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장애인 목욕도우미를 여성으로 보낸다고?

2년 만에 온 목욕탕이라니...장애인들과 목욕탕에 가다

등록 2008.05.04 12:15수정 2008.05.0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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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입구 장애인한명을 두명의 비장애인이 들어서 목욕탕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입구 장애인한명을 두명의 비장애인이 들어서 목욕탕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 박정훈


"부귀 형은요?"
"몰라, 혼자서 가드만, 없어졌어."


지난 1일 금요일밤 저녁, 지난주 사직야구장에 이어 다시 한 번 장애인 한 명을 잃어버렸다. '지난주에 야구장에 먼저 들어가신 것처럼, 목욕탕에 먼저 들어가신 것은 아니겠지?' 그랬다면 이번에는 진짜 단단히 삐졌을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게 다 장애인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향상된 결과다.

예전 같으면 비장애인이 수동휠체어를 밀고 다녀서, 장애인이 길을 잃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 덕분에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니, 이런 일도 발생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비장애인들끼리도, 초행길에 혼자서 길을 찾아다니다가  헤매는 사람이 꼭 한 명씩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느긋해졌다. 

일단 4명의 장애인과 10명의 비장애인들이 부산대학교 앞 목욕탕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 찾기 어렵다는 계단 없고 엘리베이터 있는 목욕탕이 마침 부산대 앞에 있었다. 매주 단체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500원 할인도 받아 단돈 3500원으로 들어가는 행운도 잡았다. 나는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를 몰고 실내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일단 입구에서 장애인분이 내리고, 내가 전동휠체어를 몰아 주차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그러다보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만 30분이 걸렸다. 이 와중에 사라졌던 부귀 형과도 연락이 되어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휠체어에서 내린 장애인들을 비장애인들이 끌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욕탕으로 올라갔다.

a 기념사진 목욕탕안에서 여성장애인과 비누방울회원이 사진을 찍고 있다.

기념사진 목욕탕안에서 여성장애인과 비누방울회원이 사진을 찍고 있다. ⓒ 박정훈




좁은 옷 수납장에서 옷을 벗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발가벗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참 색다르고 민망한 일이다. 5년 동안 장애인과 함께 많은 활동을 해왔지만,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건 나도 처음이다. 한두 명이 아니라서, 내가 눈을 마주치면서 시선을 물리치는 기술도 쓸 수 없었다.

아무튼 무수한 시선을 뚫고, 장애인 한 명을 비장애인 두 명이 어깨와 다리를 잡고 탕으로 들어갔다. 목욕탕 바닥이 미끄러울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성인 장애인 3명을 비장애인 3명이 한 명씩 맡고 나머지 비장애인 1명은 자기 몸을 먼저 씻고 교대하기로 했다.


a 기념사진 목욕탕카운터에서 장애인1명과 비장애인2명이 기념사진을찍고있다

기념사진 목욕탕카운터에서 장애인1명과 비장애인2명이 기념사진을찍고있다 ⓒ 박정훈



나도 만날 샤워만 하다가, 오랜만에 때를 밀었다. 같이 활동하는 상욱이가 내가 부귀형 때를 밀고 있는 사이 내 등을 밀어줬는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때를 밀었다. 몇 년 만에 밀어서 그래선지 잘 나왔다. 다들 대충 씻고, 목욕탕의 백미, 뜨거운 탕 안으로 다같이 들어갔다.

"형, 얼마 만에 목욕탕에 오는 겁니까?"
"2년."
"부귀 형은요?"
"난, 3개월."
"왜 달라요? 같이 안 다닙니까? 두 분 안 친하죠?~ (다같이 웃음)."

a 목욕탕 두명의 비장애인이 장애인한명을 들어서 목욕탕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목욕탕 두명의 비장애인이 장애인한명을 들어서 목욕탕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 박정훈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는 했지만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2년 만에 목욕탕이라니. 최소한 추석, 설날에는 가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했다.

민성이형은 한 달에 한 번씩 복지관에서 목욕봉사자가 온다고 한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여성분이 오신다고 한다.

장애인은 이렇게 성적으로도 차별받는다. 장애인화장실이 남녀로 구분되어있지 않은 곳이 많다는 것은, 한 세 발짝 물러나서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고 있는데, 어느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 왔다.

"아고 착한아이들이네, 어디서 왔노? 교회에서 왔어?"
"아니요, 부산대사회대 학생회랑 같이 하는 거에요."
"아, 자원활동, 봉사활동하는가배, 좋은 일 하네."

물론, 장애인들을 버젓이 앞에 두고 이루어진 대화였다. 비장애인의 눈에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의 자원활동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장애인과 함께 있는 비장애인에게 대화를 시도하지, 장애인과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어디서 왔기는, 집에서 왔다'라고 중얼거리던 상래형의 목소리가 가슴을 쳤다. 건물에 턱이 없고, 활동보조인만 있으면 장애인도 언제든지 목욕탕에 올수 있다. 장애인이 목욕탕에 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면, 이런 대화도 사라지지 않을까? 최소한 이 목욕탕사람들이라도 익숙해지게 나름의 목표를 잡았다. 자 다음주도 파이팅이다!
#부산대학교 #비누방울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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