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와네트와 델라루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촛불집회에 대한 새로운 의미

등록 2008.07.02 21:36수정 2008.07.0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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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함께한 정의구현사제단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라는 그들의 플래카드가 의미심장하다. ⓒ 강기희 기자

▲ 촛불시위에 함께한 정의구현사제단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라는 그들의 플래카드가 의미심장하다. ⓒ 강기희 기자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될 것이 아닌가?"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시위군중들이 빵을 요구한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루이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는 이 내용은 유명하다.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 왕비가 뇌까린 이 말이 오늘날 우리에겐 이렇게 다가온다.

 

"미국산 쇠고기가 싫으면 수입하더라도 안 사먹으면 그만 아닌가."

 

이것은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가던 시절, 노예에서 해방된 400만 흑인들의 처우를 놓고 일부 정신 나간 정치가들이 '아프리카에 흑인 공화국을 만들어 그들을 이주시키면 된다'라고 주장했던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무리 절대권력을 가진 왕정 하에서도 국민을 지극 정성 섬기려는 지도자들에겐 하나 같이 지혜의 샘이 마르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의 지혜는 국민을 성심껏 섬기려는 '겸손'에서 오는 소산물이었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를 한 당사자들처럼, 국민을 그저 피통치자에 불과한 집단으로 보는 지도자들에겐 '교만'이 공존할 뿐이며, 그 말로는 대개가 비참하다. 이런 류의 통치자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현명한 길로 통치방향을 전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는 전해준다.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 통치자의 말로

 

전체 국민의 2%밖에 되지 않던 귀족 등 특권계급의 부당함에 반기를 들게 된 '프랑스대혁명' 초기만 하더라도 민중은 국왕의 퇴진을 요구하지 않았다. 귀족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고 민초들을 짓누르는 부당한 제도를 개혁해 달라고 부르짖었을 뿐이었다.

 

당시의 순진한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힘으로 국왕을 퇴위시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마치 우리 현실에서 공정하게 선출된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참여민주주의를 외친다 해도 임기 중엔 퇴진시킬 수 없다는 시각과 같다.

 

그런데 루이16세와 귀족들 또한 끝까지 봉기를 일으킨 민중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더러운 부랑자들이 공짜로 빵을 요구하는 뻔뻔한 모습뿐이었다. 그들에겐 절박하게 외치는 민중들의 절규가 터무니없는 소리로만 들린 것이다.

 

민중의 소요가 극에 달해 위험을 느끼게 되었어도, 왕은 처가집인 오스트리아 왕가의 힘을 빌려 민중소요를 해결할 생각뿐이었다. 그만큼 당대 최고 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는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력한 국가의 후원을 받는다 해도 백성의 분노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민초의 외침을 알아들을 만한 지각을 소유하지 못한 것은 그에게 큰 불행이었다.

 

결국 오스트리아로 도망을 치다가 잡힌 프랑스왕과 왕비는 단두대에서 처형 되는 비운을 맞는다. 개혁을 외치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닫고 구태를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쳤던 결과는 퇴위가 아니라 왕과 그 가족의 죽음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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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과 함께하는 촛불시위 신뢰가 떨어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 수록 더욱 거세진다. ⓒ 탁기형 기자

▲ 사제단과 함께하는 촛불시위 신뢰가 떨어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 수록 더욱 거세진다. ⓒ 탁기형 기자

 

시위가 아니라 혁명이다

 

요즘 경찰과 극렬한 대치로 부상자가 속출하던 촛불집회가 천주교 사제들이 나서서 평화를 되찾자 오히려 정부가 당혹해 하는 것이 역력하다. 경찰로 하여금 시위대에게 폭력을 조장하고 그 핑계를 들어 더 큰 폭력으로 촛불시위를 원천 봉쇄하려던 일이 애매하게 꼬였기 때문일 것이다.

 

두달이나 이어진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루이16세 정부처럼 국민의 요구를 이해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치적인 이슈엔 1988년 이후 20년간이나 침묵하던 '정의구현사제단'마저 마침내 촛불시위에 참석했을 정도다.

 

예전부터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의 광화문시위 참여는 두달간 이어졌던 촛불시위의 이유와 정당성, 그리고 향후 시위의 방향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촛불의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오르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참여민주주의의 의미는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국민이 한번 투표로 권리를 행사했다면 그 선거로 뽑힌 지도자를 따르고, 불만이 있다면 다음 투표에서 의견을 표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헌법수호의 정신에 비추어보면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헌법보다 우선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일이 다채롭게 벌어지는 인간현실에서 볼 때 그것은 어쩌면 위험한 발상이며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기시감을 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도 불법적인 통치를 일삼거나 무능의 도가 지나친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항거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 그렇게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많은데, 닉슨 미국 대통령도 거기에 포함된다. 최근의 일로서는 유명한 '냄비혁명'에 의해 대통령직을 사임한 아르헨티나의 델라루아가 대표적이다.

 

델라루아는 보수우익을 표방했고, 수도권 시장 출신으로 1999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일자리 창출을 제1과제로 내세워서 5%의 경제성장과 각종개혁을 공약했으며, 친기업을 표방하고 외국기업에 관대했다.

 

델라루아는 50%를 상회하는 초반의 국민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서민들의 삶을 외면하여 두세 달 만에 지지율이 20% 초반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마침내 델라루아 정부의 친기업, 반서민 정책에 항거하여 주부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냄비를 두드리며 시위를 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배후에 불순분자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며 무시했다. 그가 성난 민심을 경찰에 맡겨 단속을 강화하는 강경책을 쓰자 끝내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다. 

 

더욱 분노한 시위대는 물밀듯이 대통령궁으로 달려갔고, 다급해진 대통령은 군부에 진압을 요청했다. 그러나 군부는 병력투입을 한마디로 거부해 버렸다. 부당한 대통령에 항거하는 국민을 군홧발로 짓밟기에는 양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2002년 12월, 델라루아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대통령궁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도망쳤다.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강력히 다가오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기시감(데자뷰 현상)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대통령과 어쩌면 그리도 닮았을까. 

 

무엇보다도 지도자의 강력한 무기는 신뢰감이다. 신뢰가 떨어진 지도자는 아무리 일을 잘하려고 노력해봐야 누구도 그의 노고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중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 지도자의 더 큰 문제는 지도자에 대한 유언비어까지도 일반대중이 그대로 믿게 된다는 데 있다. 그의 모든 말에는 진정성이 없다고 단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통치자로서 생명이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이 신뢰를 잃었다,는 의미란

 

촛불이 두달째 타오르고 있다. 그동안 검거된 사람이 천명에 이르고 부상자도 수백명이 나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외치며 시작된 촛불시위의 성격이 이젠 "이명박 퇴진"으로 번져가고 있다. 물론 촛불집회 초기에도 '이명박 타도'라는 구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구호에 그다지 무게를 싣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에 힘이 실리고 있다. 쇠고기 문제보다 더욱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이제 국민들이 눈치 챈 것이다. '강부자'와 '고소영'이라는 말이 처음 나돌 때만해도 국민은 설마설마 했다. '무엇보다도 일하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있다'라고 외친 새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국민은 최근 '두달'을 겪으면서 하느님께 ‘서울을 바치겠다’고 철없는 기도를 했던 사람이 그사람이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냈다. 그 새롭게 떠오른 기억으로 하여 ‘미국산 쇠고기가 싫으면 안 사먹으면 그만 아닌가’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낼 수 있는 사람의 사고력과 그 수준에 대해 국민은 이제야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가 그토록 조롱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필이면 우리 앞에 현신한 것이다.

 

이제 많은 국민은 대통령의 어떤 말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의 지도자적 자질에 대한 실망 또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결국 대한민국은 또 다른 불행한 대통령의 이름을 역사에 기록하게 될 것 같다. 다만 부작용이 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2008.07.02 21:36 ⓒ 2008 OhmyNews
#촛불집회에 대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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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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