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둔황' 모래 바람 소리를 듣다

서용 화가 '둔황 임모화' 전시회 27일까지 Lee C 갤러리에서

등록 2008.05.09 17:41수정 2008.05.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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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언어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천상언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 서용

▲ 천상언어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천상언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 서용

 

낙타는 사막의 모래를 밟고 지나가지만 작가는 생각의 모래들을 밟고 지나간다. 낙타가 지나간 길에는 작은 발자욱이 남았다가 바람에 쓸려가고, 작가가 지나간 곳에는 글이나 그림이 남는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론가 떠나 세상을 떠다닌다. 지인 중 한 명은 "특히 화가들에게 작품은 손가락 사이에 빠져가는 모래와 같다"고 표현했다.

 

지난 7일 오후 종로에 상서롭지 않은 기운이 지나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을 향해 하늘은 갑자기 장대비를 쏟아 부었다. 이후에도 산발적으로 이런 빗줄기가 쏟아졌다. 초파일을 앞두고 세워진 조계사의 연등에도 세차게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 비비람을 피한 이들이 삼청동 총리공관 앞쪽에 있는 Lee C 갤러리에 모여들었다. 둔황의 모래바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몇몇 이들은 그곳을 지나오면 자신이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듯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둔황 모래'라는 인터넷명을 쓰는 '서용'의 개인전이 오는 27일까지 Lee C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명도 '둔황의 바람에게 묻다'다.

 

작품에는 따로 제목이 붙어있지 않지만 모두 천상언어(天上言語)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사실 서용의 그림은 좀 낯설다. 둔황 석굴에 있는 벽화를 임모(臨摸)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임모라는 말이 많이 생경할 것이다. 간단히 하면 기존 벽화를 그대로 모사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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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에서 이야기 중인 서용 작가 ⓒ 조창완

전시회장에서 이야기 중인 서용 작가 ⓒ 조창완

 

왜 작가들은 이런 모사의 길에 들어설까. 이미 안정적인 자본주의하에 살아가는 이들이 새로운 창작의 물을 뽑아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92년 중국으로 건너간 서용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의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지만 그를 부르는 바람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97년 3월 둔황으로 가서 아예 눌러 앉았다. 7년 동안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고대 화가들과 대화했다.

 

둔황석굴은 4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은 한 무제(BC 141∼BC 87)의 명을 받고 장건(張騫, ? ~ BC 114)이 첫 길을 열었다고 하지만 돌궐이나 투르크, 흉노 등 용맹한 전사들의 땅이었다. 언제 어디서 반달 칼에 머리를 잘릴지 모르는 땅이다.

 

이후 불교라는 물고가 트인 뒤에 둔황이 만들어진다. 둔황으로 향하던 이들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사상에 따르면, 참선이든 공부든 가르침을 따르면, 극락왕생하리라 믿었다. 몇몇은 자신의 혈육을 팔아서라도 벽화를 완성하려고 했다. 그들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에서부터 불어오는 긴 공포의 소리를 들어야 했고 무기를 들고 와 남은 식량을 약탈하는 이들을 맞아야 했다. 이들 가운데는 왕이나 부자가 고용한 넉넉하고, 재주 좋은 이들도 있었겠지만 그저 열정하나만으로 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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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언어 0811 황토에 금채를 강하게 했다 ⓒ 서용

▲ 천상언어 0811 황토에 금채를 강하게 했다 ⓒ 서용

 

예술은 제대로 된 완전한 획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때로는 기술보다 혼이 중요할 때가 있는데 임모하는 작가들은 그 붓길을 통해 혼을 전수받고자 하는 것이다. 멀리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키질천불동에서 벽화에 빠졌던 한락연 선생이 있고, 중국 현대 작가의 대표자 중 하나인 장다첸(張大千 1899~1983)도 둔황을 임모했다.

 

둔황은 찾기조차 힘든 신기루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을 찾았고 벽화를 그리거나 조각을 했다. 수행자들은 토굴을 파고 그곳에서 수련을 했다. 그저 붉은 흙을 바라보고 대화하면서 그들은 찰라 같고, 먼지 같은 인생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그림을 다시 재현하는 것은 천상에 대한 열망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고뇌를 재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작품은 대부분 지난 2년간 작업한 그림들로 아미타불이나 관음을 그린 후불탱화들이다. 따라서 피 말리는 꼼꼼한 작업이 필수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주제에선 더 원칙을 지키고 소재에서는 더 다양한 시도를 해간다. 여전히 황토가 주 배경이지만 나무 등의 소재도 천착하기 시작했다.

 

번뇌와 좌절과 소란 속에 있는 속세가 싫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둔황의 바람 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 한적한 경복궁의 오른쪽 사잇길로 10분쯤만 들어가면 그 돈황 바람 소리를 눈으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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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언어0807 색까지도 현상에 최대한 충실하게 했다 ⓒ 서용

▲ 천상언어0807 색까지도 현상에 최대한 충실하게 했다 ⓒ 서용
#둔황 #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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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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