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육수라네, 설렁탕은 이제 다 먹었어!"

고단한 민초(民草)들의 쇠고기 문제 난상토론

등록 2008.06.22 15:15수정 2008.06.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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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0일 저녁 서울 충무로의 한 식당, 가까운 친구인 듯한 50세 전후 남성 네 명이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친구를 기다리다 등 뒤에서 들리는 이들의 대화에 관심이 갔다. 쇠고기 문제가 이들의 화제였다.  

 

 “이제 어지간히 하고 촛불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 엠비가 저렇게 까지 하는데 말이야. 협상도 좀 진전된 것 같고 말이야. 촛불 때문에 나라가 다 들썩거리니 참 불안해.”

 “나라 사이의 협상인데 우리 욕심 다 차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미국 체면도 생각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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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민심 민심은 하늘의 뜻이라 하지 않는가. 밤 세워 '재협상'을 외치는 이들에게 이웃과 후손은 많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 강상헌

▲ 광화문의 민심 민심은 하늘의 뜻이라 하지 않는가. 밤 세워 '재협상'을 외치는 이들에게 이웃과 후손은 많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 강상헌

 “에이, 미국은 체면 보다는 항상 실리를 챙기더라.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될게 없겠지. 자기 나라 위한 거고 잘 하는 거지 뭐. 그런데 미국 하자는 대로 하면 설렁탕 곰탕은 이제 먹을 생각도 말아야 한다면서? 그 에스알엠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야. 소고기보다 뼈, 곱창 같은 것에 훨씬 더 많이 들어있다고 하던데 그것이 한국에 밀려들어오면 난리가 난다는 게지.”

 

“뉴질랜드 호주 소고기 장사만 살판 난 것 아니야?”

 

 “그것도 대통령이 지금 협상단 보내서 안사겠다고 협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게 더 위험한 것 같던데. 나는 김종훈이가 가서 그것도 논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네. 우리가 식민진가, 먹을 것 사오는데도 미국 허락을 받아야 해? 참 골치 아파, 말들이 어렵고. 그런데 뼈 곱창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되는 것 아니야?”

 “그래, 소고기도 한우만 먹고, 비싸니까 횟수를 줄이면 되지 뭐. 솔직히 기분 찝찝해서 수입고기 먹겠어? 아 참,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미국과 달리 소에게 지 동족인 소고기는 안 먹인다면서? 호주 소고기 먹으면 되겠네. 아무리 그렇다고 소한테 소를 먹이는 것이 말이 되나. 유전자가 꼬여 광우병이 됐다고 하잖아?”

 “미국이 빡쎄게 졸라 한국 차 시장 열어 놓으니 미국 차는 안 팔리고 독일 차, 일본 차만 왕창 팔리는 것하고 같은 짝 나겠네.”

 “나야 당초 생각도 안하지만 돈 있으면 벤츠나 비엠더블류 사지 누가 폼도 안 나고 싸지도 않은 미국 차 사나? 기름도 더 많이 먹는대요. 정부는 독일 차 일본 차보다는 미국 차가 더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야. 호주나 뉴질랜드 소 장사들이 지금 표정관리 하느라 고민이겠더라.”

 “미국이 한국 백성들한테 온갖 싫은 소리 다 듣고는 실속은 막상 딴 친구들이 챙기는 양상이구먼.”

 “왜, 엠비가 문제지, 미국이 문제인가? 미국 정부는 제 할 일 하는 거라고. 자기 나라 이익 위해 얼마나 노력해? 우리도 그런 자세로 우리 이익 지켜야지. 그런데 미국한테 우리 이익 지키자고 하면 좌파고 빨갱이라며, 참 저속한 세상이구먼.”

 

“왜 어린 아이들 주부들까지 촛불 드는지 속 알겠네.”

 

 “왜, 청와대에 있는 추부길 목산가 하는 사람은 국민을 사탄이라고 했다며?”

 “요즘 교회마다 특별 예배로 시끄럽대요. 이명박 장로에게 힘을 주시어 좌빨의 음모를 깨뜨리게 하소서 이런다잖아?”

 “에이 설마, 광우병 쇠고기 안 먹게 해달라고 촛불 든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 부칠라고?”

 “하여간 그렇대요. 교회 안에서도 그 것 때문에 말들이 많아요.”

 “그런데 진짜 안 먹으면 되는 것 아니야? 30개월은 엠비가 지켜준다 했으니 우리같이 없는 사람 고기 먹고 싶으면 그 중 좀 비싸도 20개월 정도 된 것 먹으면 30개월 보다는 낫겠지. 돈 많으면 한우 먹고, 호주 것도 먹고. 싫으면 안 먹으면 되고.”

 “그런데 문제는 육수라네, 이 사람아. 이건 안 먹을 수도 없고, 완전히 포위되는 거지.”

 “육수가 왜?”

 “우리 음식, 괜찮은 요리 중에 육수가 기본이 되지 않은 것 별로 없잖아? 이 육수 대개 뼈 고아서 만드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요즘 설렁탕집 완전히 파리 날리는 거라고. 지레 겁먹고 미리 안 먹는 거지. 실은 나도 설렁탕 집 갔다가 그 얘기 듣고 께름칙해서 다른 것 시켜 먹었어.”

 “거참, 좀 심각하네. 차라리 30개월 이상 된 고기는 들여와 ‘30개월 이상’이라는 스티커 붙여서 팔면 되지만 뼈 내장과 같은 에스알엠은 진짜 안 되겠는걸. 선택의 여지가 없네.”

 

“우리가 식민진가, 내 사먹을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해?”

 

 “큰 일 낼 소리, 고기를 선택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어? ‘여기 24개월짜리 미국 고기 주세요’ 이런 주문이 어디 되겠느냐고? 요즘 고령화된다고 하니 광우병 10년 잠복기 생각해도 내가 죽을 날은 멀찍한데, 참 한심하게 됐군. 촛불 든 사람들 속 알겠네.”

 “엠비 짠한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양보 못할 사안이구먼. 우리 사회 먹거리가 불신 투성이가 되는 것 아니야? 지금도 엉망인데. 누구도 못 믿을 사회라, 딴 건 몰라도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놈은 작살을 내랬는데, 허허허.”

 “좀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웰빙하면 된다’는 속셈으로 이번 사태에도 은근히 엠비 응원하는 모양이던데, 육수가 망가진다는 이런 상황 다 알면 그쪽도 역시 심각하겠지? 이대로 가면 우리 음식 남은 것이 없겠네.” 

 

 이 대목에서 기다리던 필지의 친구들이 왔고, 우리 모임도 광우병 얘기로부터 시작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교회에 다니는 한 친구는 처음에는 이명박 정부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석 달 사이에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뒷자리의 그 일행은 그 후로도 높은 톤으로 쇠고기 문제에 관한 대화를 계속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식품안전부문을 취재해온 필자는 시민사회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008.06.22 15:1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식품안전부문을 취재해온 필자는 시민사회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우병 #미국 #SRM #육수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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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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