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쌀이 무기라고 생각해?"

[온고을 사람들 18] <아시아 그리고 쌀展> 진창윤

등록 2008.06.15 09:52수정 2008.06.15 09:52
0
원고료로 응원
a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 ⓒ 안소민


"쌀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경제논리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쌀을 가지고 거래를 하는 것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쌀을 미국의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 단순히 쌀농사만 망하는 것이 아니다. 쌀을 비롯한 모든 농작물도 함께 망한다. 쌀개방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이런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지각하자는데서 출발했다."

쇠고기 협상을 두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한창인 6월 중순. 전주에서는 또하나의 소리없는 외침이 번지고 있다. '우리에게 쌀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아시아에 불어닥친 쌀개방과 식량부족의 위기를 직시하자는 목소리다. 한국민예총 전북지회 미술분과에서 주최한 이번 <아시아 그리고 쌀 展>은 그래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전시회다. 한국민예총 전북지회 미술분과장 진창윤씨를 지난 12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소리문화의전당에서 만나보았다. 


"작년 FTA 협상이 체결이 한창이던 때부터 이번 전시회를 구상하게 되었다. 행정 실무자도 아니고 당사자도 아닌 지역 미술인들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당연히 미술로 표현하는 길밖에 없었다. 시대를 바라보는 '창'이 되고 싶었다. 그때부터 미술분과 회원들이 모여서 전시회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쌀개방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고 세미나를 열고, 스터디를 했다. 우리부터 현실을 좀더 정확히 파악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전시회위해 세미나와 스터디만 수차례

이번 전시회에서는 50여작품이 선보인다. 회화, 조각,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소개되어있다. 낮술을 먹고 '빼앗긴 들'을 바라보는 농부를 그린 작품(‘낮술’/진창윤)을 비롯한 회화작품뿐 아니라 작품의 메시지를 좀더 강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기위한 설치미술품들이 주로 눈에 띄였다.

a  허수아비

허수아비 ⓒ 송은경


a  아버지의 마음을 분양중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분양중입니다 ⓒ 박진희


a  이종구씨의 작품

이종구씨의 작품 ⓒ 이종구


'허수아비'뿐인 논밭에 벼대신 미국 프랜차이즈 햄버거 봉투가 매달려있는 '허수아비' (송은경), 쌀 묘종을 직접 심어 작품을 구상한 '아버지의 마음 분양중입니다'(박진희), '쌀로 산다'(지용출), 주먹밥을 직접 탄화시킨뒤 이를 에너지로 표현한 일본인 미술인 고다마 마사토의 '에너지' '쌀'(임옥상)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장시형) 등 직접 쌀을 오브제로 한 작품들이 돋보였다.

그런가하면 전시장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버팀목(신석호). 직접 농촌에서 쓰는 각목 두 개를 단단히 이어 전시장 천장과 바닥을 지탱하고 있다. 이 두 각목을 잇고있는 거친 매듭이 참 투박해보이면서도 단단하다. 그 뒤편으로 작게 보이는 $자의 조형물과의 어울림이 묘한 대비감을 안겨준다. 


"우리가 미술인이기 때문에 미술로 표현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그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표현하는게 그렇게 녹록치않더라구요. 전시회를 몇일앞두고 포기한 작가들도 몇명 있어요. 자신에게 일종의 도전이었던 셈이었죠. 이번 전시회를 통해 지방 예술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더 자극을 주자는 의도도 있었어요."

a  낮술

낮술 ⓒ 진창윤


진창윤씨의 작품 <낮술>을 그리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들어보았다. 작품을 본 순간, '왠 티벳인?'이라고 생각했다. 진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느낀 사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던듯.


"보는분들마다 티벳이나 몽골쪽 사람들 아니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티벳사람같기도 하네요.(웃음)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들을 그린거예요. 순창 어디메쯤이었던 것 같아요. 놀러갔다가 그곳 정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시골할머니들을 보았어요. 내친김에 저희도 함께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었죠. 그때 붕괴되어가는 우리 시골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뭐랄까요... 뭔가 역동적인 에너지가 소멸해버린 느낌이랄까요."

a  진창윤씨

진창윤씨 ⓒ 안소민


이번 전시회의 특징중의 하나는 쌀문제를 단순히 우리나라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로 확대시켜 주목했다는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쌀 개방문제는 단순히 대한민국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유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작황부진, 인구증가와 도시화, 바이오 연료 수요증대로 인한 식량위기는 아시아 전체의 식량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일본, 중국의 아시아 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초청해 전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밀 값의 최고기록 행진으로 25억 아시아인의 생명줄인 쌀의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연간 세계 쌀 생산이 4억2천만 톤으로, 수요에 비해 300만톤 정도 모자라 현재 전 세계 59억 인구의 10%가 넘는 8억 명이 만성적인 기아상태에 놓여있다. 더욱이 해마다 1200만 명이 먹을 것이 없어 목숨을 잃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쌀의 위기는 후손의 미래까지 저당 잡힌 25억 아시아의 생명과 평화의 문제다."  -<아시아 그리고 쌀展 발췌>-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게임'

"한마디로 미국과 맞붙으면 다 죽는거죠. 미국이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해도 절대 쌀농사가 망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주법(州法)이 더 우세하기 때문이죠. 그들은 자국의 농민들은 강력하고 보호하고 지원하는 막강한 주법이 있어요. 그러면서 다른 나라 농민들의 지원체제는 철저히 차단하고있거든요. 이게 말이 되나요?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게임이죠. 이것을 무역이라고 하고 있어요. 그것도 국민의 밥줄인 쌀을 가지고 말이죠. 쌀을 무기화하려고 있어요."

a  All that falls has wing...

All that falls has wing... ⓒ 정하영


a  버팀목

버팀목 ⓒ 신석호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진창윤씨는 아시아 작가들과의 활발한 단체교류전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해외의 작가들과 교류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활발한 작품활동과 열정적인 창작활동이 많은 자극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느낀 것중의 하나는 우리도 좀더 활발하고 적극적인 창작활동을 해야겠다는 것이예요. 어떻게보면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지내왔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어요. 주위 환경만 탓하고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 만난 일본인 화가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포트폴리오로 제작해서 설명하고 개인홈피에 올려서 소개하는 등 정말 열심이었어요. 그를 보면서 '아, 우리도 저런 점은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전북지역은 특히 쌀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평야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기에 쌀에 대한 애착은 더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참여한 작가들에게도 그러한 '쌀'에 대한 추억과 정서가 더 끈끈하지 않았을까.

"아마 우리나라 중년이상이 대부분 그렇듯 어린시절 시골에서의 추억 한두개쯤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쌀은 추억이예요. 저도 어려서 논농사를 짓던 부모님을 따라 함께 논에 가서 심부름도 하고 모심기도 했던 추억이 있어요. 우리 농촌이 단지 농사만을 짓는 그런 곳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이번 전시회에서 '아버지의 마음 분양중입니다'를 출품한 박진희작가는 어린시절 방앗간을 운영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전시회에 출품한 대부분의 작가가 ‘벼농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서 공감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 공감들이 모여 오늘날과 같은 큰 울림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아시아 그리고 쌀>은 다음주 6월 18일까지 전주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열립니다.

이글은 선샤인뉴스(http://www.sun4in.com)에도 게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아시아 그리고 쌀>은 다음주 6월 18일까지 전주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열립니다.

이글은 선샤인뉴스(http://www.sun4in.com)에도 게재합니다.
#아시아 그리고 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