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마을 가는 길이 이 길이 아닌가벼"

[도보여행] 강촌에서 강천봉 지나 검봉산 거쳐서 구곡폭포까지 걷기

등록 2008.05.19 20:57수정 2008.07.2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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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좋은 흙길입니다. ⓒ 유혜준

걷기좋은 흙길입니다. ⓒ 유혜준

 

18일, 강촌에 갔습니다. 경춘선 열차를 타고 그곳에 가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언제 갔던가, 세월을 되짚어 보니 한두 해 전이 아니라 20여 년도 더 전이었습니다. 이럴 때 꼭 나오는 말이 있지요. 세월 참 빠르다!

 

오전 8시 20분경, 전철을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렸을 때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결국 비가 내리는구나. 하늘이 하는 일을 한낱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는 없겠지요. 조금만 내리다가 그치길 바랄 수밖에요.

 

하지만 비는 하루 종일 내렸지요.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져 온 산을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 사람들까지도 적셨답니다. 덕분에 흠뻑 젖다 못해 등산화 안까지 물이 차 질척거렸지요. 나중에 등산양말을 벗어보니 발이 물에 퉁퉁 불어 있었습니다.

 

강선사를 지나 강천봉, 검봉산을 거쳐 구곡폭포까지 12km정도를 걸었습니다. 이번 도보여행도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 정말 든든했습니다.

 

청량리 역에서 8시 56분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 안은 등산복을 입고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좌석은 이미 오래전에 매진이 되었고, 매표소에서는 입석표만 팔고 있었습니다. 강촌역까지는 1시간 40분 남짓 걸립니다.

 

비가 쏟아지던 날 강촌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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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 소가 허름한 외양간에 있습니다. ⓒ 유혜준

누렁 소가 허름한 외양간에 있습니다. ⓒ 유혜준

 

비옷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강촌역에서 1회용 비옷을 샀습니다. 1회용 비옷은 말 그대로 1회용일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사용하긴 하지만 성능은 기대이하입니다.

 

강촌역에서 나와 2~3분쯤 걷다가 길 가의 골목길 계단으로 접어듭니다. 민박집과 음식점이 있는 골목입니다. 처음 오는 사람은 길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계단 끝에는 집들이 있습니다. 어느 집 옆을 지나는데 비닐이 쳐진 외양간에 누렁 소 두 마리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소들, 사람들이 무리지어 지나가자 무슨 일인가 싶어 순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봅니다. 누렁 소를 보니 '광우병' 생각이 저절로 납니다. 한우는 과연 광우병에서 자유로울까, 궁금해집니다.

 

강선사 가는 길이 나옵니다. 길옆에 장승 둘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하나는 입을 곱게 벌리고 웃고, 다른 하나는 뻐드렁니를 드러내고 있는데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장승마다 생김새나 표정이 다른 것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지역마다 특색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지요.

 

강선사 아래를 지납니다. 절은 저 위에 있고, 아래서 절을 우러르다가 사진만 찍고 그냥 지나갑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운무에 갇혀 있습니다.

 

강천봉에 오르려면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가야 한답니다. 오르기 전에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겠지요. 가볍게 몸 풀기를 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도보여행이 시작됩니다. 검봉산등산로 표지판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경사가 낮은 오르막길을 오르자 이번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옵니다. 이런 길을 걸으려면 힘이 많이 들지요. 숨소리가 저절로 거칠어지고, 얼굴이 창백해집니다. 조금씩 솟아나던 땀이 어느 사이엔가 이마를 적시고 뺨으로 흘러내립니다.

 

내리던 비가 살짝 멈춘 것 같습니다. 비옷을 벗고 걷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큼한 기운과 더불어 향긋한 풀냄새가 코로 스며듭니다. 심호흡을 크게 합니다. 산의 맑은 공기가 폐 속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마른 날이면 흙먼지가 풀썩이는데 이 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늦가을에 수북이 쌓였던 갈잎들이 물을 잔뜩 먹어 밟을 때마다 물기를 내뿜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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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어서 지나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습니다. ⓒ 유혜준

나무들이 어서 지나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습니다. ⓒ 유혜준

 

길옆에 돌 한 무더기 쌓여 있습니다. 어딜 가나 이런 돌무더기는 꼭 있습니다. 그런데도 늘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돌을 저기에 얹었을까, 늘 궁금합니다.

 

옆으로 가지를 잔뜩 뻗은 소나무가 보입니다. 그 옆에는 위로 뻗어 올라간 소나무가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소나무들은 모습이 다 제각각입니다. 멋지게 서 있는 소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런 걸 기품이 있다고 해야 하나.

 

낮 12시 25분, 강선봉에 도착합니다. 오르막길이 얼추 끝난 것이지요. 숨을 돌리고 잘 도착했다는 의미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산이 내가 다녀간 것을 기억해주지 않으니 나라도 기억하려면 사진이라도 한 장 박아놔야겠지요.

 

위험하다고 굵은 철줄로 막아놓은 검봉산 전망대 옆을 지나 숲으로 들어갑니다. 굵은 나무들 사이로 길이 나 있습니다. 나무들이 어서 지나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습니다. 길 위로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습니다. 이어서 걷기 좋은 흙길이 나타납니다. 자박자박 걸음을 옮깁니다.

 

향긋한 숲 냄새를 맡아 보셨나요? 멀리서 뻐꾸기가 웁니다.

 

2시간쯤 걸었더니 허기가 집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면서요? 도시락을 펴놓고 밥을 먹는데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집니다. 밥이며, 반찬에 비가 조금씩 들이칩니다. 처음에는 신경이 쓰이더니 나중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꾸역꾸역 밥을 먹게 되더군요. 그래도 이 때는 비가 덜 내려 다행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늦게 점심을 먹었더라면 빗물에 밥을 말아 먹을 뻔 했습니다.

 

짐을 꾸려 비 내리는 산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습니다. 빗줄기가 나뭇잎을 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벗었던 우의를 다시 입을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합니다. 비닐로 만든 비옷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도 하거니와 어느 정도 내리다 그치겠지,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굵어진 빗줄기는 구곡폭포에 다다를 때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습니다. 덕분에 온 몸이 비에 푹 젖어 버렸지요.

 

빗물에 밥 말아 먹으면 무슨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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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 유혜준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 유혜준

 

빗줄기가 세차지자 비옷을 입었는데도 우산을 쓰고 산길을 걷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바지가 젖는 것을, 등산화가 젖는 것을 어쩌지는 못했지요.

 

드디어 검봉산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530m. 별로 높지 않네요.

 

이제 문배마을 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30분쯤 걷자 표지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일행이 문배마을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길을 잡아 걷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그 길이 아니라는 데야 어쩝니까. 따라 갈 수밖에.

 

내리막길은 비 때문에 물이 흘러 철벅거립니다. 빗물에 미끄러질까봐 조심해서 내려갑니다. 한 20분쯤 내려갔을까? 갑자기 앞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문배마을 가는 길이 이 길이 아닌가벼."

"이 길이 아니래. 뒤로 돌아서 오던 길로 다시 가세요."

 

이게 뭔 일이랍니까. 내려오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네요. 내리막길은 이제 오르막길이 되어 눈앞을 가로막습니다. 저 길을 올라가라고라? 헉헉헉헉…. 숲길은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찹니다. 그렇게 헉헉거리면서 걸어 다시 이정표가 있는 자리에 섭니다. 문배마을 쪽으로 길을 잡아 걷기 시작합니다.

 

문배마을과 구곡폭포로 가는 갈림길에 섭니다. 빗줄기가 아주 세찹니다.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으려니 푹 젖은 옷에 한기가 스며듭니다. 처음부터 비옷을 입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텐데, 후회가 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여벌옷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 오는 날 길을 나설 때는 여벌옷이 필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배마을을 보러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안 가기로 합니다. 내리는 비를 빨리 피하고 싶은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갈림길 입구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잠시 비를 긋기로 합니다.

 

문배마을에 내려갔던 분들 역시 찬찬한 마음으로 마을을 둘러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비 탓이겠지요.

 

"문배마을 가는 길이 이 길이 아닌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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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폭포 ⓒ 유혜준

구곡폭포 ⓒ 유혜준

 

구곡폭포 쪽으로 내려갑니다. 길에는 물이 흐릅니다. 땅 속으로 스며들기에는 비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겠지요. 흙은 이미 푹 젖었고, 돌들 역시 물에 젖어 반짝입니다. 드러난 나무뿌리도 물에 젖어 있습니다.

 

웃옷은 물론 바지도 젖었습니다. 등산화 안에도 물이 고였고, 바지 끝에는 물기가 잔뜩 매달려 무겁기까지 합니다. 거기다가 젖은 흙까지 묻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 가끔 숲을 돌아봅니다. 습기를 잔뜩 머금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숲은 묘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젖은 산이 나를 홀리고 있습니다. 걸음을 옮기다가 나무 사이를 보고 또 봅니다.

 

드디어 구곡폭포 입구에 닿았습니다. 높이는 50m, 아홉 구비를 돌아 떨어진다 해서 구곡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지요. 보러 가야겠지요? 구곡폭포까지 가는 길은 긴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비에 젖은 계단을 올라갑니다. 드디어 폭포가 보입니다.

 

떨어지는 물의 양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폭포 가까이 사람들이 올라가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폭포를 보는 기분, 아주 별납니다.

 

여기서 이날의 도보여행은 마무리됩니다. 비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강촌역에서 기차를 탈 때까지 쉬지 않고 내렸지요.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기차에 탔는지 궁금하실 것 같네요. 일행 중에 여벌옷을 착실하게 챙겨온 분이 있었답니다. 티셔츠에 점퍼까지 빌려 입고 뽀송뽀송하게 집으로 돌아갔다는 후일담을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 [걸은 길] 강촌역 - 강천봉 - 검봉산 - 문배마을 - 구곡폭포 - 강촌역
[걸은 거리] 12km

2008.05.19 20:5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걸은 길] 강촌역 - 강천봉 - 검봉산 - 문배마을 - 구곡폭포 - 강촌역
[걸은 거리] 12km
#도보여행 #강촌 #문배마을 #구곡폭포 #검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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