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40) 뉴스

[우리 말에 마음쓰기 361] 왜 ‘리드미컬(rhythmical)’이라 말해야 하지?

등록 2008.07.04 13:33수정 2008.07.0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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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리드미컬(rhythmical)

 

.. 오랜만에 친구와 후배들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떠서 걸음이 리드미컬하기까지 하다 ..  《황안나-내 나이가 어때서?》(샨티,2005) 155쪽

 

 마음이 들뜰 때에는 걸음걸이가 ‘경쾌(輕快)’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보기글에 한자말 ‘경쾌’가 쓰였다면 그냥저냥 지나쳤을 텐데, 미국말 ‘리드미컬’이 쓰이니,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고, 이제는 한자말을 떨쳐낼(?) 만큼 사람들 말씀씀이가 달라졌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 rhythmical

 │  1 율동적인, 리드미컬한;주기적인

 │  2 규칙적으로 순환하는

 │

 ├ 걸음이 리드미컬하기까지 하다

 │→ 걸음이 가벼워지기까지 하다

 │→ 걸음이 가뿐해졌다

 │→ 걸음이 가벼워졌다

 │→ 걸음에 힘이 넘치게 되었다

 │→ 걷기가 즐거워졌다

 └ …

 

 국어사전에서 ‘리드미컬’을 찾아봅니다만 나오지 않습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미국말을 쓰고 있기에, 이제는 국어사전에도 실렸을까 싶었는데, 반가운 소식인지 안 반가운 소식인지, 국어사전에는 아직(?) 안 실렸습니다.

 

 ┌ 걸음이 사뿐사뿐

 ├ 걸음이 날아갈 듯

 └ …

 

 보기글을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마음이 들떠서 걸음이 ‘리드미컬’하게 되었다면, ‘걸음이 율동적’이라거나 ‘걸음이 규칙적으로 순환하는’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발걸음이 가벼운 모습이라고 봅니다. 힘들지 않은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신이 나거나 즐겁기도 한 모습이지 싶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리드미컬’이라는 낱말이 어떤 뜻인지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집어넣은 셈입니다. 글 한 줄을 쓰면서 자기가 쓰는 낱말이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 찬찬히 살피지 않은 셈입니다. 어쩌면 세상사람들이 두루 쓰는 느낌을 따라서 ‘리드미컬’ 같은 낱말을 넣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로서는 ‘리드미컬’이 또렷하게 어떤 뜻인지 모른다고 해도, 세상사람들 말씀씀이를 돌아본다면, 이렇게 써도 으레 알아듣겠거니 생각했겠구나 싶어요.

 

ㄴ. 뉴스(news)

 

.. 이 경과를 경성제대 후지다 교수에게 보고했더니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다고 하면서, 그 구두쇠 아유가이 노인이 고문헌을 자기 집 문 밖으로 빌려내 주다니, 처음 듣는 신기한 뉴우스라고 말했다 ..  《정문기-어류박물지》(일지사,1974) 28쪽

 

 “이 경과(經過)”는 “이 일”로 다듬습니다. “별(別)일이 다 있다”는 “온갖 일이 다 있다”로 손보고, ‘고문헌(古文獻)’은 ‘옛책’으로 손보며, ‘신기(新奇)한’은 ‘놀라운’이나 ‘새로운’으로 손봅니다.

 

 ┌ 뉴스(news)

 │  (1) 새로운 소식을 전하여 주는 방송의 프로그램

 │   - 북한 관련 뉴스 / 텔레비전 뉴스 /

 │     자세한 소식은 저녁 9시 뉴스에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  (2)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아니한 새로운 소식.

 │     ‘소식’, ‘새 소식’으로 순화

 │   - 제가 좋은 뉴스 하나 전해 드리겠습니다

 │

 ├ 처음 듣는 신기한 뉴우스라고

 │→ 처음 듣는 놀라운 소식이라고

 │→ 처음 듣는 놀라운 일이라고

 │→ 처음 듣는 놀라운 이야기라고

 └ …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뉴스’라 하는데, ‘새로운 소식’도 ‘뉴스’라 합니다. 그러면, 국어사전 보기글에 나오는 “자세한 소식은 9시 뉴스에서 전해 드리겠습니다”는 “자세한 뉴스는 저녁 9시 뉴스에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꼴이 되는데, 어딘가 얄궂지 않습니까. “낱낱 이야기(더 깊은 이야기/더 많은 이야기)는 저녁 9시에 알려 드리겠습니다”쯤으로 다듬어 주어야 그럭저럭 앞뒤가 맞지 않을는지.

 

 ┌ 좋은 뉴스 하나 전해 드리겠습니다

 │

 │→ 좋은 소식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 좋은 이야기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 …

 

 그러나 온누리에 두루 퍼져 있는 말 ‘뉴스’는 섣불리 다듬기 어렵습니다. 아니, 다듬을 수 없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바깥말도 아니고 들온 말도 아닌 토박이말로 굳었다고 여겨야 옳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한 번 쓰고 두 번 쓰는 동안 자꾸만 퍼져나가서 뿌리박은 낱말인데, 말밑이 반갑든 내키지 않든, 사람들이 널리 쓰고 있다면, 국어사전에도 싣고 더 널리 쓰면 되지 않으냐 싶기도 해요.

 

 ┌ 새소식

 └ 새이야기

 

 우리 스스로 우리 줏대를 세우지 않은 탓이 커서, 방송국이 생기고 신문사가 생기고 하면서도, 우리 토박이말로 우리 뜻과 생각과 넋을 담아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이야기를 펼쳐 보이면 될터이나, 겉멋이나 겉치레에 빠지면서, 우리 삶터와 발자취보다는 나라밖 삶터와 발자취에 더 눈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말을 배워도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는 사람은 없지만, 영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배워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많고, 또 많이 배웁니다. 우리 말과 글을 옳고 알맞게 쓰도록 마음을 기울이지는 못하면서 한자 지식을 늘리는 데에는 땀을 쏟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제대로 모릅니다. 우리 삶터가 얼마나 역사가 깊으며 뜻이 너른지를 잘 모릅니다. 우리가 디딘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줄 모르며, 골목길이 얼마나 호젓하며 따스한지를 깨닫지 않습니다.

 

돈이 된다고 해서 아파트로 몰리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한테 무엇이 아름답고 살가운지, 무엇이 사랑스럽고 애틋한지를 잊거나 놓치거나 버렸기 때문에, 자기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무너지고 있어도 못 느끼거나 안 알아채려고 하는구나 싶어요. 이런 판이니, 우리들 얼을 담고 넋이 깃드는 말과 글을 소홀히 다루거나 내팽개친다고 봅니다.

 

 삶이 먼저 우뚝 솟아야 말이 삽니다. 줏대를 먼저 다부지게 세워야 글이 삽니다. ‘뉴스’ 같은 미국말이야, 쓰고 싶으면 쓸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국말을 쓰는 우리 매무새가 어떠한지를 차근차근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우리가 이런 미국말을 왜 쓰는지, 어디까지 쓸 만한지, 이 미국말을 쓰는 우리 삶은 얼마나 넉넉해지거나 알차게 되는지를 곱씹어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04 13:33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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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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