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털기 (35) 사고

[우리 말에 마음쓰기 341] 우리 말 좀먹는 국어사전 올림말과 말풀이

등록 2008.06.16 11:31수정 2008.06.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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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8월 30일 “히딩크 첫 자서전 ‘마이웨이’가 나온다”라는 제목의 사고社告로 조선일보는 홍보의 첫 포문을 열었다 ..  《텍스트》 10호(2002.12.) 8쪽

“제목(題目)의 사고社告”는 “이름으로 실은 사고”로 고치고, “홍보의 첫 포문”은 “홍보하는 첫 포문”으로 고쳐 줍니다.


 ┌ 사고(司庫) : [역사] 신라 때에, 조부(調府)에 속한 벼슬
 ├ 사고(史庫) : [역사] 고려 말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실록 따위 국가의 중요한
 │    서적을 보관하던 서고
 ├ 사고(四考) : [역사] 고려 시대에, 육품 이하 중앙 관직의 벼슬아치들에게
 │    일 년에 네 번 공과(功過)를 심사하던 일
 ├ 사고(四苦) : [불교]인생의 네 가지 고통. 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    것을 이른다
 ├ 사고(四庫) : 음양설에서 말하는 진, 술, 축, 미의 네 방향을 이르는 말
 ├ 사고(四庫) : [역사] 중국 당나라 현종 때 장안과 뤄양(洛陽)의 두 곳에 서적
 │    을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의 네 종류로 나누어 보관하던 서고
 ├ 사고(四顧)
 │  (1) 사방을 둘러봄
 │  (2) = 사방(四方)
 ├ 사고(死苦)
 │  (1) 죽을 때의 고통
 │  (2) 죽을 정도의 심한 고통
 ├ 사고(私考) : 사사로운 생각
 ├ 사고(私庫) : 사사로운 개인의 창고
 ├ 사고(私稿) : 개인의 사사로운 원고
 ├ 사고(事故)
 │  (1)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   - 자동차 사고 / 사고가 발생하다 / 사고를 당하다 /
 │     뜻밖의 사고에 대비하다 / 올해는 대형 사고가 잇따라 났다
 │  (2)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   - 사고를 치다 / 사고를 저지르다 / 저놈은 허구한 날 사고만 내고 다닌다
 │  (3) 어떤 일이 일어난 까닭
 │   - 그가 결근한 사고를 알아보아라
 ├ 사고(社告) : 회사에서 내는 광고
 │   - 회사 정문에 사원 모집을 알리는 사고가 붙어 있다
 ├ 사고(思考) : 생각하고 궁리함
 │   - 논리적 사고 / 진보적 사고 / 사고 능력 / 사고의 영역을 넓히다 /
 │     극단적인 사고를 배격하다 / 그런 근시안적인 사고는
 ├ 사고(思顧)
 │  (1) 두루 생각함
 │  (2) 돌이켜 생각함
 ├ 사고(査考) = 고사(考査)
 ├ 사고(師姑) : [불교] 선종에서, ‘비구니’를 이르는 말
 ├ 사고(斜高)
 │  (1) 기둥체, 직원뿔, 직원뿔대의 꼭짓점에서 밑면의 한 점에 이르는 선분의 길이
 │  (2) 정사각뿔의 꼭짓점에서 밑면의 한 변의 중점에 이르는 선분의 길이
 ├ 사고(飼고) : 말이나 소 따위의 먹이로 쓰는 짚
 ├ 사고(謝告) : [북] 출판물 따위에서 어떤 사실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알리는 글
 │
 ├ 무엇이라는 제목의 사고社告로
 │→ 무엇이라는 이름을 건 알림글로
 │→ 무엇이라고 알리며
 └ …

보기글을 보면 ‘사고’ 뒤에 한자로 ‘社告’를 붙입니다. ‘사고’를 한글로만 적을 때에는 알아듣기 어렵다고 보아서겠지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봐요. 한글로만 쓰기 어렵다고 느껴서 뒤에 한자를 붙이기보다, ‘한글로만 써도 넉넉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쓰도록 마음을 기울이면’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국어사전에 스무 가지나 실리는 ‘사고’인데, 이 스무 가지 ‘사고’ 가운데 우리가 널리 쓸 만한 낱말은 얼마나 될까요. 또, 한글로만 적었을 때 알아보거나 가려낼 만한 ‘사고’로 무엇이 있을까요.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밝히지 않았을 때 못 알아보는 ‘사고’는 무엇일까요.

하나하나 살피면, 역사와 얽힌 ‘사고’가 넷으로, 중국 역사와 얽힌 말도 있습니다. 불교에서 쓰는 ‘四苦’는 ‘괴로움 네 가지’로 풀어내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사방을 둘러본다”는 뜻으로 ‘四顧’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군요. 글쎄요. 그저 “사방을 둘러본다”고만 말해도 넉넉할 텐데.

 ┌ 회사 정문에 사원 모집을 알리는 社告가 붙어 있다 (x)
 └ 회사 앞문에 사원 모집을 알리는 글이 붙어 있다 (o)


회사에서 알리는 글(내는 광고)이라는 ‘社告’인데,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헤아리니, “알리는 사고”로 적습니다. 겹말입니다. 또한, 보기글 앞쪽에 “회사 정문”이라고 적어 놓았으니 두 가지로 겹치기입니다. 적어도 “회사 정문에 사원 모집 공고가 붙어 있다”쯤으로는 적어야 올바릅니다.

‘비구니’를 뜻한다는 ‘師姑’를 우리들이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비구니(比丘尼)’도 한자로 이루어진 말입니다만, ‘비구니’가 어떤 한자로 적는 줄 알면서 이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비구니는 그냥 ‘비구니’입니다. 그렇지만 ‘師姑’는 우리한테 어떤 말인지요?


 ┌ 思考의 영역을 넓히다 → 생각하는 테두리를 넓히다
 ├ 극단적인 사고를 배격하다 → 치우친 생각을 멀리하다
 └ 그런 근시안적인 사고는 → 그런 좁은 생각은

두루 생각한다는 ‘思顧’와 생각하고 궁리한다는 ‘思考’를 가려쓸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는지요. ‘궁리(窮理)’란 “깊이 생각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펴본다면, “생각하고 궁리함”을 뜻하는 ‘思考’는 “생각하고 깊이 생각함” 꼴이 되어, 말풀이부터 겹치기입니다.

 ┌ 事故를 치다 → 일을 벌이다
 ├ 사고를 저지르다 → 잘못을 저지르다
 ├ 사고만 내고 다닌다 → 말썽만 일으키고 다닌다
 └ 그가 결근한 사고를 → 그가 회사에 빠진 까닭을

우리가 ‘사고’라 할 때는 거의 모두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가 났다” 할 때 쓰는, 이 ‘事故’ 하나만큼은,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 두루 쓸 만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事故’도 한자로 어떻게 쓰는 줄 몰라도 누구나 얼마든지 씁니다. 그리고 ‘事故’도 때와 곳에 따라서 여러모로 걸러낼 수 있어요. 우리 삶에 ‘事故’라는 말이 들어오기 앞서까지는 줄곧 ‘일-큰일-말썽-골칫거리’ 같은 말을 써 왔습니다.

 ┌ 사고가 났다 (△)
 └ 큰일이 났다 (o)

우리 나라 국어사전에는 ‘우리 말’이 제대로 실려 있지 않습니다. 국어사전 구실이라면, 한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을 담는 곳간이어야 하지만, 곳간이 아닌 자질구레한 쓰레기까지 잔뜩 집어넣은 뒤죽박죽으로 느껴집니다.

얼핏 스쳐 지나가면 “와, ‘사고’라는 한자말만 해도 스무 가지나 되니, 한자말이 참 중요하고 쓰임새가 많구나. 한자말이 이렇게나 많은데, 한자말을 쓰지 말라고 하는 소리는, 또 토박이말을 쓰라고 하는 이야기는 엉뚱한 잠꼬대 아녀? ‘사고’라는 말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구나.” 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헤아리며 속속들이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우리들은, “이야, 이렇게 스무 가지나 되는 한자말 ‘사고’가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만, 이 가운데 우리가 쓰는 ‘사고’는 고작 한 가지밖에 없잖아? 그 한 가지도 쓰임새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잖아? 아니, 예부터 우리 나름대로 써 온 쓰임새가 있잖아? 국어사전에서 54%이니 70%이니 차지한다는 한자말 숫자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고 속내를, 고갱이를, 밑바탕을 참답게 깨달아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스스로 제 살을 깎아먹다 못해 내동댕이치는 국어사전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을 보듬고 우리 글을 추슬러 주어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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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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