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만의 친정 집들이

등록 2008.06.29 20:12수정 2008.06.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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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하면 남의 집은 한 장인데 우리 집은 기본이 두 장이었다. 하도 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 많은 주소지 이동을 다 기록하다 보면 그렇게 되었다. 그런 등본을 떼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셋방살이에 언니 오빠들은 전학을 자주 다녀서 적응하느라 늘 힘들었다. 하긴, 그런 적응기간이 시간이 지나 사회성을 키우는 데는 일조를 했다. 그만큼 문어발로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니 말이다. 허나, 그 당시에는 모두 이사 좀 그만 다니고, 보잘 것 없어도 마음 편한 '우리집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은 무일푼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33년 전 어렵사리 작은 주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다" 그 때 그 기분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자유로웠던 것 같다.

 

헌데, 인간만큼 간사한 동물이 또 있을까? 그 때의 감사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져만 갔다. 10년, 20년 세월을 겪으며 집은 낡고 누추해졌다.

 

"남들은 잘도 업그레이드 하두만. 우린 만날 왜 이 모양이고?" 하면서 푸념을 했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다른 이를 지켜보면서, 발전이라고는 하나 없는 그날그날 먹고 살기 급급한 살림살이가 싫었다. 솔직히 능력 있는 부모 만나 잘 사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더구나, 주변에서는 그런 형편에 아이들 공부 시킨다고 핀잔까지 주었다.

"아이고, 그 형편에 공부 시켜 뭐 할라카노. 공부한다고 다 취직하남."

그런 말에도 엄마는 일언방구 대꾸하지 않았다.

 

혹여, 자식들이 공부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가진 것은 누가 훔쳐가도, 배워서 머리에 든 것은 누가 못 가져간다. 어떤 일을 하고 살던 간에 사람은 배워야 하는 기라" 하면서 '밥은 굶어도 배워야 한다'는 나름의 신조를 가지고 계셨다.

 

만약 엄마가 자식 넷 키우는데 번 돈을 다 쓰지 않았다면, 엄마의 이사는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자식에게 벗어나 오롯이 부모만을 위해 번 것을 저축한 세월이 좀 더 길었다면 말이다. 가진 것 없이 자식뒷바라지하며 당신을 위해선 한 푼도 쉬이 쓰지 못하고 산 세월이 너무 길었다.

 

부모의 내리사랑에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도 못하는 것이 자식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는데, 자식은 자기 사는 것이 바빠 부모에게 변변찮게 뭐 하나 하는 것이 없다. 나 또한 딸자식에게 모두 쏟아 붓지만, 그 딸은 또 자신의 자식에게 쏟아 붇는 내리사랑, 그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식 넷이 모두 집을 사고 아파트에서 편히 살면서도 가끔 보는 엄마, 불편한 집에서 해방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그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아무튼, 엄마는 33년 만에 원하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낡은 주택에서 앞에 산이 보이는 공기 좋은 아파트로, 엄마가 원하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엄마다. 요번 토요일에 시간 되나? 집들이 하려고 하는데"

"된다. "

"엄마가 한 턱 쏜다. 와서 맛있는 것 먹자."

 

내 형편을 아는 엄마는 부담 없이 오라고 한다. 내가 집을 샀을 때 엄마에게 받은 축하금은 꿀꺽하고 마음껏 못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세상 모든 딸은 엄마가 가장 편해서, '그려, 엄마가 날 이해하지. 누가 날 이해할까?' 하며 부담을 던다. '엄마, 형편 좋으면 많이 해 줄게' 마음을 가져보지만 그놈의 형편이 언제 나아질지 원.

 

28일 4남매가 새로 이사한 집으로 다들 모였다. 사촌끼리 모여 노는 것을 좋아하는 딸, 한껏 부풀었다. 다들 모이자,  한 쪽에서는 고스톱, 한 쪽은 수다, 아이들은 저들끼리 노는 것에 정신이 없다. 

 

아이고 자다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시간이 6시가 가깝다. 다들 체력도 대단하다. 우째 그 시간까지 놀 수 있는지. 남편은 돌아오자마자 잠에 곯아 떨어졌다. 낮에 예식이 있어 갔다 와서는 또 자고 있다.

 

아무튼 집들이는 유쾌하게 끝이 났다. 33년 만에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소원 성취한 엄마. 집이라는 것이 의식주의 한 부분이여서 반드시 있어야 하겠지만, 좀 더 일찍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집에서 여생을 잘 보내시기를 바랄 뿐이다.

 

시각을 돌려 좀 더 외곽으로 벗어나자 이사는 한결 쉬운 일이 되었다. 모두 먹고 살기 위해, 아이 공부 때문에 도심에 아등바등 살지만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가면 좀 더 저렴하게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집이라는 굴레어서 벗어나 다른 것도 함께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좀 더 빨리 왔으면 싶다.

2008.06.29 20:12 ⓒ 2008 OhmyNews
#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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