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현장에서 전경 아들을 만났습니다"

시민과 시민이 맞붙게 만드는 MB정부의 'EQ'를 의심하다

등록 2008.06.04 09:00수정 2008.06.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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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노트 100개를 달성(?)하면서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기념일을 만들고서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편집노트를 통해 소개한 동영상 한 편이 저를 울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어찌보면 남 일이 아니기에 그렇기도 했습니다. 듣고 또 들으며, 보고 또 보며 이 글을 씁니다. - 기자 주

저도 시위란 것을 현장에서 몇 번 보았습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오랜만에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대규모 노동자 시위 현장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녁 6시 전후로 시위를 시작했던 그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하고 맞붙다가 명동성당으로 이동하여 거기서 해산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시위대를 따라 첫 시위 현장인 광화문 사거리에서 마지막 장소인 명동까지 이동했었습니다. 그때는 분위기도 험악했고 각종 위험한 시위 도구도 많았습니다. 피를 흘리는 시민들도 보았죠. 시위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이후 저는 서울 도심을 새롭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살아있는 현장으로.

전·의경은 '전투' 경찰이기 이전에 또 다른 시민

2008년 서울 도심 바로 그 자리와 주변에서 벌어지는 촛불문화제는 '시위'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뭔가 어색하고 그렇다고 '놀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한 아름다운 거리집회 문화로 나날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5월 내내 지속된 촛불문화제는 끝날 줄을 모르기에, 저는 이제 저녁마다 촛불문화제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각종 언론, 방송을 더 많이 챙겨봅니다. 누구 말마따나 이명박 정부는 민주시민의 열정과 시민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촛불문화제 덕에 우리나라 시민들 목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되었고 여차하면 한 마음을 이루는 아름다운 공동체의식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염없이 눈물나게 하는 '리얼 다큐'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저도 그 현장에 있던 시민들처럼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경찰 신분으로 군복무를 하는 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시위 중 아들과 마주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5월 31일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관련 동영상 원본, 편집노트, (참고로, 동영상 내용으로만 볼 때, 그분 아드님이 의경(의무경찰)인지 전경(전투경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육군 현역으로 입대한 후 차출당하여 경찰 신분으로 군 복무를 하는 전경(전투경찰)과 경찰청에 직접 응시하여 활동하는 의경은 서로 좀 다릅니다. 전투경찰순경 제도(위키백과))

"저는 또 가슴 아픈 게 있습니다. 토요일(5.31)이었습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분의 짧은 호소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저 같은 이들마저 눈물짓게 했습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정말 충분히 이해하기에 저는 컴퓨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시위 현장에서 마주친 경찰들을 너그럽게 보아주기는 참 어렵습니다. 평화로운 촛불문화제를 갈수록 '폭력'을 물들이는 경찰들에게서 시민들은 오히려 공포마저 느낄 정도입니다. 그런데 눈물이라뇨. 참 희한한 일입니다, 요즘같은 때엔.

그 분은 지난 달 미국산 쇠고기 장관 고시 강행이 추진되던 27일쯤부터 촛불문화제에 참가해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인 5월 31일 드디어 아들과 상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위하러 나온 아버지와 시위를 막으러 나온 아들 처지로 말입니다.

효자동에서 아들과 마주친 그분은 한동안 그 주변에서 서성거렸다고 합니다. 걱정되었다고 합니다. 걱정스러워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는 그 분 말씀을 들을 때 가장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아들을 만난 곳에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아들 얼굴 한 번 더 챙겨봐야 하나 시민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동참해야 하나를 놓고 참 많이 갈등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 부자 이야기는 올 2008년을 장식할 수없이 많은 뜨거운 장면들에 선정될 수 있을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호소요, 절규였습니다. 한 아버지의 절규에서 보듯, 저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아마도 시민과 시민이 맞붙어야 하는 자리를 마련해 준(?!) 이명박 대통령을 절대 잊지 못할 듯합니다. 언제까지라도.

아들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한 아버지 음성에는 뜨거운 현장이 담겨 있었고 사람 목소리가 담겨 있었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그 무엇이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강심장을 자랑하는 그 어떤 사람도 결코 이 장면을 눈물 없이 볼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버지를 통해 드러난 아들 모습을 저는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은 옛 추억을 빌려 상상할 뿐이지만, 남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성지수(EQ)가 의심되다

시민과 시민이 맞부딪친 사건. 저는 한 아버지의 절규 섞인 호소에 이와같은 이름표 한 장을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그 어떤 참혹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번 촛불문화제에서 생겨나는 모든 다툼, 상처, 아픔은 '시민과 시민이 맞부딪친 사건'들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저는 동영상을 통해 들려오는 가슴 속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영상 속 주인공처럼 '왜 우리가 이래야 합니까? 누구 때문입니까?'를 곱씹게 된  것입니다. 물론 듣고 또 들으며 보고 또 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고 심지어는 저 먼 영국의 대처 수상 이야기까지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저는 촛불문화제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상사가 결국은 '시민과 시민이 맞부딪치는 상황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잊었던 사람 목소리, 사람 냄새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시위 현장에서 만큼은 방어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경찰들한테서도 말이죠.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요, 민주시민으로서 함께 2008년 역사를 기록해가야 할 사람들인 겁니다.

그런 우리 마음을 이명박 대통령은 알까요? 때론 IQ(지능지수)보다 더 중요한 EQ(감성지수)가 무엇인지 이 대통령은 알까요? (시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많이 아는 것 만큼이나 (시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조금씩이라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대통령은 알까요?

감성지수가 한없이 올라가며 덩달아 지성지수마저 동반상승하는 시민들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은 둘 다 뒤섞여 버렸나 봅니다. 언제나 엇박자로 대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안타깝고도 화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달 9일에는 이 대통령께서 '국민과의 대화'를 하신다는데 잘 될는지 벌써부터 걱정스럽습니다.
#촛불문화제 #전·의경 #이명박정부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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