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보장됐다는 확신 갖고 즐겁게 갑니다"

고 김재규 장군 28주기 추모식에서...참석자들, 사형집행 하루 전에 쓴 '유언' 합창

등록 2008.05.24 10:06수정 2008.05.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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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9년 전,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았다는 고 김재규 장군의 28주기 추모행사가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삼성공원묘지 김장군의 묘소에서 5월 23일 정오에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함세웅 신부와 효림 스님, 김범태 명예회복집행위원장, 황두완, 조웅 선생 등과 유가족, 천주교신자와 일반인 30여 명이 참석했다. 그가 천주교에서 영세(요셉)를 받았기에 제기동 성당에서 오전에 추모 미사를 올리고 이어서 묘지에서 추모식을 했다.

매년 버스를 이용하여 지방에서도 추모 인사들이 제상까지 준비하여 김장군의 뜻을 기리어 왔으나 금년의 추모행사는 강신옥 변호사 등 많은 추모인들이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여 조촐하고 쓸쓸했다.

그러나 함 신부의 강론과 효림 스님의 추모시 낭독에 이어 참가한 추모인들이 28년 전, 그러니까 1980년 5월 23일 (금요일) 오전 9시 고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하루 전에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김재규 장군이 쓴 ‘유언’으로 남긴 아래 글을 참가자 모두가 합창하면서 읽어갔다.

“오늘이 5월 23일 아침이군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세상에서 내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 최후의 날이 아닌가? 나는 감촉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소회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나는 금번 1심 2심 3심-보통군법회의, 고등군법회의, 대법원 재판까지 3심을 거칠 예정이었는데 나는 또 한 차례의 재판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제 4심인데 4심은 하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변호사도 필요 없고 판사도 필요 없고 오직 하늘의 정확한, 그야말로 사람이 하는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는 재판은 절대 오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재판이 나에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중락…


오늘이 금요일입니다만, 내 영감으로 마음에 잡히는 것은 내일 토요일 오전밖에 없으니까 내일 오전 중에 나의 형을 집행하는 마지막 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적중 될는지 안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 영감으로 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누구의 염려 없이 아주 유쾌하게 또 명예스럽고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그 자부와 내가 이렇게 감으로써 자유민주주의는 확실히 보장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즐겁게 갑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발전과 10.26 민주회복 혁명, 이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저는 믿고 또 빌면서 갑니다. 국민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김재규 장군 묘소 앞에서 ⓒ 윤영전

고인은 당당히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아 이 나라가 민주주의로 신장될 것으로 확신을 하고 당당하게 사형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더구나 가톨릭 신자로 세례를 받으면서 고인이 감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묵상하며 의연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내년이면 또 한세대가 지난다. 보통의 역사적 진실은 한세대가 되면 평가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과연 내년까지 그 평가가 온당히 내려질 수 있을까? 의문뿐이다. 어쩌면 살아있는 자들의 역사평가에 스스로 유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공원묘지 높은 곳에 위치한 묘소를 찾을 때면 상당히 헉헉거린다. 그렇게 심한 여름더위도 아닌데 땀을 흠뻑 흘린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인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는데 작은 고행에 불평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어느 해보다 추모인도 적고 초라한 듯 했으나 상기에 적은 유언을 읽어가면서 지난 추모 모임보다 의미가 깊은 추모행사였다, 내년에는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는 그 날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부디 영면하기를 기도한다.  
첨부파일
김재규 장군 기일 010.jpg
#민주열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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