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미술에 질문하는 도정의 작가

강남 신사동 '예화랑'에서 6월 18일까지 이강소전

등록 2008.06.10 11:33수정 2008.06.1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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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남 신사동 예화랑 이강소전 대형포스터와 거리홍보물(오른쪽). 건물의 일부(왼쪽) 가운데 작품 '꿈-08014'

강남 신사동 예화랑 이강소전 대형포스터와 거리홍보물(오른쪽). 건물의 일부(왼쪽) 가운데 작품 '꿈-08014' ⓒ 김형순

강남 신사동 예화랑 이강소전 대형포스터와 거리홍보물(오른쪽). 건물의 일부(왼쪽) 가운데 작품 '꿈-08014' ⓒ 김형순

 

이강소(1943~)의 '꿈'(A dream_ photographs, ceramics & paintings)전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오는 18일까지 열린다.

 

그는 행위예술, 환경미술, 설치, 영상, 회화, 판화, 조각 등 여러 장르의 미술을 두루 실험해왔다. 이번에도 뭔가 새로운 것을 찾다 미묘한 감동을 불러오는 사진을 비롯하여 세라믹과 회화도 선보인다.

 

그는 표현을 최대로 절제하는 작가로 그가 보여주는 전반적 분위기는 고요하고 신비하며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근작에서는 더욱 한국적 감성으로 회귀하는 본능을 보인다. 그리고 인위적인 것은 가능한 배제하고 애써 꾸미지 않는 동양적 미학에 충실하고 있다.

 

그의 회화언어는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이미지의 흐름을 추적한다. 현실적 삶에 대해 초탈한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차마 말하기 힘든 개인적 고통에 대한 승화인지 모른다. 하여간 그는 40여 년 끊임없이 미술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로 오리그림 등 그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특출한 세계를 구축해왔다.

 

마음을 비우고 붓을 물처럼 흘리다

 

a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08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227cm 2008. 작가 특유의 조형적 언어인 선(線)이 기묘하다.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08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227cm 2008. 작가 특유의 조형적 언어인 선(線)이 기묘하다. ⓒ 김형순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08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227cm 2008. 작가 특유의 조형적 언어인 선(線)이 기묘하다. ⓒ 김형순

 

먼저 회화작품인 '섬으로부터' 연작을 보자. 작품 아래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오리'가 보인다. 벼락 치듯 단숨에 그어 내린 힘찬 획이 파격적이다. 긴장감이 흐르나 물길처럼 자연스럽다. "붓을 마음에 맡겨 물 흐르듯 치면 절로 묘를 얻는다"는 선화(禪畵)를 많이 닮았다.

 

사물의 핵심을 뽑아서 농축 시킨 서양 추상과는 달리 이 작품은 직관적으로 단숨에 휘갈긴 문자 추상 같다. 따지거나 비교하지 않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그릴 때 나올 만한 그림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조형언어를 하나의 리드미컬한 선에 담았다.

 

여백이 많은 것은 역시 이우환이 말하는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창출'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필체도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휘휘 날아다니듯 거침이 없다.

 

무아지경에서 맛보는 기운생동

 

a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08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227cm 2008. 아래는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20223' 2000년 작품(아래)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08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227cm 2008. 아래는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20223' 2000년 작품(아래) ⓒ 이강소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08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227cm 2008. 아래는 '섬으로부터(From an island)-20223' 2000년 작품(아래) ⓒ 이강소

 

이 작품은 글씨와 그림의 경계가 모호한 서예풍이다. 먹빛의 농담(濃淡) 또한 경쾌하다. 그는 어려서 한학자이고 서예에 조예가 깊었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영향인지 '단숨에 그은 획'에서 뿜어내는 힘, 그 기운생동이 참으로 멋지고 힘차다. 관객들은 쉽게 그런 무아지경에 빠질 것이다.

 

바탕에 쓰인 이런 회백색은 서양인이 내기는 힘든 색이다. 순백의 하얀 백자항아리나 뽀얀 사골 국물의 빛깔이나 새소리, 바람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전통산수화에서 보는 그런 색조다. 

 

'섬으로부터'라는 제목이 왜 붙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이상향을 노래한 것 같다.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소리도 연상되고 아니면 구름, 바람, 하늘, 바다가 뒤섞인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의도하는 것을 넘어서 오랜 숙고와 시도 끝에 얻어낸 작품 같다.

 

여인의 살보다 부드러운 흙에 심취 

 

a  '미완/생성(Becoming)-06-c-063' 세라믹 44×45×61cm 2008

'미완/생성(Becoming)-06-c-063' 세라믹 44×45×61cm 2008 ⓒ 김형순

'미완/생성(Becoming)-06-c-063' 세라믹 44×45×61cm 2008 ⓒ 김형순

이번엔 세라믹 작업을 보자. 그에게 미술의 경계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미완'이란 제목은 끊임없이 미술에 질문하는 그의 경향과 맞아떨어진다. 하긴 인생도, 예술작품도 실은 정지된 완성(be)이 아니라 완성으로 항해 가는 도정(become)아닌가.

 

1260~1300℃의 고열에서 여인의 살결보다 더 곱고 부드러운 흙으로 빚은 그의 손길도 예사롭지 않다. 시공간을 넘어 작가는 흙과 혼연일체가 되어 거기서 맑은 정수를 걸러내듯 그렇게 작품을 빚어낸다.

 

하긴 이런 흙이 생기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렸겠는가. 그런 자연의 풍화 속에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누구나 조금은 숙연해진다. 그의 회화도 그렇지만 이 작업도 가능한 손을 대지 않고 중력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한다. 그러니 일부러 꾸미려고 했다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위에서 보듯 그의 사진과 회화와 도자기가 예상 밖으로 잘 어울리는 것은 갤러리 측의 배려도 크다. 작가의 의도를 최대로 살리면서 세심하고 품격 있게 배치하였다.

 

세라믹과 사진 속 지푸라기의 조응

 

a  '미완(Becoming)-06-c-007' 세라믹 44×45×61cm 2008. '꿈(A Dream)-08009' C-프린트 225×150cm(뒷면)

'미완(Becoming)-06-c-007' 세라믹 44×45×61cm 2008. '꿈(A Dream)-08009' C-프린트 225×150cm(뒷면) ⓒ 김형순

'미완(Becoming)-06-c-007' 세라믹 44×45×61cm 2008. '꿈(A Dream)-08009' C-프린트 225×150cm(뒷면) ⓒ 김형순

 

여기 세라믹은 굴뚝의 연통이나 지붕에 얹어놓은 기와처럼 보인다. 뒷면 사진과도 대화하는 것 같다. 사진 속에 보이는 폐가(廢家)의 문 한쪽에 늘어진 무성한 지푸라기가 참으로 따사롭다. 흙과 함께 생명의 마지막 수호자처럼 보인다.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독일작가 알젤름 키퍼의 지푸라기그림이 갑자기 생각난다.

 

하여간 이강소는 청자와 백자로 세계적 명성은 누렸던 나라의 후손답게 세라믹에서도 남달리 빼어난 솜씨를 보인다. 새로울 때만 자유롭다는 그의 지론 때문인지 그는 늘 이렇게 새로운 미술장르에 도전한다. 

 

인적 끊어진 곳에 흐르는 아련한 꿈길

  

a  '꿈(A Dream)-08001' C-프린트 225×150cm 2008

'꿈(A Dream)-08001' C-프린트 225×150cm 2008 ⓒ 이강소

'꿈(A Dream)-08001' C-프린트 225×150cm 2008 ⓒ 이강소

이제부터는 '꿈(A Dream)'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연작물을 보자. 이강소는 여기서 보듯이 우리가 보통 때 눈길을 주지 않는 인적이 끊어진 조용한 곳을 주로 찍었다. 사람이 없어 적막해 보이나 먼지 덮인 항아리며 바구니며 부서진 문짝에서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가는 이렇게 낡고 오래된 그러나 정감이 넘치는 것에 몰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니면 거기서 어떤 삶의 위로나 영감을 받은 것인가. 하여간 그의 그림에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평온함이 넘친다. 그런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 이면에는 작가의 고뇌도 많아 보인다.

 

우리가 흔히 무심코 스치는 평범한 사물이나 대상이 작가의 카메라 렌즈에 포착되면서 무한한 사유의 공간을 열어주고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니 놀랍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작가란 어떤 물질에 기(氣)와 호흡을 넣어주는 존재라 생각이 든다.

 

삶의 훈풍이 조용히 스며드는 대청마루

  

a  '꿈(A Dream)-08006' C-프린트 225×150cm 2008

'꿈(A Dream)-08006' C-프린트 225×150cm 2008 ⓒ 이강소

'꿈(A Dream)-08006' C-프린트 225×150cm 2008 ⓒ 이강소

 

이 사진도 역시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뭔가를 꿈꾸게 한다. 생존경쟁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지만 이런 사진을 보면 삶의 걱정도 덜어지고 몸의 고단함이나 마음의 무거움도 줄어든다. 그래서 평소에 맛보지 못한 어떤 넉넉함을 준다.

 

또한 탁 트인 대청마루가 시원해 보인다. 모호하지만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풍성한 기운과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회화 못지않게 살가운 풍경도 피어나니 신비하다.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기론(vitalism)'까지 언급하면서 한국사상의 근저에 흐르는 기(氣) 철학과 동양미학의 기반이 되는 기운생동을 작품에 반영하려 한다. 그의 작품전반에 삶을 감싸고 다독이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많은 것은 바로 그런 시도의 한 예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도 보이는 회화처럼 찍다

 

a  '꿈(A Dream)-08013' C-프린트 225×150cm 2008

'꿈(A Dream)-08013' C-프린트 225×150cm 2008 ⓒ 이강소

'꿈(A Dream)-08013' C-프린트 225×150cm 2008 ⓒ 이강소

이제 끝으로 위 사진을 감상해 보자. 미학자 임영방은 "그의 작품은 음악적 율동이 넘쳐나는 서정시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 사진도 그런 면이 다분하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정겹고 이끼 낀 바닥과 불그스레한 벽이 주는 시적 정취 또한 빼어나다. 이런 풍경은 현실을 넘어 이상의 세상을 여는 꿈이 담긴 그림 같다.

 

쉬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작가 이강소, 그는 사진작업에서도 역시 그렇게 카메라와 끊임없이 소통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을 사진에도 적용시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보이는 회화처럼 찍는데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가 사진을 찍으면서 쓴 카메라에 대한 짧은 단상을 여기에 소개한다.

 

"세상은 불가사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좋은 친구, 좋은 대화자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자기가 보는 세계를 나에게 대화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어렵고도 친밀한 타자가 아닌가 한다."

 

a  '낙동강이벤트' 1977(왼쪽). '누드퍼포먼스' 1976. 이강소는 70년대 다양한 실험에 도전. 낙동강이벤트는 흔적만 남고 또 흔적마저 바뀌는 무상을 풍자

'낙동강이벤트' 1977(왼쪽). '누드퍼포먼스' 1976. 이강소는 70년대 다양한 실험에 도전. 낙동강이벤트는 흔적만 남고 또 흔적마저 바뀌는 무상을 풍자 ⓒ 김형순

'낙동강이벤트' 1977(왼쪽). '누드퍼포먼스' 1976. 이강소는 70년대 다양한 실험에 도전. 낙동강이벤트는 흔적만 남고 또 흔적마저 바뀌는 무상을 풍자 ⓒ 김형순

이강소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경상대 교수에 이어 1980년대 중반에는 뉴욕주립대(Albany)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옆 사진에서 보듯 그는 70년대엔 행위예술을, 이후 40년간 꾸준히 다양한 미술실험을 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사진으로 그 도전 영역을 넓혔다.

 

이강소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일본 등지 유수미술관과 유명갤러리에서 다수의 초대전을 열었다.

 

최근 주요 개인전을 보면 2008년 예화랑(서울), 2007년 이화익갤러리(서울), 2006년 아시아미술관(니스), 2005년 화이트 박스(뉴욕), 2002년 팔레 데 콩그레(파리), 2000년 도쿄갤러리(도쿄)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예화랑 강남구 신사동 52-9. 02)542-5543  http://www.galleryyeh.com 
약도는 홈페이지 참고. 3호선 압구정동 역 하차 5번 출구. 일요일 휴관
이강소 '꿈 전(A dream_ photographs, ceramics & paintings)'
이강소화백 홈페이지 http://www.kcaf.or.kr/art500/leekangso/main.html
#이강소 #예화랑 #섬으로부터 #기운생동 #안젤름 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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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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