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가정의 할머니가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다가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생활고와 손자 뒷바라지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있다.
유성호
"고물 팔고 남은 돈을 숨겨두먼 귀신같이 찾아내 들고 내빼여. 신발 신은 채로 방까지 들어와 들고 튄다니께. 선생님들은 할머니 좋게 달래세요, 하지만 그게 돼요? 하루는 내가 같이 죽자 했어. 니가 거지냐, 왜 밖에서 자고댕겨? 니가 쥐새끼여? 왜 남의 집 옥상으로 기어올라가 잠을 자? 다리 부러지먼 병원 데꼬갈 사람도 없어 인마. 분이 나서 양산대로 죽도록 팼어요. 그랬더니 선생님들이 집까정 오셨두만."
손아귀에 300원만 쥐면 밤늦도록 '뿅뽕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작달막한 모니터에 얼굴을 디밀고 게임에 몰두하다 늦어지면 야단맞을까 겁나 차라리 노숙을 선택했던 것. 아들 며느리 집 나간 것도 속상한데 손자마저 걸핏하면 집을 나가 속이 상한 할머니는 영민이를 상대로 분풀이도 했던 것 같다.
영민이에게 왜 집 놔두고 연립주택 지하에서 잠을 잤느냐고 물었더니 암말 않고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와 같이 지내는 게 싫으냐는 질문에는 아니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실제 할머니는 둘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그룹홈'에 보낼 생각도 했었다.
"학교 가기 전에 아침밥 멕이면서 슬쩍 물어봤어요. 너, 공부방 선생님이 '그룹홈' 가고 싶다먼 보내준디야. 갈려? 핼미도 너랑 사는 것두 힘들구, 당최 입에 풀칠하는 것두 어렵다잉. 너만 좋다믄 언제든 가도 되여. 이 핼미는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께. 어뗘, 갈래?"암말 않고 듣고 있던 영민이는 고개를 푹 떨군 뒤 "안 가겠다"고 했단다. 그 뒤로 지금까지는 방과후 학교도 열심히 나가고 1~2시간 늦기는 하지만 불쑥 집을 나가는 일도 없어졌다고 했다. 고물 판 할머니 돈에 손대는 일도 없어졌단다.
"열세 살 되도록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 시켜봤어요"소연(가명, 13)이 아버지는 전직 기타리스트다. 스무 살 시절 나이트클럽에서 '오브리밴드' 일을 했다. 한두 해 일하다 전망이 없다고 판단한 소연이 아빠는 구로공단을 거쳐 81년 반월공단을 따라 안산 원곡동까지 왔다. 소연이 엄마와는 94년에 결혼했고, 97년 헤어졌다. 딱 3년 같이 살았다.
청년 시절, 공장생활을 청산한 부부가 작은 식당을 열었는데 소연이 엄마가 더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사채 쓰고 어음깡 하다 자금회수가 안 돼 결국 아파트와 식당에 차압이 들어왔고 홀랑 다 털어먹게 됐다. 그 뒤로 부부는 자주 싸우게 됐고, 급기야 아내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그 뒤로 소식이 끊겼다. 벌써 12년째다.
소연이가 한 살 되던 해, 엄마는 집을 나갔다. 아침에 안고 나와 학원 원장실에 맡기고, 일이 끝나면 업고 들어왔다. 너무 힘들어 시설에 맡길까도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내 자식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나기도 했다.
어렵사리 열세 살까지 키우느라 힘에 겨울 때는 술도 자주 마셨다. 하룻저녁 소주 6병까지 마셨으니 알콜중독 증세도 있었다. 술에 취해 잠든 뒤 새벽녘에 뒤척이다 소연이가 제 방에서 베개와 이불을 끌고 와 곁에 누워있는 걸 보면 가슴에 훈훈한 온기가 퍼졌다.
"저 녀석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연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네요."소연이랑 아빠는 안산 선부동에서 보증금 200만원에 월 18만원짜리 월세에 살고 있다. 그나마도 이 집이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다 해서 이사를 해야 한다. 주변 시세는 그간 많이 올랐다. 최소 300만원에 25만원은 돼야 방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건설 일용직 잡부인 소연이 아빠는 벌이가 일정치 않아 꼬박꼬박 월세 내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소연이가 중학교에 가야 하니 '사교육'도 해야 할 판이다.
소연이는 최근 영어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월 6만원인데, 수학학원마저 다니겠다고 선언해 소연이 아빠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연결해준 피아노학원도 50% 저렴하게 다녔지만 학원비에 허덕여 이마저도 그만둔 터였다.
"남들만큼 힘들게 일하며 사는데 우린 왜 만날 가난한 걸까요? 후훗. 소연이 열세 살 되도록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 시켜봤어요. 바라는 게 있다면 최소한 우리 딸이 돈 없는 것 때문에 공부가 처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초등학생들이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석수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유성호
빈곤하다는 이유만으로 학습권을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요구였다. 여자아이라서 악기를 배우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돈 때문에 그만두었다. 그나마 무료로 지역아동센터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데 중고생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 정부가 저소득층 아이들의 방임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지역아동센터의 여러 지원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현흥(44) 나영숙(44) 부부는 안산에서 12년째 목회활동을 해온 목사 부부다. 슬하에는 세 자녀가 있다. 소원(13), 소민(12), 소현(9)이다. 저소득 가정으로 정부지원을 받고 있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고 자활특례 자원봉사로 월 70만원은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현흥 목사는 "안산 선부동엔 한부모 가정 어린이들이 많이 있다"며 "특히 엄마가 없는 아이들의 결식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소한 빈곤지역 아동들의 급식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며 "천정부지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빈곤가정 부모들은 공교육 이외에 사교육은 포기하기 십상이라며 빈곤계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무상교육을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나영숙씨는 "고작 1주일에 한 번 마트에 갈 수 있는데 그마저도 3만원 한도 이외의 금액을 지출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고기 쬐끔, 야채 쬐끔, 아이들 간식거리 쬐끔 사면 끝"이라고 말했다.
교육비와 먹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늘 기도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나씨는 허망하게 웃었다.
"따뜻한 밥 한 끼 먹이는 게 교사들의 임무" [인터뷰] 안산 선일초등학교 김연주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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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애들은 꼭 우리 어릴 적 놀던 대로 놀아요. 값비싼 게임기 살 형편이 못돼 그런지 몰라도 돌멩이 같은 자연친화적 장난감을 갖고 놀지요. 마음씨가 순박하고 참 착해요. 가난하지만 정도 있고, 의리도 있는 애들이지요. 교사로서 보람 있습니다."
안산 선부동 선일초등학교 김연주 교감은 지난달 30일 교무실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이 학교 어린이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김 교감은 "조금만 상황이 좋아지면 곧 떠나는 동네라 전학률이 높다"면서 "새로 이주해오는 학생들은 이전 학생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공단지역 특수성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많고,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힘든 부모는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개 '나홀로 어린이'들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결식과 특기적성교육 등으로 저소득가정 아이들이 많은 후원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급식비 못 내는 아이들이 한 달에 123명 정도 됩니다. 안산지역 다른 학교에 비해 퍽 많은 편입니다."
김 교감의 분석에 따르면, 대개 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부모가 많다고 했다. 안산 반월공단으로 출근하는 부모들이 대개 아침 일찍 나가다 보니 아침밥을 챙겨주지 못하고, 대신 챙겨주는 돈으로 아이들이 군것질을 하니 영양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신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거비용이 저렴한 선부동으로 몰려든 주민 가운데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학부모들이 많아 더욱 학교의 역할이 커지는 것 같다는 김 교감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먹이자는 게 교사들의 임무처럼 돼버렸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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