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무법자, 볼라드

시각장애인의 통행권에 대하여

등록 2008.06.20 16:06수정 2008.06.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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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남산으로 마라톤 연습을 가는 시각장애인들이 있다. 서울지하철 명동역에 내려 남산을 향해 걷노라면 늘 거슬리는 곳이 있다. 횡단보도 앞 점자블록 위에 떡 하게 박혀 있는 볼라드(차량진입방지기둥) 때문이다.

 

흰 지팡이 보행을 하는 다수의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블록 위의 장애물은 매우 위험하다. 늘 다니는 길일 경우 그 즈음을 지날 때면 불평을 하면서도 장애물을 잘 피해가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그런 장애물을 만나면 그 당황스러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가게 앞 점자블록 위에 짐을 쌓아놓는 것만으로도 위험한데, 볼라드라는 놈은 쉽사리 자리를 옮길 수도 없게 땅에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볼라드는 나라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다. 이런 구조물을 시각장애인의 보행에 도움을 주고자 만든 점자 블록 위에 떡하니 박아놓았다는 자체가 관련 기관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번은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동호회에서 볼라드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에 대한 불만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무릎 높이의 화강석 볼라드에 걸려 넘어지거나 다리를 부딪쳐 멍이 든 사람이 수두룩했다.

 

볼라드의 위협은 시각장애인에 국한된 것은 아닌 모양인지, 얼마 전에는 자전거를 타다가 볼라드에 부딪혀 다친 사람에게 지차제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내용도 읽었다.

 

정부의 '보도설치 및 관리지침'에는 볼라드를 반드시 필요한 장소에 선택적으로 설치하고 ▲밝은색 반사도료 사용 ▲말뚝높이 80~100cm정도 ▲직경 10~20cm정도 ▲말뚝 간격 1.5m ▲충격흡수 재료 ▲말뚝에서 30cm 앞에 점자블록 설치 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형편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 설치되는 볼라드는 제법 위의 규격을 준수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설치된 볼라드에 대해서는 전혀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내용이 여러 차례 보도되었음에도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말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남산의 볼라드는 대체 언제쯤 안전한 위치로 옮겨지게 될까. 올해는 제발 잘못 설치된 볼라드와 점자블록들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사업을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점자도서관 발행 <빛이 머문 자리>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2008.06.20 16:06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국점자도서관 발행 <빛이 머문 자리>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시각장애 #볼라드 #한국점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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