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과거와 현재

[문을 지나고 산을 넘는 서울 성곽 종주기 ⑦] 인왕산과그 주변

등록 2008.06.12 11:48수정 2008.06.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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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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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산객들 ⓒ 이상기


창의문 주변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나 마땅한 음식점이 없다. 우리는 인왕산 길로 접어들어 최근에 만든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는다. 이곳에서 보니 지나온 북악산과 앞으로 오를 인왕산이 가까이 보인다. 일부 등산객들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눈다. 자신이 아는 어느 지점을 가리키면서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다.


이제 서울 성곽 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창의문이 북악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가장 낮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곽을 따라 나 있는 좁은 길을 올라간다. 이곳도 복원이 잘 되어 있다. 그런데 성곽 밖으로 철조망이 처져 있는 것이 보여 조금은 아쉽다. 곳곳에서 태조, 세종, 숙종, 현대의 성곽 축조 기법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석재를 사용하다 보니 이런 재미있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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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등산로 안내판 ⓒ 이상기


성곽의 돌 사이에는 들꽃들이 한창이다. 노란색 꽃들이 많은데 애기똥풀인 것 같기도 하다. 인왕을 향해 가는데 먼저 큰 바위들이 보인다. 안내판에는 기차바위와 마당바위라고 써 놓았다. 겉모양이 기차 화물칸처럼 둥그렇고 회색을 띠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마당바위는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있을 정도로 넙적하게 생겨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올라가면서 보니 동쪽으로 경복궁과 북쪽으로 북한산 능선 조망이 좋다. 경복궁은 북악산에서보다 훨씬 가까이 보인다. 광화문 복원공사를 하는 포크레인의 움직임까지 확인된다. 북쪽 기차바위와 마당바위 너머로는 북한산 연봉이 동서로 장쾌하게 펼쳐진다. 이게 바로 산에 오르는 맛이다. 최근에 작업을 마쳐 황토흙 자국이 역력한 성곽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서울 도성의 주산이 될 뻔한 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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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 ⓒ 이상기


한 30분 정도 올랐을까? 인왕산 정상에 도착한다. 우리 회원들 중 일부가 인왕산에 오르면서 가장 힘들어한다. 그 이유는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 힘이 부치기 때문이고, 날이 더워져 땀이 나기 때문이고, 벌써 4시간을 걸어 다리가 풀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남은 서대문과 남대문 그리고 남산 코스를 위해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잘 참는다. 사실 함께 한 사람들 중 두 명은 창의문까지만 동행했다.
    
인왕산(338m)은 서울의 서쪽에 있으니 도성의 우백호에 해당한다. 인왕산은 우백호답게 바위도 하얗고 그 기상도 웅혼하다. 그래서 조선 초기 무학대사에 의해 서울 도성의 주산으로 점지되기도 했다. <동국여지비고> 제1권 경도(京都) 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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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 바라 본 경복궁 ⓒ 이상기


도읍을 정할 때, 중 무학(無學)이 인왕산으로 진산(鎭山)을 삼고, 백악과 남산으로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를 삼으려고 하였는데, 정도전(鄭道傳)이 어렵게 여기며 아뢰기를 '예부터 제왕(帝王)은 모두 남쪽을 향하여 다스렸으니 동향(東向)으로 도읍을 창설할 수 없다'하여, 마침내 무학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인왕산이 도읍의 진산이 되었다면 정궁이 효자동 쪽에 자리 잡고 동쪽을 향했을 것이다. 그러면 백악산이 좌청룡이 되고 남산이 우백호가 되며 낙산이 안산이 된다.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배치다.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지만 궁궐이 그렇게 배치되었다면 지금 현재 서울의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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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 ⓒ 이상기


겸재 정선(1676-1759)은 1700년대 중반 한양의 실제 모습[眞景]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 중 인왕산의 비갠 후 풍경을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가장 유명하다. 1984년 국보 제216호가 되었으며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인왕제색도를 소개한 글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조선 영조 27년(1751)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이제까지의 산수화가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그린 것에 반하여 직접 경치를 보고 그린 실경 산수화일 뿐만 아니라 그 화법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산수를 너무나도 잘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의 400여 점의 유작 가운데 가장 크고 그의 화법이 잘 나타난 조선 후기 실경 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 삼청동 쪽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이다. 바위가 비에 젖어 검게 변했으며 그로 인해 바위가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에 비해 바위산 앞으로 기와집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와 버드나무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그것은 이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겸재는 날씨 변화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하고 있다.

동쪽과 북쪽으로 보이는 서울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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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서 바라 본 청와대 ⓒ 이상기


인왕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경복궁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그 이유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너머로 숲에 둘러싸인 청와대의 푸른 기와와 정원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동서로 길게 이어진 대로들 양 옆에 고층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광화문에서 세종로를 따라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남북의 대로에는 관공서들이 많은 편이다. 그에 비해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를 따라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동서 대로에는 상업용 빌딩들이 많은 편이다. 종로에는 조선시대 육의전이라는 큰 상점들이 있었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지금도 대기업은 물론 중소상인들이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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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줄기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파노라마 ⓒ 이상기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기차바위와 마당바위로 이어지는 인왕산 줄기 너머로 북한산의 연봉이 좌우로 정말 멋진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곡장에서부터 볼 수 있는 북한산 파노라마는 이곳 인왕산 정상까지 계속해서 볼 수 있다.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이 이어진다. 

서쪽과 남쪽으로 보이는 서울의 과거

인왕산에서 서남쪽을 바라보면 아주 가까이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 보인다. 이 산이 바로 안산(鞍山: 295m)이다. 안산과 인왕산 사이에는 옛날 서대문에서 구파발로 넘어가는 중요한 고개인 무악재가 있다. 무악재라는 이름은 안산의 다른 이름인 무악산(毋岳山)으로부터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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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가 있던 안산 ⓒ 이상기


그런데 바로 이 안산에 봉수대가 있다. 안산봉수대는 평안도 쪽의 긴급 상황을 받아 남산봉수대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 안산봉수대는 100m 간격을 두고 동쪽과 서쪽에 두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왕산에서는 거리가 멀어 그 모습들을 볼 수가 없다. 다만 산위로 솟은 통신용 철탑들이 이곳이 정보상 중요한 지점임을 알려준다.
 
남쪽으로는 범바위 모자바위 선바위가 보인다.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선바위다. 조선 초기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인왕산에 올라 서울 도성의 윤곽을 그리면서 선바위를 안으로 넣을 것인지 밖으로 넣을 것인지 대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능선을 따라 성곽을 내자는 정도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선바위는 자연스럽게 도성 밖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선바위를 제대로 보려면 인왕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성벽을 따라 무악동까지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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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 ⓒ 이상기


자료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 남산에 있던 국사당이 선바위 옆으로 이사를 오면서 선바위와 국사당 부근이 서울의 대표적인 무속신앙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선바위 옆을 지나면서 가까이 보니 천일기도 성지 도량 등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이제 선바위는 국태민안과 개인의 복을 구하는 기도처로 여겨지는 것 같다.   
#인왕산 #경복궁 #인왕제색도 #안산봉수대 #선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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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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