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6.26),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대한민국 시민들이 높이 들었던 촛불문화제가 어느덧 50회를 맞았다. 느낌으로는 100회는 족히 넘었을 것 같은데, 이제 고작(?) 50회란다. 나라 살림 잘 하고, 국민 마음을 다독여달라고 뽑아낸 대통령이 미덥지 못해 못내 그이 대신 나라를 걱정하러 거리에 모였던 시민 축제가 어느덧 50회를 맞은 게다.
그런데, 50회에 이르러 축하받을 대상이 또 있다. 지금은 ‘거리 방송’에 시선이 많이 몰려 의외로 주목을 덜 받는 ‘안방 방송’의 큰 줄기인 <대왕 세종>이 바로 그렇다. 지난 1월 5일에 첫 방송을 내보낸 이후 ‘대왕 세종’은 주말마다 바쁘다. 그리고, 그의 폭넓은 삶 한 구석을 들쳐보는 나도 바쁘고 힘들다.
조선왕조에서 성군 혹은 존경받는 왕으로 거론할 만한 인물이 누구누구일까. 보기에 따라서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세종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나 기꺼이 성군이라는 칭호를 내어준다. 그리고 그의 시대를 태평성대라 부르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그런데, 의외의 현상이 한 가지 있다. 태평시대의 대명사가 된 세종 시대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우리는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하사극 <대왕 세종>을 통해 세종의 인간미, 엄청난 독서 습관, 유약해보이면서도 치밀한 자세 등을 다시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이상 우리가 세종대왕에 대해서 아는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세종의 정식 묘호가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인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또, 그의 묘호에 당시 시대 상황에 따라 명나라의 입김이 들어가 있음을 아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우리는 세종의 묘호를 듣고 또 들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그가 남긴 업적의 깊은 내용에 대해서는 더더욱 잘 모른다.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을 넌지시 두 번 세 번 들춰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다는 아니어도 세종의 면면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세종실록 내용 전체를 요약 형태로 담아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세종시대 내부를 좀 더 잘 들여다보게 해준다. 세종대왕을 ‘한 권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 폭넓고 엄청난 영향을 남긴 시대 내부를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은 적잖은 기여를 한다.
세종 재위 시 도성에 왕이 세 명 있었다고?
세종이 이 땅에 남긴 유산은 양과 질 모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이렇게 세종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산을 대한민국 산하에 남겼다 해도 그게 무엇 무엇이냐고 묻는 이에게 속 시원히 곧바로 답해주긴 쉽지 않다. 위대한 인물이라면 별다른 논쟁이나 확인 없이 거의 맹목적이라 할 만큼 우러러보는 우리 습관 때문이다.
우리는 (만원 지폐를 통해서) 세종대왕을 거의 매일 매시간 보고 알지만 의외로 잘 모른다. 세종 대에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지만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세종의 기여도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세종이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 대신 왕 위에 오른 것은 알아도, 그의 재위 초기에 도성에 있던 왕이 세 명이나 되었다는 단순한 사실이나 재위4년이 다 되도록 태종의 그늘 아래 있었다는 사실-태종은 세종 4년 5월 10일에 죽었고, 정종은 세종 1년 9월 26일에 죽었다-에 대해서는 의외로 잘 모른다.
사실,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의 업적은 물론 그 실록을 일부분이라도 들여다 본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그의 오랜 재위 기간과 엄청난 유산을 생각할 때에 <세종실록>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세종대왕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우리를 적잖이 부끄럽게 만든다.
'세종장헌대왕실록', 그러니까 <세종실록>은 총 163권 154책(400쪽 분량으로 45권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라는 엄청난 부피를 자랑한다. 긴 재위기간과 엄청난 사료 내용 때문에 <세종실록>은 1권부터 127권까지는 편년체로 구성되었고 128권부터 163권까지는 지(志)-주제별, 사건별로 기록한 형태-로 구성되었다.
‘성군’이 이루어낸 ‘태평시대’를 떠받치는 그 ‘구성원’들을 들추어내고 모양을 잡아주는 일을 시도한 이가 있다. 십여 년 전에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일약 고전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켰던 박영규가 바로 그이다. 그리고 <세종과 그의 인재들>을 바탕으로 세종실록과 각종 문헌을 파헤쳐 원조 ‘태평성대’의 내막을 들여다 본 결과물이 바로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이다.
‘성군’ 세종의 삶과 영원한 ‘태평성대’에 깃든 그의 유산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말에 덧붙인 박영규의 말에 따르면, 이 책 1부 1장(‘왕자 충녕’)과 2장(‘폐세자 사건과 세종의 즉위’), 그리고 3부 전체(‘황금시대를 일군 세종의 인재들’)는 2002년에 <세종대왕과 그의 인재들>이라는 제목 아래 이미 출간된 바 있다. 그리고 이는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분량이다. 꽤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을 읽는 데 있어서 꼭 알고 있어야 할 점이다. 참고로, 책 끝에는 부록으로 조선시대의 정부기관, 내명부와 외명부가 담겨 있다.
이처럼 책 상당 부분이 이전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여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려는 이유가 있다. 요약한 내용이나마 세종실록 전체를 다룬 2부(‘세종실록 요략’)에서, 우리는 대왕 세종의 세심한 성격과 치밀한 정치력, 아끼고 사랑한 인재들과 가족에 관한 일화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세종의 치세, 훈민정음 창제 배경, 그의 가족과 친인척에 관한 내용 등을 꽤 상세히 다룬 1부 3장을 통해서도 세종과 그의 시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좀 더 다각도로 파악하게 된다.
사실, 세종의 면면이 ‘거의 날 것 그대로’ 담긴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그의 시대 배경과 인물들을 보다보면, '대왕 세종'에 대한 인상은 좀 더 뚜렷해지며 그에 대한 평가도 좀 더 분명해질 수 있을 게다. 50회 고개를 넘는 <대왕 세종>을 좀 더 알차게 보고 ‘대왕 세종’을 좀 더 세심히 알아가는 데 있어서도 이 책은 적잖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게다.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서 적자 중 셋째 아들로서 1397년 4월 10일에 태어난 ‘대왕 세종’, 그는 1418년 8월부터 1450년 2월까지 31년 6개월간 왕위에 있었다. 이름은 도, 자는 원정이었으며 세자에 책봉되기 전에는 충녕대군이었다.
세종은 조선 역대 임금 중 가장 많은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18명(적자 8명, 서자 10명)이다.(참조. 1부 끝, ‘세종가계도’) 그의 묘정에 배향된 신하는 모두 5명으로서, 황희, 최윤덕, 허조, 신개, 이수가 그들이다. 한편, 세종은 재위 19년인 1437년에 중요한 업무 전반을 왕이 직접 결재하는 육조직계제를 (조선 초기에 시행했던) 재상 중심의 의정부사서제로 다시 바꾼 일이 있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몰두하기 위해서인지) 한창 열정적으로 일할 때에 오히려 서무결재권을 세자에 넘기며 세자섭정을 추진한 일이 있다.
세종이 한글창제에 적극성을 보였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사실상 세종 단독 제작설을 주장하는 지은이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음을 기억해두자. 재위 초반기에서 후반기에 이르기까지 가까운 인물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수없이 목도했던 그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가족사(1부 3장 ‘세종의 가족과 친인척’)에 대해서도 조금은 관심을 두자.
인자함의 대명사인 황희에게 어쩔 수 없는 실수 아니 비리에 버금가는 ‘상처’도 있다거나, 세종의 스승 이수가 봉산 이씨의 시조이며 평소 술을 즐기다 낙마하여 안타깝게 죽은 일화 등은 말 그대로 일화 정도로 보아도 좋겠다. 그러나, 세종을 둘러싼 귀한 인재들의 면면에 대해서 세종실록과 대조해가며 살펴보는 일은 ‘대왕 세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일임은 결코 잊지 말자.
세종은 외교에서 실리를 챙기면서도 국방 강화에 힘쓰고, 왕도 정치의 튼튼한 기초를 다져놓았다. 또한, 그는 훈민정음이라는 전대미문의 열매를 남기고, 인재를 찾는 일을 나라 살림의 기초로 삼으면서 개인의 아픔을 딛고 시대를 넘나드는 ‘태평성대’의 원조로 자리잡았다.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의 길고 긴 세월과 깊고 깊은 발자취를 한 눈에 훓어보고 싶거나 대하사극 <대왕 세종>을 좀 더 친근히 보며 역사 발자취를 자기 삶에 좀 더 뚜렷이 남기고 싶은 이가 있다면,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이 그에게 썩 괜찮은 도움을 주리라. 물론, 이 책은 특정 부분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분석을 시도하는 이에게는 징검다리 정도가 될지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날선 평가와 세심한 관찰을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대왕 세종'에 대한 지은이의 마음과 목소리를 함께 바라보련다.
"확실히 그는 위대한 왕이었다. 아니, 단순히 왕으로서만이 아니라 대단한 인격자이며 걸출한 인간이었다. 그에겐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남다른 용인술이 있었으며,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을 살 줄 아는 폭넓은 아량이 있었다. 왕이기 이전에 학자였고, 인간미 넘치는 선비였으며, 공평무사한 판관이었다.
다른 왕 아래선 전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던 인물도 그를 만나 날개를 달았고, 다른 시대엔 쓸모없는 지식으로 여겨지던 것들도 그의 시대엔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대에 만들어진 보석들은 조선왕조의 주춧돌이 되고, 대들보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박영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08.
2008.06.26 10:5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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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박영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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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세종, 그는 진정 훈민정음을 혼자 완성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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