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몰입' 정부, 부처 영어이름 이상해

[주장] 정부부처 영문명· 각종 안내문에 제대로 된 영어 써야

등록 2008.06.17 09:58수정 2008.06.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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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통일부'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Unification'에서 'unification'은 애초부터 분단되어있는 것을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가 강하다.

'통일부'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Unification'에서 'unification'은 애초부터 분단되어있는 것을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가 강하다. ⓒ 남소연

'통일부'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Unification'에서 'unification'은 애초부터 분단되어있는 것을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가 강하다. ⓒ 남소연

나는 오래 전부터 문화부(현재 문화관광체육부)에 번역감수팀(가칭)을 신설하여 정부기관 명칭·공항·철도안내문·도로표지판·박물관·유적지안내문 등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전담하게 하라고 신문 기고를 통해 촉구해 왔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 조직을 15부 2처로 개편하였다. 너무 길거나 얼른 이해하기 힘든 이름을 가진 신설 부처도 많이 생겼다.

 

새 정부부처 영문명, 직역보다는 실용적으로

 

가장 생소한 명칭이 '지식경제부'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부서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영어명칭을 보니 'Ministry of Knowledge Economy'라고 되어있다. 'knowledge(지식)'을 팔고 사는 'economy(경제)'를 말하는 것은 아닐 테고, 지식을 '절약(economy)'한다는 뜻은 더 더욱 아닐 터이다.

 

'knowledge economy'란 용어가 있긴 있다. 이것은 주로 지식에 기초를 둔 경제, 그러니까 'high-tech economy(첨단기술에 기초한 경제)'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전문가 아닌 일반인들은 거의 모르는 용어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나는 한번도 'knowledge economy'란 용어를 미국 신문에서 본 기억이 없다.

 

지식경제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 부처의 3대 핵심정책분야가 산업·무역·에너지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지식경제부를 'Ministry of Industries, International Trade and Energy'라고 영역하는 것이 더 좋을 듯싶다. 영어 명칭은 어차피 외국인들을 위해 만드는 것이니까 외국인들 귀에 익숙하고, 비전문가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명칭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가보훈처'를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라고 번역했는데, 우리가 말하는 '국가유공자'를 patriot(애국자)란 단어로 표현하기는 무리다. 거창하게 독립운동을 하지 않아도 애국심을 가진 사람은 다 patriot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보훈처의 주입무가 전역장병의 뒷바라지라면 영어명칭도 'Ministry of Veterans Affair'라 하면 무난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의 국가보훈처 비슷한 부서를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라고 부른다.

 

'기획재정부'는 과거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기능을 합친 부(部)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정식 영어명칭은 'Ministry of Strategy and Finance'라고 한다. '기획'을 Strategy(전략)이라고 번역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ic Policy(재정과 경제정책을 다루는 부')라고 하면 외국인들에게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행정안전부'도 '안전한 행정'을 추구하는 부처 같은 느낌을 주는 명칭이라 썩 좋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영어명칭 'Ministry of Public Administration and Security'는 더 알쏭달쏭한 이름이다. 우리말 명칭은 그대로 두더라도 영어명칭만은 차라리 외국인들이 금방 알아듣게 'Ministry of Interior' 또는 'Ministry of Internal Affairs'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다. 행정안전부 일이 과거 내무부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말이다.

 

'외교통상부'란 명칭도 세련된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통상 외교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부처 이름 자체에 통상이란 말을 꼭 넣어서 외교관이 장사꾼 냄새를 풍기게 할 필요가 있을까? 외교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하는 것이 진짜 외교 아닌가?

 

그러므로 이름을 외교부로 도로 바꾸고 영어 명칭도 'Ministry of Foreign Affairs'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우리말 명칭을 정 바꾸기 어려우면 영어명칭에서 끝에 붙은 'and Trade'만이라도 지워주면 좋겠다. 지식경제부 소관 업무의 하나로 이미 무역(trade)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농림수산식품부'란 명칭도 좀 장황한 느낌이다. 공식 영어 명칭 'Ministry for Food, Agriculture, Forestry and Fisheries' 역시 그렇다. 굳이 food(식품)를 붙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Ministry of Agriculture, Fishery and Forestry'면 충분할 것 같다.

 

'보건복지가족부' 역시 장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족을 뺀 보건복지를 생각할 수 없으므로 굳이 가족이란 단어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영어명칭도  'Ministry of Welfare and Family Affairs' 보다는 'Ministry of Health and Social Security'가 더 적당해 보인다. 여기서 'social security'는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를 뜻한다.

 

'국토해양부'란 명칭도 좀 어색하다. 국토에는 해양도 포함되므로 굳이 '해양'을 붙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영어 명칭 'Ministry of Land, Transport and Maritime Affairs' 역시 어색하다. 'Ministry of Construction', 'Transportation and Maritime Affairs'가 좋을 것 같다.

 

'환경부'의 영어명칭은 'Ministry of Environment'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Ministry of Environmental Protection(환경보호부)'가 좋겠다.

 

'여성부'를 'Ministry of Gender Equality'라고 의역한 것은 좋다.

 

'교육과학기술부'(Ministry of Education, Science and Technology)는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하다보니 이런 긴 명칭이 나온 모양인데, 과학과 기술도 교육의 일부이므로 그냥 교육부라고 해도 좋았을 것이다. 영어 명칭 역시 'Ministry of Education'이면 충분하다. 명칭 바꾸기가 어려우면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다.

 

'통일부'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Unification'보다 'Ministry of Homeland Reunification (국토의 재통일을 추구하는 부)'가 좋을 것 같다. 'unification'은 애초부터 분단되어있는 것을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가 강하므로, 'reunification(전에 하나였다가 분단 것을 다시 합친다는 뜻)'이 더 적당한 단어라 하겠다.

 

'국방부'의 영어명칭 'Ministry of National Defense'에서 불필요한 'national'은 빼는 것이 좋겠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문화부라고만 해도 될 것을 너무 설명적인 이름으로 지은 느낌이다. 이 명칭을 그대로 둔다면 영어명칭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은 무난하다. '법제처'는 'Ministry of Government Legislation'보다 'Ministry of Legislative Affairs'가 더 나을 것 같다.

 

생활공간 곳곳의 엉터리 영어들

 

'모친청부살해사건'의 중요한 증거물에 녹음되어있는 남녀 영어대화문을 한국 경찰이 번역을 잘못했고 한국 언론매체들이 이 오역을 그대로 베껴 보도한 사실은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이런 오역사고도 문화부에 번역감수팀 같은 것이 있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다.    

 

요즘은 고쳐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천공항에는 엉터리 영어로 쓴 안내문이 많았다. 예를 들면, 에스컬레이터 타는 곳에 'For your safety the Cart/Trolley does not get on this Escalator.(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카트/트롤리는 이 에스컬레이터에 타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었다. 공손한 명령문을 써야하는데 평범한 긍정문으로 써놓아 좀 웃기는 안내문이 되었다. 위험하니 짐 싣는 카트나 유모차를 끌고 에스컬레이터에 타지 말라는 뜻이라면 'For your safety, please do not ride the escalator with carts or strollers'라고 썼어야 한다.

 

또 공항 화장실에 "사용한 화장지는 변기 안에 버려주세요"라는 말을 영어로 'Toilet paper in the bowl(화장지는 변기에)'라고 써 붙였는데, 이것은 "변기 안에 화장지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used toilet paper(사용한 화장지)'가 아니라 그냥 'toilet paper'라고 한 데다가 구체적인 동사를 생략했기 때문에 화장지가 변기 안에 있다는 뜻인지, 화장지를 변기 안에 버리라는 뜻인지 분명치 않다. 오해의 소지가 없이 제대로 하려면 'Please put used tissues in the toilet bowl'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사용한 화장지를 변기 안에 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아마도 'flush toilet(훌라쉬 토일렛/수세식 변기)'를 써보지 못한 사람들이 오물이 묻은 화장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있기 때문에 이런 안내문을 써 붙였던 모양이다.

 

열차표 예매하는 곳에는 'Advance'라고만 써붙였다는데, 이것도 Advance Ticketing이라고 완전히 다 써주든가 아니면 Reservations(예약, 예매)라고 쓰는게 좋다.

 

수출 상품 영어 안내문에도 웃기는 오역이 상당히 많다. 어떤 인삼제품 영문 설명서에 "피로회복"을 글자 그대로 'restoration of fatigue'라고 번역해서 피로 회복이 아니라 그 정반대 뜻으로 오역한 것을 필자가 'fast relief from fatigue'라고 고치도록 충고한 바가 있지만 이런 오역은 아직도 도처에 많다.

 

언젠가 서울에 다니러 갔을 때 단골 호텔에 투숙했더니, 손님용으로 컴퓨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서 손님들이 인터넷에도 들어가 보고 이메일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컴퓨터 옆에 'Only Use Room Guest'라고 영어로 쓴 팻말이 붙어있고 영어 밑에는 일본어와 중국어로도 쓰여 있었다. 그리고 맨 위에 한글로 "객실 손님만 사용하십시요"라고 적혀있었다. 호텔 손님이 아닌 사람은 컴퓨터실에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이었다.

 

일본어와 중국어는 모르겠으나 영어로 써놓은 것을 보는 순간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Only Use Room Guest'는 "객실 손님만 사용하십시요"를 글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긴 하지만 영어로는 뜻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호텔 손님만 쓰라"는 말이 된다. 호텔 손님을 어디다 쓰라는 말인지 모르지만 좌우간 호텔 손님을 쓰라는 말이니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호텔 지배인에게 'For Hotel Guests' Use Only'라고 써주면서 그대로 다시 써 붙이라고 이르고 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지만, 영어를 잘 모르면서 원어민에게 한번쯤 물어보지도 않고 엉터리 영어안내문을 마구 써 붙이는 사람들과 그들을 감독해야할 책임이 있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충고한다. 제발 영어 원어민에게 물어보고 영어 안내문 좀 써 붙이라고 말이다.

 

제발 영어 원어민에게 물어보시라

 

잘못된 영어를 남용하여 국가기관이나 기업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거나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 번역감수팀을 신설하여 모든 영어번역은 반드시 이 팀의 감수를 받도록 제도화하면 된다. 물론 번역감수팀에는 교육 수준이 높은 영어 원어민을 고용해야 한다. 이 감수제도가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같이 생각될지 모르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영어번역문을 번역감수팀에 이메일로 보내고 감수팀은 그것을 감수하여 결과를 이메일로 보내주면 된다.

 

정확한 영어안내문 써 붙이는 것이 사소한 일 같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공항에서는 엉터리 영어 안내문을 본 외국인에게 "한국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겠구나"하는 나쁜 첫 인상을 심어줄 염려가 있다.

 

몇년 전 내가 평양으로 들어가는 북한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 세관 신고용지를 받아보았더니 한글 안내문 옆에 영어 번역을 달아놓았는데, 형편없는 영어였다. 평양에도 외국어대학이 있고 원어민 교수도 있다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무식한 실무자가 용감하게 영역한 것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하급 실무자들이 적당히 처리하고 아무도 그들을 감독하지 않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번역감수팀 신설은 한국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 이 충고가 'preaching to deaf ears(청각장애인에게 설교하기)' 즉 '우이독경(쇠귀에 경 읽기)'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조화유 기자는 재미작가이며 영어교재저술가입니다. 
#영어번역 #영어오역 #문화부 #조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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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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