 그래서 자연 딸애의 투표권은 그냥 날아가 버렸다.

 

사실 딸애 나이 또래 젊은이들에게 투표가 뭐 그리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겠는가. 그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이 많을 터인데, 굳이 투표에 하루를 바칠 만큼 선거가 매력적이지도 않았으리라. 그리고 부재자들을 위한 부재자 투표란 것도 있지만 관심있게 살펴보지 않는 이상 투표하기도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딸애는 생애 처음의 투표권을 그냥 보내버리고 말았다.

 

내 생애 첫 투표는 무조건이었다

 

약 30년 전에 나도 생애 첫 투표를 했다. 아마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뽑는 투표였던 거 같다. 우리 집안의 아제('아저씨'의 경상도 사투리) 한 분이 대의원에 출마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안은 전체가 다 한마음이 되어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때 나는 고향을 떠나 먼 타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한 표가 아쉽다며 투표를 하러 집에 오라는 거였다. 지금처럼 교통이나 좋은 시절 같으면 집에 다녀오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그때만 해도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이라 집에 다녀오자면 하루를 꼬박 다 바쳐야 할 만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도 나는 투표를 하러 고향에 내려갔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대였다. 투표 마감 시간을 얼마 안 남겨놓은 시간대에 내가 도착한 것이다.

 

투표소인 국민학교 교문을 들어서는데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마치 내 한 표가 당락을 결정하는 듯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온 집안사람들이 밀어줘서 그랬는지 그 아제는 대의원에 당선이 되었다. 아제가 당선이 되었다고 우리 집안이 큰 덕을 보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제의 당선은 우리 집안 전체의 경사였다.

 

남편이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에 나랑 성이 같은 이가 한 명 있다. 항렬을 따져보니 내겐 아제뻘이었다. 언젠가 친정에 갔을 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정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였다.

 

"아제라 캐라."

 

가까운 친척도 아니고 그냥 성만 같을 뿐인데 아제라고 부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말이다. 그래서 아제는 무슨 아제냐 그냥 남편 친구지 그랬더니 당장에 그러시는 거였다.

 

"아제 보고 아제라 캐야지. 다음에 만나거들랑 아제라 카고(부르고) 말 낮춰라 캐라."

 

우리 성은 좀 독특한 데가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이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 중에 '논두렁 밑에서 만나도 아제비 조카를 찾는다'는 말이 있다. 논두렁 밑에서 만난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걸식을 하며 다닐 정도로 사는 형편이 곤궁하다는 말이다. 그런 처지면 일가를 찾을 형편도 아닐 터인데, 그런데도 일가를 찾고 집안을 따진다니, 그만큼 우리 성은 결집력이 강하고 구심력이 있다는 말이리라.

 

종친회 모임에 오라는 연락을 받고

 

3월 어느 날, 그 아제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무 날에 종친회 모임이 있으니 나올 수 있겠느냐고 그랬다. 남편의 친구인 그 아제는 가끔씩 종친회에 다녀온 이야기들을 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성씨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종친회 모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종친회는 남자들의 일이지 여자들이 끼일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제가 종친회 모임에 같이 가자 그래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그 아제가 종친회 서울지부의 청년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이번의 모임은 아제의 회장 취임 인사 자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제의 면을 봐서 종친회 모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임날이 되어서 서울에 나갔다. 청년회 모임이라서 젊은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장년층과 노년층도 보였다. 알고보니 50대까지는 다 청년회원이라 했다.

 

가보니 종친회 회장님도 와계셨고 다른 지역의 청년회 회장님들도 몇 분 와계셨다.

 

종친회 회장님은 우리 선조들의 업적과 유적지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자랑스런 선조님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시다가 우리 종친 중에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바로 서울시 동작을 선거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예비 공천을 받았던 이군현 후보가 우리 종친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동작을'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동작을'은 서울의 다른 선거구에 비해 중요성이 덜한 지역인지 각 당에서는 유명 정치인보다 지명도가 낮은 정치 신인들을 후보로 내보내는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나라당의 후보로 예비 공천을 받은 이군현 후보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군현 후보는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현직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무난하게 당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이 되니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통합민주당의 '정동영' 후보가 '동작을'에 나간다는 거였다. 손학규 후보는 '종로'를 맡고 정동영 후보는 '동작을'을 맡아서 북부와 남부벨트를 형성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정동영 후보가 누군가, 바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아니었던가. 그 분은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거물 정치인인데, 우리 종친인 이군현 후보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사람이라 선거가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선거는 곧 전쟁이었다

 

그런데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정동영 후보에 맞설 사람으로 한나라당'에서 정몽준 후보를 전략 공천한다는 거였다. 이때부터 선거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언론매체에서는 연일 '동작을'에 대해서 대서특필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보다 '동작을'의 돌아가는 상황들에 더 관심을 가지고 흥미있게 지켜보았다.

 

그렇게 선거에 재미를 붙이고 들여다보자 선거가 바로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후보들은 전장에 최선봉으로 나서는 장수들이었고 하나 하나의 지역구는 전쟁터였다. 선봉으로 나서는 장수들 뒤에는 작전을 짜고 전략을 세우는 사령관들이 있었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지켜야 하고 막아야 하는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선거를 전쟁과 같은 것으로 보자 멀게만 느껴지던 선거가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거였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던 전쟁이 바로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선거는 바로 현대판 전쟁이었다.

 

흥미진진하게 이번 선거를 지켜봤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번 선거가 더 재미있었다. 관심을 두고보니 선거가 그렇게 재미가 있었던 거다.

 

이번 선거가 특히 더 재미있었던 것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던 그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미가 더 있었던 거 같다.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검투사들의 싸움을 보는 것처럼 선거판을 지켜봤다.

 

선거는 끝났고, 새로운 국회의원들이 선출되었다. 그 분들에게는 힘이 주어진다. 그 힘을 정의로운 곳에 써주길 빌면서 흥미진진했던 이번 선거를 기억 속으로 보낸다.

2008.05.01 12:43ⓒ 2008 OhmyNews
#선거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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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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