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대통령, 자존심 잃은 정부

그래도 대통령에게 바란다

등록 2008.07.05 21:50수정 2008.07.0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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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명박씨가 대통령 선서를 하던 모습은 세계 많은 이들에게 관심거리였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자수성가했으며 셀러리맨의 신화로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대통령 선거 유세기간 내내 'BBK사건'이라는, 웬만한 사람 같으면 며칠도 버티지 못할 엄청난 외압을 견디면서도 차점자와 사상 초유의 지지율 격차로 당선된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대다수 국민들은 새 대통령의 출연에 가벼운 흥분을 느끼기까지 했다. 국가의 새로운 미래를 일에 대한 경험이 많은 그가 노련하게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본인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일 하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라고 줄곧 외쳐댔다.

 

역시 그는 당선 직후부터 '정부인수위원회'를 닦달해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휴일도 거의 없이 몰아쳤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안쓰럽게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그는 진정한 일꾼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회사 경영자와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데서 터져 나왔다.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역시 리더십이라는 것, 그리고 그 리더십을 갖기 위해서라도 특별한 통찰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국민은 그제야 깨달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무조건 일만 한다고 해서 리더십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7월 4일자 보도 내용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adviser)는 "이 대통령이 평생 동안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라 한국 사회가 지난 10년간 얼마나 변했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한 것 같다"고 했고,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너무(철학적이고 전략적인) 비전이 많았던 데 비해 이 대통령은 너무 없다. 기업 최고경영자라면 몰라도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불도저식'이 먹히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지난달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쇠고기 차원을 넘어선 한국의 분노'(An Anger in Korea Over More Than Beef)라는 제하의 분석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이 촛불시위의 발로'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 압도적인 국민 지지로 당선된 이 대통령이지만 '미국에 아첨하는 지도자'(a Korean leader kowtowing to the Americans)로 비춰지면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너무 꼼꼼하게 일하는 통에 밑에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그가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통해 보여준 것은 깊은 실망 그 자체였다. 미국 협상팀이 애초 기대하지도 않았다던 30개월 이상의 소와 내장, 뼈, 등을 모두 사겠다고 미국대통령 별장에서 뱃심 좋게 타결해버린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그것이 꿈이기를 바랐을 정도다. 자기 나라 대통령의 비굴함을 바라봐야하는 대한민국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다던 그 이야기가 그제야 가슴을 파고들면서, 통찰력이 결여된 사람에게 나라를 맡긴 책임을 국민은 아프게 느껴야 했다.

 

항거하는 평화적 촛불시위를 공권력에 의해 폭력으로 얼룩지게 해 놓고도 그 책임을 시위대에게 일방적으로 책임 전가하는 대통령에게 이미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져 버렸다. 애초에 비폭력 시위를 원했던 촛불들이 부당한 공격을 당하면서 이젠 참다못한 성직자들이 뛰쳐나와 보호해주어야 할 판국이 되었다. 그래도 정부와 대통령은 자신들의 진정한 문제를 뒤돌아볼 줄 모른다. 대통령은 이제 국민에게서 신뢰를 잃어버렸다.

 

목에 힘주다가 자존심 상한 이명박 정부

 

신뢰가 없는 사람은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운법이다. 최근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놓고 한국과 미국은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 발표한 바 있지만, 미국에서는 공식발표를 며칠째 미적 거리고 있다. 우리 정부가 부시대통령의 방한을 거의 애걸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북한과도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왔다. 나름 고매한 철학에 의해 북한을 다루려는 듯 고자세 일변도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정식 요청이 있을 때만 식량지원을 고려하겠다'라고 말한 것은 목에 힘 준 입장의 극치였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갑자기 옥수수 5만t을 지원하겠다고 북한에 먼저 제의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북핵 신고서 제출 등으로 조성된 국제정세 변화에서 소회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우리 정부의 마음은 급해졌다. 실제 미국은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다음날인 지난 28일 유엔 등과 함께 대북식량 지원 합의서에 공식 서명하고 50만t 식량지원에 나섰으며, 1차 지원분인 미국산 밀 3만8천t을 실은 배가 벌써 다음날인 29일 남포항에 도착한 바 있다.

 

지난 5월, 옥수수 5만t 지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 간 실무접촉을 북쪽에 제의했지만, 북한이 이에 대해 명확한 공식태도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정부는 '남북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북쪽이 원하는 인수장소, 시기, 방법 등 실무적 사항을 문서나 팩스로 알려주면 옥수수를 지원하겠다'라고까지 사정했지만, 끝내 북쪽으로부터 '안 받겠다'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려던 옥수수 5만t은 작년 12월 북한의 요청에 따라 지원하려던 것이었으나 국제곡물가 상승, 중국의 식량수출 쿼터제 적용 등으로 집행이 미뤄지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아예 집행이 보류됐던 것이었다.

 

지도자의 통찰력과 신뢰의 결여는 이토록 국내외를 막론하고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그것은 결국 국가의 손실로 귀결 될 것이 뻔하며 국민의 품위까지 떨어트린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에 부정적으로 발생되는 일을 모두 촛불시위 때문이라며 몰아붙인다. 경제 악화도 촛불이요, 외국인들의 투자기피도 촛불 때문이며, 증시 추락도, 국민이 불안을 느끼는 것도 모두 촛불로 덮어씌운다.

 

5일 저녁 현재 숭례문 태평로엔 50만이 넘는 인파가 몰려오고 있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일이다. 국민들은 이 더운 날 왜 이토록 매일 서울광장에 몰려드는지. 도대체 그들은 어째서 지치지도 않는 것인지. 그리고 인파는 왜 이렇게 자꾸만 불어나는지.

2008.07.05 21:50 ⓒ 2008 OhmyNews
#국민승리선언범국민촛불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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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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