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절 가르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네요!"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16]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 임다예 ①

등록 2008.05.16 08:21수정 2008.07.1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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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 가는 길. 멀리 공사중인 영종대교가 보인다 ⓒ 이정환


덜컥 겁부터 났다. 생각보다 배 크기가 작다. 아직 숙취도 깨지 않았는데, 멀미 걱정이 앞섰다. 인천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무려' 두 시간을 배로 달려야 도착하는 곳,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산시에 속한 풍도라는 섬. 할 수 없다.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 신입생 다예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잔잔한 파도에, 뱃속도 가라앉았기 때문일까. 선실과 바깥을 오락가락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에 비례하여 기대감도 대폭 상승한다. 배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내가 지금 향하는 목적지는 사람 '손'을 덜 탄 곳일 가능성이 높다. 다예의 얼굴이 더욱 궁금해진다.

더구나 '마침' 5월 15일을 맞았다. 스승의 날, 풍도의 풍경은 '이기주의'로 퇴색되고 있는 도시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리라. 또 '나홀로 입학생' 다예가 난생처음 맞는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쓴 편지 내용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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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로 옆에 있는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 ⓒ 이정환


전교생, 학부모, 선생님들, 모두 소영이네 모이다

전교생이 '소영이네 집'에 모였다. 어머니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4학년 김은서, 3학년 최소영, 그리고 1학년 임다예 어린이. 어머니들과 선생님 두 분. 모두 여덟 명뿐이지만, 식탁은 푸짐하다. 먹음직스러운 '꽃게' 천지다. 모두 소영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직접 잡아 올린 싱싱한 '선물들'이다.

그 가운데, '오늘'을 기념하는 케이크가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한 어머니가 "서울은 스승의 날 다 쉰대, 촌지 때문에"라고 말을 던지자, 김수 선생님(남·38·분교장)이 "나는 은서 엄마한테 꼬박꼬박 촌지 준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고스톱" 때문이란다. 왁자하게 터지는 웃음.

그 사이에 하나, 둘 케이크에 촛불이 켜지고,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스승의 노래'를 합창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상당히 보기 드물어진 모습이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란 김수 선생님 말 그대로다. 교직 생활 올해 16년째, "이렇게 작은 학교는 처음 와봤다"는 그의 소감은 이랬다.


"언제부턴가 스승의 날이 애매하게 됐잖아요. 감사 표시도 형식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고, 또 그래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편하지 않은 그런 날…, 그런데 얼마나 좋아요. 정말 편안하고, 정도 많이 느껴지고…, 스승의 날에 학부모 집에 가서 밥 먹는다? 있을 수 없는 얘기잖아요. 평소에도 정말 대접 잘 해주시는데, 부모님들께 정말 고맙죠."

왼쪽부터 김수 선생님, 1학년 임다예, 3학년 최소영, 4학년 김은서 어린이, 여환선 선생님 ⓒ 이정환


"선생님! 나 지금 방귀 뀌거든요" 거침없이 '뿡뿡'

여환선 선생님(여·47)도 마찬가지다. 올해로 교직생활 28년째를 맞는 여 선생님 역시 "이렇게 작은 학교는 처음"이라고 했다. 풍도분교 부임 3개월, 그는 "오늘의 초대를 몰랐었다, 그 자리에 가는 것이 과연 옳은 건지, 그른 건지, 사실 많이 망설였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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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맏언니, 김은서 어린이 ⓒ 이정환

"도시 지역에 있을 때는 선생님들끼리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빈번해요. 1년 동안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을 때도 있죠. 그런데 여기 와보니까, 뭐랄까…,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그래서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해요. 부모님 집에서 차 한 잔 마시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오늘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들의 정성을 왜곡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요. 굉장히 고맙습니다."

선생님들은 제자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끼는 듯했다. 김 선생님은 "시내 아이들 같으면 쑥스러워서 하지 않을 얘기, 예를 들면 우리 아빠하고 엄마 어제 뭐하고 싸웠다는 얘기까지 한다"면서 "스스럼없이 선생님을 대해주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게 보인다"고 말했다.

여 선생님 '경험담' 역시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숨김이 없어요. 한번은 수업시간에 이래요. 선생님, 나 지금 방귀 뀌니까 코 막으라고. 그리고 거침없이 뿡뿡(웃음). 가식이나 꾸밈이 없어요. 선생님 눈치를 보지 않으니까, 싫으면 싫다고 분명히 표현도 하죠. 뭐, 잘 보여야 되니까 뭘 하면 안 되겠다, 이런 게 없어요."

"이렇게 고학년에 무사히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시인들은 '있는 그대로'에 인색하다. 또 한편 '고프다'. 은서와 소영이, 그리고 다예가 '스승의 날' 무슨 편지를 썼는지 궁금했다. 선생님께 편지를 보여달라고 졸랐고, 아이들에게는 "너희들이 너무 잘 써서"란 핑계를 댔다. 제일 언니 은서, 소영이, 그리고 다예의 편지를 "틀린 자가 있어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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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홀로 입학생' 임다예 어린이 ⓒ 이정환

"안녕하세요. 김수 선생님 저 은서입니다. ㅎㅎ 스승의 날 축하드립니다. ㅎ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네요. 틀린 자가 있어도 끝까지 읽어보세요.

선생님, 샘께서 3학년 때 길러주신 보람이 있네요. 이렇게 고학년에 무사이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다예를 가르치고 계셔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앞으로도 더욱 더 노력하여 선생님께 배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더욱 더 사랑해주시고 열심히 노력해서 꼭 은혜 갑겠습니다. 아이 러브 유(I love you)."

"김수 선생님께. 선생님 스승에 은혜를 축하드림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영어를 갈쳐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I love You."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다예입니다. 저에게 공부를 잘 갈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스승에 날을 축하드림니다. 선생님 제 비밀을 갈이켜 드릴께요. 편지 쓸라고 그런 거예요. 사랑해요. 아푸루 공부 열심히 하게습니다. 선생님 저 봄 방학 때 보고 싶었어요."

스승의 날, 오랜만에 만난 '수제 카네이션'

물론 아이들이 '러브'하는 선생님은 김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여 선생님도 편지를 받았다. 그는 "도시 아이들과 편지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도시 아이들은) 사서 편지를 쓰는 경우가 많지 않겠냐"면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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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최소영 어린이 ⓒ 이정환

"며칠전부터 자기들끼리 막 소곤소곤거리는 거예요. 막 안 보여주려고 하고… 이렇게 직접 재료를 사서, 접착제를 손에 묻히면서, 봉투까지 직접 만든 편지는 참 오랜만에 받아봤어요. 얼마 전 안산으로 전근 가신 선생님에게도 이렇게 편지를 보냈어요."

아침에 아이들이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선생님들께 선물한 카네이션 역시 그랬다. 오랜만에 보는 '수제 카네이션'. 은서와 소영이는 "스승의 은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썼고, 막내 다예는 "선생님 고맙습니다"에 "아이 러브 유(I Love You)"도 살짝 끼워 넣었다. 보통 시간이 걸렸을 일이 아니다.

저 아이들이 누구보다도 '스승의 날'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직접 만든 편지와 카네이션, 그리고 "얼굴 타지 말라"고 건넨 '선크림'까지. 몇 글자로는 담을 수 없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아이들. 그들을 제자로 둔 선생님들이 부러웠다. 스승의 날은 '바로 이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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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분교 어린이들의 스승의 날 편지 ⓒ 이정환

- 다예네 집에서는?
"다예네 집은 좁아서 안 자요(웃음)."

- 그럼 서로 좋은 점도 하나씩 얘기해볼까. 은서는 소영이의 좋은 점, 소영이는 다예, 그리고, 다예는 은서 언니.
은서 : "소영이는 되게 인간적이예요."
소영 : "그럼 내가 괴물이었나?(웃음)"
은서 :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임, '왜 그러냐'는 질문에) "웃겨서 눈물이 나요."
일동 : ….

- 소영아, 다예 좋은 점은 뭐야?
소영 : "어리면서 좀, 우리말을 안 듣지만…착하긴 착해요(웃음)."
다예 : "은서 언니는 언니로써 일을 잘 해요. 오늘 내 동생이 자전거 타다 넘어졌는데, 언니가 달래줬어요. 그리고 저를요. 안 무겁다면서 업어줘요. 맨 날 맨 날, 업어줘요. 정말 재미있어요. 그럼 소영 언니가 똥침을 놓을 때도 있어요."

- 서로 싸울 때는 없니?
소영 : "있어요. 그럼 우리 쟤랑 놀지마 그래요. 그러다 하루 지나면 다시 놀아요."


덧붙이는 글 | 풍도분교 어린이들의 소원을 소개하는 '소원 우체통' 기사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풍도분교 어린이들의 소원을 소개하는 '소원 우체통' 기사가 이어집니다.
#나홀로 #입학생 #풍도 #분교 #임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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