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문화제 나가면 '공부 못하는' 반항아?
놀려고 나간 게 아니라 살려고 나갔습니다

[중고생 릴레이 기고 ④] 국립국악고 1학년 이연우가 국회의원에게 쓴 편지

등록 2008.05.22 08:39수정 2008.05.2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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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10대, 특히 여중고생들이 촛불문화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10대들의 유쾌한 반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발적인 10대들의 집회 참여에도 교육청에서는 그들을 '단속 대상'으로만 묶어두려 합니다. 10대들이 우리 사회 가장 뜨거운 이슈의 주도권을 쥔 것만큼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고생들의 글을 받아 연속으로 보도합니다. 이번엔 국립국악고 1학년 이연우 학생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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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무대에 선 이연우 학생. ⓒ 남소연

스팸메일로 처리하시기 전에 한번만 끝까지 성의 있게 읽어주세요.

저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 다니는 17살 학생입니다. 유권자 아니라고 무시하시 마세요. 국민의 소리를 들으려는 현명한 의원이라면 읽어줄 거라 믿습니다.

지금 악기연습을 한창 해야 할 시기인데 너무 답답하고 무서워서 어떡하든 방법을 찾고 싶어서 보냅니다. 다름이 아니라 광우병에 관한 것인데요, 이런 글 너무 많이 보셔서 식상하다고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꼭 끝까지 읽어주세요. 정말 도움이 필요해요.

이 글을 읽으면서 국민들의 요구사항은 둘 째 치고 지금 국민들이 얼마나 불안해하는지만이라도 좀 알아주세요. 물론 이 메일을 국회의원께서 직접 읽게 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주셔서 어느 정도 의미 전달은 해주세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성의 있게 읽어주세요.

고1인 제가 정치인들에 편지 보냅니다

제가 아직 배운 것이 많지 않아 정치에 관심도 없고 법도 잘 모릅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갑자기 체결된 쇠고기 협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광우병에 대해 몰랐으니까요.

꽤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 광우병에 대해 여기저기 찾아봤습니다. 물론 그 중 어떤 것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정말 상상도 못해본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검역이 제대로 되는지도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미국 농장의 동영상은 정말…. 무섭고도 가슴 아팠습니다.


정부에서는 그것이 '동물학대'에 관한 영상이라며 "일부 언론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을 보고 어떻게 단순히 동물학대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어나지 못하는 소를 학대하는 영상이지 멀쩡한 소를 학대하는 영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애초에 그 많은 소들은 왜 못 걷는 건가요?

처음엔 '에이, 쇠고기 들어간 것 안 먹으면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주변에 쇠고기 성분이 들어간 것이 상상도 못할 만큼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도 전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공기감염과 수도관 감염, 젤라틴에 프리온 함유, 타액으로 인한 감염은 괴담이다" 그리고 "원산지 표기를 정확히 하겠다"라고 했지만, 그럼 조미료, 수많은 과자와 라면의 쇠고기맛 씨즈닝, 어린이 식품에 첨가되는 칼슘, 유제품 등은 설명하실 수 있나요?

정부에서 '괴담'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가지를 빼도 여전히 식품에 의한 감염 경로는 너무 많습니다. 다음번엔 "조미료나 과자 그런 곳에도 원산지 표시를 철저히 하겠다, 그러니 잘 선택해서 먹어라"라고 하실 건가요? 그럼 거의 모든 식당에서 쓰는 조미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 나라의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양심을 너무 믿는 것은 아닌가요?

정부에서 강력한 법을 제정해도 쇠고기와 접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주 적은 양으로도 발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은 정부에서도 부인을 못하죠?

그러면 정부에서 미처 막지 못한 경로로 아주 적은 양의 쇠고기라도 접한 사람은 어떻게 되죠? 그냥 어쩔 수 없는 희생자인가요? 그런데 그때도 치료법이 개발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내가 왜 밥도 못 먹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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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온 중학생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무대에 올라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너무 무섭습니다. 저 아직 못한 것이 너무 많아요. 전공 반에서 1등도 해봐야 하고, 장학금도 받아봐야 하고, 남자친구도 아직 한 번도 안 사귀어봤습니다. 저의 꿈인 서울대에 들어가서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고, 다른 나라 가서 우리 국악도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이랑 악기 매들고 배낭여행도 가보고, 밤새도록 술도 먹어보고, 레슨도 해보고, 국악 말고 다른 것도 해보고, 결혼해서 예쁜 딸 낳고 예쁘게 키우고, 제 소원이었던 큰 강아지도 키워봐야 되는데….

그리고 지금까지 제 레슨비랑 과외비 때문에 늘 힘들게 일하면서도 저만 보면 뿌듯하다는 아빠와 저 레슨 데려다주고 집안일 하나도 못하는 외동딸 키우느라 좋아하시는 취미생활도 못 즐기던 우리 엄마께 아직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습니다.

10년 후에 다 죽어버리면…. 그러면 어떻게 해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너무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데 광우병 걸리면 정말 허무하게 죽잖아요. 아무 것도 못해보고 잠도 못 잤어요. 나쁜 꿈만 계속 꾸게 되어요. 음식만 보면 구역질이 나서 급식도 안 먹었어요.

학교수업을 듣고 있으면 앞으로 수업을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눈물이 납니다. 레슨을 받고 나서 나도 살아서 제자를 가르칠 수 있을까 싶어서 또 울었어요. 공연을 보고 나도 살아서 저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또 울었어요. 밖에 있는 파릇파릇한 나무들을 보면서 내년에도 저 나무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또 눈물을 흘렸어요.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축 처져 있어요. 저처럼 갑자기 우는 애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아침에 눈을 뜨면 눈물부터 나요. 왜 갑자기 이런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하죠? 모든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건 저만의 불안은 아닙니다. 저와 같은 불안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의원님들의 이웃들, 자녀분들, 자녀분들의 친구들, 친척들…. 서울·대전·대구·부산·경기도·강원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의 걱정입니다.

이래도 그냥 쇠고기 수입 반대여론을 단순히 '반미' '반한나라당' 수준으로 보실 건가요. 제가 보기엔 이건 공포입니다. 생명에 대한 절실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라고요. 

정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게 다 괜한 걱정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며칠 전까지는 '설마 사람들이 죽어나가겠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선명해져 가요. 이건 현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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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집회에 나가도 정부에서는 "배후세력이 있다"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말하죠. 그렇지만 사실 우리가 집회에 나가는 것은 루머들을 믿고 겁을 먹어서라기보단 일단 이번 협의안에 무언가 허술한 점이 있고 정치인들이 그 흠들을 시원하게 해결하기 보단 무책임이 엿보이는 말로 대충 넘어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광우병의 무서움을 학생들이 많이 알고 있어 안전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고요. 그런데 왜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런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공부하기 싫어 촛불문화제 핑계삼아 뛰쳐나온 문제아들'로 비하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어른들의 이런 오해에 대해 제가 학생의 입장에서 해명하겠습니다.

① "공부 싫어하는 철없는 애들이 핑계대고 놀러 나간다"에 대한 해명

이 말은 언론뿐만 아니라 일부 어른들에게 종종 듣는 말인데, 이 말만큼 서러운 오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원히 해명해 드리지요. 저는 촛불 문화제에 총 6회 참석했고 청와대와 농림수산식품부에 민원을 신청했습니다.

온갖 쇠고기 수입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학교 학생들, 심지어는 선생님들에게도 촛불문화제와 서명운동을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께 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한가한 백수 같습니까? 공부 안 하고 이 문제 핑계대면서 놀고 있는 철없는 문제아 같습니까? 틀렸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전교에서 1~2등을 하고 있고 중 3때는 선도부장이었습니다. 앞으로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어 주말에는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하면서도 틈틈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래도 정치 참여하는 학생들이 공부가 하기 싫어서 단지 현실에 불만이 많아서 반항하는 학생들로 보이십니까?

전 차라리 어른들 말대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려고 해도 공부가 안 됩니다. 불안해서, 무서워서, 정부와 주위 어른들의 애매한 태도에 화가 나고 답답해서 공부가 안 됩니다. 어른들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졌더라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학생들이 주로 나오는 이유는 이 사회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고 우리가 가진 정당한 권리로 우리들의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 학생들이 하냐"고 물으시면 그것은 어른들에게 책임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른들이 처음부터 나서거나 돕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학생들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보수신문의 보도를 많이 읽어온 어른들과는 달리 세계각지의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을 접하면서 어른들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빨리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② "놀이문화가 부족해서 나왔다"에 대한 해명

우리나라 애들만큼 언제 어디서나 잘 노는 애들도 없습니다. 놀이문화는 주위에 널리고 널렸습니다. 노래방·PC방·영화관·백화점·공원·놀이터·학교 운동장·보드게임방,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나 요구르트 전문점 등 각종 카페·친구집, 학교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놀 거면 뭐 하러 시간 몇 시간씩 들여가면서 청계광장까지 나갑니까? 사실 촛불 문화제 참석하면 맨 바닥에 앉아서 춥고 그다지 재미도 없는 데다가 갔다오면 힘들고 지칩니다.

그런데도 나가는 건 재미로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문제의식을 가지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니까요. 쉽게 말하면 놀려고 나오는 게 아니라 살려고 나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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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덕수궁앞에서 열린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 5.17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에 참석한 여학생들이 종이피켓에 자신의 뜻이 담긴 글을 직접 적고 있다. ⓒ 권우성


③ "연예인 팬들이 연예인의 발언 때문에 나왔다"에 대한 해명

저도 연예인 좋아합니다. 저는 '빅뱅' 팬이고 또 슈퍼주니어 김희철과 강인을 좋아합니다. 저도 원래는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컴퓨터를 켜면 연예인 팬 카페에 들어가 영상이나 음성자료를 찾아보고 사진들을 찾아보는 게 취미입니다.

그러나 광우병 파문이 터진 후, 한 번도 그런 취미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컴퓨터를 켜면 광우병 관련 뉴스를 찾아보며 정부가 언제쯤 여론을 반영해 태도를 바꿔 재협상할까 초조해합니다. 연예인에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연예인들은 분명 제가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지만 일단 제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부 학생들이 연예인 때문에 나왔다고 해도 연예인들이 부추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연예인이라고 해서 비웃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 연예인도 사람이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니까요. 광우병 문제가 사실이 된다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죠.

④ "배후세력이 있다"에 대한 해명

이런 생명과 직결된 심각한 문제에 살기 위해 참여하는 사람들을 배후세력이 있다고 몰아세우는 발상 자체가 역겹습니다. 언론의 상상력은 대단하군요. 이건 해명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굳이 해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들의 배후세력은 없습니다. 아니,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배후세력이지요. 학생들이 자유발언대에 서서 언급하는 수많은 헌법조항들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중학교 3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정치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민의 정치 참여의 중요성', '시민의 정치 참여가 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 '인간의 기본권중 자유권 -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당의 기능 중 - 시민의 정치참여 유도',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청소년의 정치 참여의 중요성', '언론의 역할과 기능 - 여론 형성과 여론의 주장 등을 올바르게 보도', '언론이 갖추어야할 요소 - 공정성과 투명성'과 같은 내용은 대체 왜 배웁니까?

시험 잘 보려고 문제 잘 풀려고 배웁니까?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점들을 앞으로 우리가 참여해서 바꿔 나가라고 배우는 것 아닙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곧 어둡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곧 혼돈스럽다(우리 반 급훈입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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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네티즌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배운 것을 깊게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세상의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우리의 배후세력은 우리 자신이고 그 원동력은 교과서에서 나옵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배운 것을 현재의 사회에 적용시켜 깊게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 이것이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본래 의도 아닙니까?

그런데 일부 언론과 경찰과 교육자들의 태도가 어떠합니까? 이런 학생들의 참여를 탄압하고 배후세력이 있다고 몰아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청소년들에게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 가르치고 배운대로 실천했더니 이리도 탄압을 하시니 이게 무슨 모순입니까? 지금은 60~80년대의 독재정권 시대가 아니잖습니까?

왜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만들어놓은 민주화를 다시 후퇴시키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정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다 감정적이거나 미디어에 줏대 없이 휩쓸리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집회하러 나온 대부분이 학생들이냐고 물으시면 그건 우리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기 때문이죠.

사실 어른들이 학생들처럼 흥분하지는 않는 것은 이미 인생을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생각해보세요. 목표도 많고 꿈도 많은데 아직은 아무것도 펼치지 못한 학생들이 삶에 집착이 크겠어요, 아니면 이미 학창시절의 꿈은 다 이루고 정년퇴직만을 남기고 있는 어른들이 삶에 집착이 크겠어요?

광우병의 잠복기간이 5년에서 40년이기 때문에 지금 위험인자가 체내에 들어오면 학생들이 한창 꿈을 이루어야할 나이인 20~30대에 발병이 되는 것도 이유이고요. 그렇게 치면 아기엄마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학생들과는 다르게 어른인 정치인들께서는 미래보다 현재를 더 중요시하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들보다 미래에 발생할 질병에 대해 덜 민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의원님께서도 자식이 있으시잖아요. 의원님의 자녀들이 이런 허술한 나라에서 꿈을 마음놓고 펼칠 수 있다 생각하시나요? 자녀분들이 두려움에 저처럼 울고 있지는 않을까요?

제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건 막말도 아니고 괜한 반감도 아닙니다.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이에요. 만약 허술함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그 흠으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가 들어오면 저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의 공포가 현실이 되겠죠?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잃은 채 죽어가겠죠?

제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잘 몰라서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하지 마세요. 물론 정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니 믿으라고 답변하죠.

청와대에 올려놓은 쇠고기 Q&A를 읽어 보았어요. 대체로 안전하단 주장이에요. 많은 나라들이 수입개방을 한다고 되어있고 20개월 미만을 들이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고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답변으로 국민 불안을 해소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어요.

일단 다른 나라들이 대부분 수입개방을 한다는 점은 우리나라가 전혀 신경 쓸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더 철저한 조건에 신경 써야지 우리보다 더 느슨한 조건이 있다고 같이 느슨해지는 것은 위험하죠. 그리고 수도관 감염에 대한 답변에 "지금 들여올 고기가 안전하기 때문에 수도관을 통해서도 감염될 일이 없다"라고 했는데, 그 말은 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면 수도관이 감염될 수도 있다는 말 아닙니까? 이런 무책임한 답변이 어디 있습니까?

또, 정부에선 소 유래 물질이 함유된 화장품에 의한 감염은 불가능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정부가 그렇게도 믿는 미국 FDA의 최근 자료에서 그러한 화장품도 감염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이렇듯 정부가 민심을 안심시키려는 해명은 알면 알수록 거짓도 많고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말 뿐입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더 불안해질 뿐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정해진 기준을 너무 신뢰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나라를 무조건 의심하고 보는 것은 좋지 않지만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미국이 내세운 그 기준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사를 했어야 해요.

그리고 미국 자체에서 "검역을 철저히 한다" "사료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우리 국민이 완벽하게 신뢰를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철저하게 그런 조사를 하지 않은 그 협상 결과를 백날 안전하다고 주장해도 아마 국민들의 불안 해소에는 효과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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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15일 저녁 서울시청 앞에서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태도예요. 위험이 아예 없다고도 주장 못하시잖아요. 그럼 약간이라도 허술함이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처음부터 허술함을 만들지 않았어야죠. 이 허술함을 채우는 것이 이 나라의 정치인으로서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이 나라의 자녀들을 위해 할 일이에요.

저는 정부에서 점차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믿었어요. 처음에 협상을 잘못했으니 법을 새로 만들거나 해서 점차 위험을 줄여나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정부의 뻔뻔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들이 밝혀지더군요. 그리고 정부는 또 해명하고요.

우리가 원하는 건 말뿐인 반성과 해명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겁니다. 그 약속 하나 못 지켜서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은 건가요? 지금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고 싸우는 코미디를 하고 계시더군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청소년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치의 적절한 예가 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지금 우리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가 정부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아니라,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잘못된 정책이 바로잡힐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유익한 기억으로 남게 해주세요.

안전성 100%는 만들 수 있어요. 위험요인을 완전히 차단하면 돼요. 작은 허술함 때문에 법을 더 만드는 것 보단 아예 위험요인을 차단하는 것이 확실하고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해요. 협상 내용에 허점을 만들어 놓고 그것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제방 쌓을 때 생긴 구멍 하나 막으려고 끊임없이 모래를 퍼 나르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제방을 잘 쌓는 것이 최선 아닌가요? 그리고 이 방법은 실현이 가능하기도 하고요. 재협상에 대해서 한번만 생각해 주세요.

정부에서는 재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죠. 그렇지만 불가능한 게 어디 있어요? 그것이 국민들의 요구이면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잖아요. 미국 측에서 상당히 불쾌해 할 것이고 우리나라에 불이익이 올지 모른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아요.

그래도 이것이 국민 모두의 생각이라면 힘닿는 데까지 해봐야 정상적인 정부가 아닐까요? 조금만 더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가요? 재협상하자고 제안하면 전쟁나나요? 해 볼 생각도 국민의 의견을 들을 노력도 하지 않으니까 국민들은 화가 나는 겁니다.

재협상 하자고 하면 전쟁 나나요?

우리의 말을 들어주세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해명과 미국 측의 입장이 아니라 재협상입니다. 재협상을 한다고 해야 국민들이 조금이나마 안심할 겁니다. 진정으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국민 건강을 지키고 싶다면 해명은 그만하고 재협상에 대해 생각만이라도 좀 해주세요. 의원님들은 할 수 있잖아요.

광우병 쇠고기 막아주세요. 도와주세요. 의원님의 노력 하나가 앞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게 될 거에요. 17년을 살면서 이렇게 절실하게 무엇을 원한 적이 없었어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국민 모두의 소원 한번만 들어주세요. 제발, 우리 좀 살려주세요.

끝까지 읽으셨나요? 끝까지 읽었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국민의 소리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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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촛불문화제 #이연우 #여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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