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에 대한 맞불, '국민토성'
이른바 '명박산성'에 맞서기 위해 제안된 '국민토성', 그 '국민토성' 구축에 쓰일 모래에 대해 지난 20일 밤에 경찰이 모래주머니가 실린 트럭 자체를 막으면서 민감한 소재가 됐다.
경찰은 다시금 컨테이너를 쌓는 무리수를 동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변함없이 빈틈없었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마다 전경버스가 꼼꼼하게 채워져 있었고, 그 전경버스에는 공업용 기름이 발라져 있었으며 그 뒤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카메라를 든 사복 경찰들과 전경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야기한 것 같지만, 나로서는 경찰의 그런 빈틈없는 '청와대 사수 작전'이 시위참가자들을 자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시위참가자들을 향한 과잉폭력진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끼고 청와대를 사수하기 위한 바리케이드를 연계시키면 저 경찰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경찰인지 의문이 들면서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럴수록 청와대로 가보자는 의지는 더욱 거세진다.
21일 밤에도 다시금 밧줄이 동원됐다. 전경버스를 밧줄로 꽁꽁 묶어 수백명 이상의 사람들이 밧줄을 잡고 '으쌰으쌰' 기합과 함께 힘껏 당기는 것이다. 물론, 전경버스 안에는 전경 병력이 탑승돼 있다. 그들도 위험하다. 하지만, 시위참가자들도 그것을 모르진 않는다. 듣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전경이 다칠 위험이 있으니 내리게 하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게 해서, 시위참가자들은 전경버스 1대를 끌어올 수 있었다. 끌어온 버스에는 전경 병력이 있었다. 해코지를 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비폭력'이라는 명분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그들은 경찰의 바리케이드 벽 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1일 밤에 걸쳐 22일 아침까지 진행된 '48시간 국민비상행동' 두번째 날, 그날은 경찰이 더 흥분해 눈에 띄는 일을 많이 벌였다.
22일 새벽은 경찰 주최 '소화기 분사의 날'
아침 9시~10시에 이르러 정복경찰이 도로를 밀고 내려오면서 시위참가자들은 자연스레 해산의 수순을 밟았다. 경찰 병력이 직접 시위참가자들을 방패로 내리찍거나 구타하는 일은 없었지만, 경찰이 과잉대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엇으로 '과잉대처'했을까? 바로 소화기였다.
시위참가자들이 하나하나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들어진 '국민토성', 하지만 시위참가자들은 역시나 과하게 대처하지는 않았다. 태극기와 각종 단체 소속 깃발을 든 이들이 올라가 깃발을 흔들면서 노래와 함성이 울려퍼진 것이 전부였다. '명박산성 정복'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그것조차도 좌시하지 않았다. 시위참가자들이 전경버스를 밧줄로 묶어 끌어내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분말소화기를 분사하더니, 그 이후에도 충돌의 조짐이나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위해가 가해지면 시도때도 없이 분말소화기를 분사했다. 그것도 시민들을 향한 '직접 사격'이다. 맨앞에서 현장을 촬영하던 나도 5번이나 정면으로 분말소화기에 직사를 당했다.
그러자 곧 깃발과 큰 피켓, 그리고 생수가 동원됐다. 깃발과 큰 피켓은 전경버스의 창문을 막기 위해 동원됐으며, 생수는 분말소화기에 맞은 얼굴을 닦아내기 위한 것. 나 역시 생수로 얼굴을 닦아내려 했지만, 직사당한 것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와 방방 뛰기까지 했다. 잘못 닦은 것인지 분말이 눈에 들어간 것이다. 아침 나절에 정신을 차리고 나 자신을 살펴보니 온몸에 모래먼지와 소화기 분말이 흠뻑 묻어있었다.
분말소화기를 직사하는 것은 경찰 규정에 어긋난 진압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낸다. 물대포를 쏘겠다는 경고방송과 분말소화기 직사는 시위참가자들을 오히려 더욱 자극해 그들을 앞으로 이끌어내는 결과를 유발했다. 경고방송으로써 겁을 주고자 했겠지만, 그들은 오히려 의지를 다진다.
경찰과 시위참가자들의 '방송 대결'
그외에도 시위참가자들 사이에서는 경찰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은 마스크를 쓰고 차벽 위에서 '채증'을 하는 정보과 형사들 틈에 집회 참가자들이 미워하는 신문의 기자가 숨어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명확한 사실 확인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소식은 시위참가자들의 의지를 불태우는 이야기가 됐다. "찍으려거든 마음대로 하라"는 외침이 경찰의 차벽과 부딪쳤다.
그외에도 여러분들도 이제 모두 소식을 접했을 '전경버스 방화범 논란'은 '경찰 프락치 논쟁'을 유발했다. "자신이 농기계 다루는 사람인데 한미FTA와 관련하여 시장조사를 하러 나왔다"는 둥의 변명이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 오히려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수를 쓴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는 시위참가자들도 있었다.
물론, '백미'는 방송 대결에 있다. 대책회의 측의 방송차량이 뒤에 배치된 가운데에 그 방송차량과 경찰의 경고방송이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인 것이다.
"살수를 하겠다"는 경고방송이 나오면, 방송차량과 시위참가자들은 "샤워 좀 시켜달라"는 외침이 나온다.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를 하고 있으며 집시법 위반"이라는 경고방송이 나오면, "너희들의 불법주차나 처벌하라"는 외침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버스 위에 마스크 쓴 분, 뭐가 그리 두려워 마스크를 쓰나"라거나, "여러분이 부르는 노래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사가 있는데 과연 여러분의 행위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있는 것인지 판단하라"는 식으로 시위대에 대한 조롱을 시도하던 여경은, 시위참가자들이 곧장 반박으로 응수하자 냉정을 잃고 흥분상태에 접어들기까지 했다.
그래서 남성 경찰의 목소리가 끼어드는 경우가 있었다. 여경의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나선 '교체선수'일 것이다. 남성 경찰은 제법 머리를 굴렸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주최 측의 방송차량이 '살수' 경고와 함께 방향이 뒤로 바뀌었다. 사람들을 선동해놓고 도망가려는 것이냐?"
'내부분열'을 노린 것이었을까? 하지만 소용없었다. 일부 시위참가자들은 오히려 대책회의를 무안하게 할 정도로 대책회의는 신경쓰지 않고 자발적으로 앞장선다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이런 현실을 알고, 경찰은 '경고방송'을 하려거든 그저 '경고방송'만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전부터 경찰이 '경고방송'을 통해 시위참가자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자제해야 하는 일 아닌가?
하지만 남성 경찰도 곧 흥분하고 말았다. 그는 방송 도중에 뜬금없는 경고를 했다.
"불법 시위를 하고 있는 시위대는 절대 해산하지 말라. 우리 경찰이 당신들을 반드시 검거해 책임을 묻겠다."
경고방송을 진행한 경찰들만 흥분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내가 잡아낸 '한 컷'을 공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전경버스에 올라 경찰을 비난하는 시위참가자를 향해 정보과 형사 역시 이성을 잃고 맞대응해 서로 욕설을 주고받는 장면이다. 경찰이 얼마나 흥분 상태였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한 해산, 과연 끝을 볼 수 있을까
이 모든 현장을 지켜본 결과, 느낀 것이 있다면 적어도 매주 주말마다 이런 양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쇠고기 협상 수정안'은 오는 23일에 통과되면서 내주 안에 관보 게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관보 게재'가 다시금 민감한 소재로 등장할 것이다.
선을 넘어섰다. 이제 '미국산 쇠고기'는 주변부 요소다. 시위참가자들이 중점적으로 내거는 목소리는 '이명박 하야'다. 여기에는 민의와는 동떨어진 '대통령 특별 기자회견'과 '청와대 인적쇄신'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다행히도 경찰은 아침에 이르러서도 강경진압에 나서지는 않았다. 정복경찰들이 서서히 걸어와 시위참가자들을 인도로 밀어내는 수순이었으며, 쏘겠다고 수 차례 이상 경고했던 '살수'도 결국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살수'와 '방패찍기'가 동원된다면 오히려 이명박 정권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대처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노는 거기서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시위현장을 떠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늘 같다. 이 싸움은 결코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22 15:3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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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이나 직격당한 분말소화기, 나는 방방 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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