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웰빙시대 국민과 개발시대 대통령

등록 2008.05.05 13:41수정 2008.05.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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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싫다는 국민에게 왜 미국산 쇠고기를 강제로 먹이려 합니까!”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어느 초등학생 어머니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거칠게 쏘아붙인 말이다.

 

이 학부모의 발언 속에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전면 개방에 반대하며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초·중·고등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심경이 고스란히 다 녹아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으로부터의 안전성 문제와 관련해 지금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어려운 용어가 동원돼가며 복잡한 안전성 공방이 전개되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의 불안의 원인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먹이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로 대량 쏟아져 들어오게 되면 학생들과 군인들이 최일선에서 이들 미국산 쇠고기를 소화하게 될텐데 내 자신이 혹은 내 자식들이 광우병 쇠고기 여부의 실험대상이 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를 ‘값 싸고 질 좋은 고기’라고 선전했지만 우리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내 아이들에게 결코 먹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 국민은 웰빙시대를 살고 있는데 대통령은 아직도 지난 개발시대 마인드를 갖고 있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이 어디 경제적으로 어려워  고기 한번 먹기 힘든 그런 시대인가? 요즘 세상은 내 건강을 위해서 내 자식의 건강을 위해서  일부러 육류를 피하고 가려먹는 사람이 늘고 있는 그런 세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안하면 안 사 먹으면 될 것 아닌가”라고도 했다. 말은 맞는 말이다 .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학교단체급식이나 또는 군대 급식 현실을 도외시한  국정운영에 있어서 미흡한  상황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말았다.

 

취임초부터 이 대통령은 공무원의 대국민 머슴론을 강조해 왔다. 공무원이 머슴이라면 이 대통령은 상머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은 국민이다. 머슴의 올바른 역할이  무엇인가? 주인의 뜻을 잘 살펴서 주인이 불편함이 없게 일처리를 잘하는 것이 머슴의 제일 역할 아닌가?

 

지금 자신의  주인인 국민이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크게 불안해하고 있는데  머슴이란 자가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주인의 불안감을 제대로 해소시키지 못하면서 오히려 주인의 문제제기를 주변에 현혹된 것으로 치부하면서 미국산 먹거리를 반강요한다면 그게 제대로 된 머슴의 자세라 할 수 있는가?

 

청계광장의 촛불집회는 바로 주인인 국민을 향해 머슴 역할을 똑바로 하라고 외치는 주인인 국민의 꾸짖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대통령이 평소  “국내에는 내 경쟁자가 없다”던  발언이 혹시라도 국내에는 자신이 눈치 볼 주인이 없다는 오만한 머슴 자세에서 나온 발언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 국민을 섬기는 상머슴이 되겠다면서 속으론 국내에서 자신이 최고 주인양 오만함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에겐  개발시대하면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렵게 살던 시대의 기억과 함께 또 하나 인권과 자유가 억압받던 독재 시대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개발시대!, 이제 막 헐벗고 굶주림에서 조금씩 벗어나긴 했지만 반면 노동자들의 기본 인권이 억압받고 국민의 양심의 자유가 탄압받던 그 개발시대의 어두운 면을 우리는 가까운 역사로 기억하고  있다.

 

경찰당국이 이번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불법 집회참가자로 처벌하겠다고 한다. 보수단체들도 집회참가자들 전원 잡아다가 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 보태고 있다. 국정원은 또 우리 사회 암약 간첩을 잡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한다. 간첩? 지난 개발시대 독재수단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웰빙시대 국민과 개발시대 대통령! 양측간에는 아마도 30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견해차이가 크고 이로 인해 문제 해법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지금 정부가 뒤늦게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와 미국 사람이 먹는 쇠고기는 똑같습니다!’라고.

 

답답한 노릇이다 . 우리 국민들이 언제 미국인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쇠고기를 달라고 했나?, 우리 국민들이 지금 아메리카 넘버 원 하는 시대의 국민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먹거리의 문제인데, 미국인들이 먹고 안 먹고의 차원이 아니라, 광우병 의심이 남아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정부가 왜 우리국민에게 내 자식에게 강제적으로 먹이려 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말이다.

 

정부와 여당은 또, 야당과 좌파 불순세력들이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배후 불순세력을 철저히 색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것이  마치 근본적 해결책인양. 역시 안타까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보도되다시피 촛불집회 참가자의 60% 이상이 나이 어린 초중고학생들이고 그 부모들이다. 또 인터넷상에는 이미 100만이 훨씬 넘는 네티즌들이 출범한지 3개월도 채 안되는 이 대통령 탄핵에 동참하는 서명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찌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체제 전복, 정권 전복 세력으로 처벌할 것인가?

 

이명박 정부 시대가 낳은 최고의 독설가 진중권씨 발언을 빌려보자. 진씨는 얼마 전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 프로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이명박 대통령은 아마 한미쇠고기 협상을 끝내고 마치 자신이 공사기간을 단축한 것처럼 자화자찬하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바로 이 대통령의 개발시대 마인드(진중권씨의 표현에 의하면 ‘삽질철학’, ‘날림철학’)를 꼬집은 말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화나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한미 쇠고기 졸속 협상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하고 그리고  조속히 재협상에 착수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인터넷상에는 이명박  정부에 불리한 소식들이 속속 올라온다. '우리 정부가 캐나다산 쇠고기의 우회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미국은 우리 한우를 미국 자체 판단에 의거 수입금지 시키고 있다.' 상황이나 시간이 현 정부에 별로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어 보인다.

 

우리 국민은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런  국민의 기대가 확연히 깨지는 순간  ‘임금답지 않은 임금’은 백성들이 내칠 수 있다고 하는 맹자의  ‘폭군방벌론(暴君放伐論)’이 다시 거론될 지도 모르는 흉흉한 민심이다.

2008.05.05 13:41 ⓒ 2008 OhmyNews
#광우병 쇠고기 #이명박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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