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톈안먼사건, 두 '금기'의 만남

[중국영화로 중국문화 읽기⑥] 꽌진펑 감독의 <란위(藍宇)>

등록 2008.06.13 11:09수정 2008.06.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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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의 동성애 인권운동가인 리인허(李銀河) 박사는 중국에 약 3천6백만에서 4천8백만 명의 동성애자가 있고 그들의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중국의 동성애자는 성년 인구의 약 3~4%, 우리 나라 전체 인구수에 해당하는 많은 숫자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남성 동성애자를 '통즈(同志)', 여성동성애자는 '뽀리(玻璃, 유리)'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는 남성 동성애자를 한나라 애제(哀帝)가 사랑하던 내시 동현(董賢)의 잠을 깨우지 못해 소매를 잘랐다는 데에서 '뚜안시우(斷袖)', 위나라 영공(靈公)과 미자하(彌子瑕)가 서로 이빨 자국을 내가며 복숭아를 나눠먹었다 하여 '펀타오(分桃)'라고도 부른다.

동성애자 감독 꽌진펑(關錦鵬)이 만든 영화 <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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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란위> 포스터 애절한 동성애 사랑을 그려내면서도 중앙권력에 대한 주변인의 저항의식도 내재된 작품이다. ⓒ 김대오


이밖에도 한 고조 유방과 적유, 죽림칠현의 동성애 등을 고려할 때 고대로 갈수록 동성애가 오늘날처럼 비정상적인 일탈행위나 범죄 혹은 죄악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동성애자가 많은 이유를 동성애에 비교적 관대했던 역사적 분위기에서 찾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숙사나 집단노동 등의 집단생활이나 지나친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성비의 불균형 또는 여성의 지위 상승에 따른 남성들의 과도한 결혼비용 부담 등에서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동성애자가 범죄인 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에서 커밍아웃을 선언한 동성애자 감독 꽌진펑(關錦鵬)이 만든 영화 <란위(藍宇, 주인공 이름)>는 '동성애'와 '톈안먼사건'이라는 두 금기를 교차시키는, 그 만큼 용기 있는, 기존의 질서에 과감하게 맞서는 작품으로 평가될 만하다.

또한 영화 <란위>는 예술성을 인정받아 2001년, 제38회 대만 금마장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하였다. 퀴어영화 <란위>는 촌스러운 신파극 같으면서도 은은하고 세련된 섬세함이 있고 잔잔하면서도 또 한편 파격적인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외유내강의 파격적 정치메시지 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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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과 란위 동성애라는 비좁은 사랑의 공간에서 절제된 사랑을 나눠야 하기에 더욱 애절한 느낌을 갖게 한다. ⓒ 김대오


1988년 여름, 가난한 건축학도 대학생 란위는 돈벌이를 위해 과외,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중 1천 위엔을 벌기 위해 사업가 한동에게 몸을 팔고 처음으로 동성애를 경험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 란위가 남성임을 부각 시키기 위해 감독은 란위가 면도하는 장면과 전신이 드러나는 파격적인 전라(全裸) 장면을 일부러 설정해 놓고 있는 듯하다.


4개월 후 어느 겨울, 두 사람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더욱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지만 한동은 동성애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을 의식한 듯 그들 관계에 선을 그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인연이 있어 만났지만 평생을 이렇게 함께 지낼 수는 없어!"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면 그 때가 헤어져야 할 때라는 거야!"

주변의 여학생들보다 한동에게 더 끌리는 란위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우린 아직 서로 잘 아는 것은 아니죠?"

두 사람의 이 대화는 비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그들의 아주 비좁고 옹색한 사랑의 공간을 확인 시켜 주면서 영화 내내 절제되고 조심스러운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란위를 가둬놓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한동이 다른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란위가 목격하면서 멀어진다. 그리고 '광장을 쓸어 버릴 것'이라는 정보를 들은 한동이 란위를 찾아 나서며 다시 가까워지는데 두 사람의 해후는 공교롭게도 1989년 6월 4일 새벽, 일촉즉발의 톈안먼사건 직전에 일어난다.

스쳐지나가는 장면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은 동성애영화가 중앙권력에 맞서는 주변인의 저항을 담는다는 기본전제를 상기해 볼 때 대단히 정치적인 장면으로 읽힐 수도 있다.

사랑도, 6.4도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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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위' 라는 이름은 '푸른 처마' 마오쩌둥이 내려다보는 톈안먼이 '붉은 처마'라면 란위는 그 중앙의 권위에 도전하는 '푸른 처마'인 셈이다. ⓒ 김대오


인터넷소설 <베이징이야기(北京故事)>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란위>에서 주인공의 이름 란위는 '푸른 처마' 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톈안먼에 마오쩌둥이 걸린 '붉은 처마'와 선명히 대비되는 색감의 이름이다. 6·4톈안먼사건이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의 붉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동성애는 가부장적 전통질서와 권위에 대한 소수 주변인들의 푸른 도전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죽음이고 모든 것이 끝나는 거야."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끝난 게 아니야."

란위와 한동이 나누는 이 대화는 란위의 비극적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 역할과 함께 한동이 평생 짊어지고 갈 란위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짐을 독자들에게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지금은 비록 아무도 톈안먼사건 희생자와 6·4에 대한 재평가를 거론하지 못하지만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끝난 게 아니라는 강한 정치적 메시지로도 받아들여진다.

<란위>는 이렇게 섬세하고 절제된 감정 처리로 동성애의 비극적인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6·4톈안먼사건에 대한 정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한동이 자기 아버지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서도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이 죽었을 때 몇 날 밤을 울고, 란위의 온 마을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는 집단 최면에 걸린 비정상적인 중국사회의 편향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동성애자와 같은 다양한 소수 주변인들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죄악시되는 동성애자의 삶을 받아들이기 힘든 한동은 결국 란위를 버리고 러시아어 통역을 하는 여인과 결혼하지만 결국 이혼 후 다시 란위를 만나게 된다.

변죽을 때려 중앙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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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사랑을 펼쳐보지 못한 란위의 눈물 모든 것을 주고 떠나는 란위와 슬픔 속에 홀로 남겨진 한동은 주변인으로 살면서 서로의 안식처를 잃는다는 데에서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 김대오


재회 후 절제된 방식으로 서로의 지난 시간들을 묻는 두 사람의 대화는 오히려 관객들로 하여금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간절히 사랑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란위가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모든 재산을 팔아 한동을 감옥에서 구해주는 내용 전개는 다분히 신파극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란위의 순수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읽힌다.

이 촌스러운 신파극은 란위가 공사장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죽고 한동이 그 공사장 주변을 지나면서 흘러나오는 황핀위엔(黃品源)의 노래 '왜 나를 슬픔 속에 홀로 남겨두고'가 길게 이어지며 막을 내린다. 촌스럽게 이어지는 톈안먼사건 당시의 유행가를 들으며 어쩌면 그 가사에 란위와 한동의 비극적인 사랑 이외에도 어떤 정치적인 함의가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아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익숙해지고 서로를 잘 알게 되면 헤어져야 한다는 이별이 전제된 비좁은 사랑의 공간에서 한 번도 마음껏 사랑을 펼쳐보지 못한 란위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건네주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던 한동을 마오쩌둥이 죽었을 때처럼 목 놓아 울부짖게 한다.

영화 <란위>는 중국인들이 금기시하는 동성애와 6·4톈안먼사건을 보일 듯 말듯 교묘하게 클로즈업 시켜 놓고 있다. 아주 작고 부분적인 소수의 문제를 건드려 본질로 치닫는, '변죽을 때려 중앙을 울리는'는 퀴어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할 만하다.
#란위 #중국 동성애 #톈안먼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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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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