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39) 아웃사이더

[우리 말에 마음쓰기 352] ‘줄’과 ‘금, 그리고 ‘線(선)’과 ‘line(라인)’

등록 2008.06.27 13:32수정 2008.06.2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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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라인(line)

 

.. DMZ를 구획하고 있는 남방한계선의 철책선이 흘러가는 두 개의 평행 라인은 끊임없이 버티고 있는 힘의 균형을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  《함광복-DMZ는 국경이 아니다》(문학동네,1995) 31쪽

 

 ‘구획(區劃)하고’는 ‘나누고’나 ‘가르고’로 다듬습니다. ‘철책선(鐵柵線)’은 ‘쇠울타리’로 풀어 보면 어떨까요. “두 개의”는 ‘두’나 ‘둘’로 고쳐야 합니다. ‘극명(克明)하게’는 ‘또렷하게’로 손질하고, ‘묘사(描寫)하고’는 ‘나타내고’나 ‘보여주고’로 손질해 줍니다.

 

 ┌ 라인(line)

 │  (1) = 선(線)

 │  (2) 스포츠에서, 경기장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은 선.

 │     ‘선’, ‘줄’, ‘금’으로 순화

 │   - 파울 라인 / 공이 라인을 벗어나다

 │  (3) 기업에서, 구매ㆍ제조ㆍ운반ㆍ판매 따위의 활동을 나누어 수행하고 있는 부문

 │   - 생산 라인

 │

 ├ 두 개의 평행 라인은

 │→ 두 평행선은

 │→ 나란한 두 줄은

 │→ 나란한 금 둘은

 └ …

 

 국어사전 낱말풀이를 살피니, (1)도 ‘선’이고 (2)도 ‘선’입니다. 더구나 (2) 풀이 뒤에는 ‘선’이나 ‘줄’이나 ‘금’으로 고쳐야 한다고 달아 놓습니다. 그렇다면, ‘라인’ 뜻으로 쓰는 (1)와 (2) 보기는 모두 옳지 않다는 셈이 되는군요.

 

 ┌ 생산라인

 └ 생산줄

 

 회사나 공장에서 쓰는 ‘라인’을 생각해 봅니다. 이때에는 영어 ‘라인’을 그대로 두어야 나을지, 아니면 ‘줄’로 담아내야 나을지요.

 

 ┌ 파울 라인 → 파울 금

 └ 공이 라인을 벗어나다 → 공이 금을 벗어나다

 

 보기글에 쓰인 ‘평행 라인’은 먼저 ‘평행선’으로 다듬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란한금’으로 한 번 더 다듬습니다. 말을 풀어서 “나란한 두 줄”이나 “나란한 금 둘”처럼 적어도 괜찮습니다.

 

 

ㄴ. 아웃사이더(outsider)

 

.. 그는 뛰어난 그리고 독창적인 ‘개성의 화가’였다. 그리고 고독한 아웃사이더이기도 했다 ..  《장소현-뚤루즈 로트렉》(열화당,1979) 10쪽

 

 “그는 뛰어난 그리고 독창적(獨創的)인”은 “그는 뛰어나고 남다른”으로 고쳐 줍니다. ‘그리고’ 같은 이음씨는 말 사이에 넣을 수 없습니다. “개성(個性)의 화가”는 “개성있는 화가”나 “톡톡 튀는 그림쟁이”로 다듬습니다. ‘고독(孤獨)한’은 ‘외로운’이나 ‘쓸쓸한’으로 손봅니다.

 

 ┌ 아웃사이더(outsider)

 │  (1)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

 │   - 평생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아웃사이더로 지냈다

 │  (2) 카르텔, 트러스트 따위의 특정한 협정이나 조합에 들지 아니한 동업자

 │  (3) 경마에서, 인기가 없는 말

 │

 ├ 고독한 아웃사이더

 │→ 외로운 주변인

 │→ 외로이 떠도는 사람

 │→ 쓸쓸이 바깥을 맴도는 사람

 │→ 홀로 떠도는 사람

 │→ 혼자 그리는 사람

 └ …

 

 ‘아웃사이더’가 어느 틀이나 동아리에 매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면, 우리 말로는 ‘나그네’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곰곰이 헤아려 보니, ‘아웃사이더’라는 바깥말이 들어오기 앞서도, “틀이나 동아리에 안 매이며 살아가는 사람”은 있었습니다.

 

 ― 바깥사람 / 나그네 / 떠돌이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이 붙은 잡지도 있었습니다. 잡지를 내던 이가 양심에 따라 군대를 안 가겠다고 해서 붙잡혀 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더는 못 나오게 된 잡지입니다.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릅니다만, 다시 나오게 된다고 해도 똑같은 이름 ‘아웃사이더’로 나오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옳거나 바르거나 아름다운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일을 귀엽게 보아주지 못해서 ‘맴돌이’를 자꾸자꾸 키우니까 이와 같은 잡지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 다른 삶, 한자말로 하면 개성과 고유와 창의와 창조로 꾸려가는 삶을 반가이 맞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인 터라, ‘아웃사이더’ 같은 잡지가 자꾸자꾸 꼬집고 들쑤시면서 우리가 못 깨닫거나 안 깨달으려고 하는 대목을 짚어 줄밖에 없습니다.

 

 곰곰이 따져 봅니다. 우리 사회는 먼 옛날부터 ‘개밥도토리’라고 하여 ‘나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을 따돌렸습니다. 그런데 따돌림에서 그치지 않고 괴롭혔습니다. 더욱이 괴롭힘에 그치지 않고 아예 파묻었습니다.

 

 ― 또다른 삶 / 또다른 길 / 다른 삶 / 다른 길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이런 ‘개밥도토리’ 대접을 뼛속 깊이 느낍니다. 우리 사회는 왜 그렇게도 ‘개밥도토리’를 수없이 빚어내고, 또 이렇게 빚어낸 개밥도토리 숫자가 제법 많아도 이들을 슬기롭게(?) 잘 억누를 수 있을까 놀랍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회가 개밥도토리를 빚어낸다기보다, 우리 스스로 개밥도토리를 빚어내는지 모릅니다. 우리 힘으로 민주나 평화나 자유를 이루어내기 어렵다고 일찌감치 고개를 떨군 다음, 권력자한테 붙거나 부자한테 붙거나 유명인사한테 붙으면서 떡고물이라도 주워먹으려고, 우리 스스로도 개밥도토리이면서 이웃 개밥도토로를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개밥도토리’보다 더 짓밟히는 사람, ‘모난돌’도 있어요.

 

 ― 개밥도토리 / 모난돌 / 미꾸라지

 

 여기에다가 애먼 ‘미꾸라지’까지. 미꾸라지가 무슨 물을 흐린다고. 미꾸라지는 자기가 살아야 하니, 자기한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인데.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27 13:32ⓒ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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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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