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영웅 만들기'의 불편함

[중국영화로 중국문화 읽기⑨] 펑샤오강 감독의 <집결호>

등록 2008.07.06 14:36수정 2008.07.0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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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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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호(퇴각신호)는 울렸는가? 영화 <집결호>는 체체옹포적인 주선율영화의 색채가 강해 한국관객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다가온다. ⓒ 화이브라더스


중국에서는 체제옹호에 기여한 영웅들의 활약상과 희생을 확대 재생산하여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강화, 홍보하는 영화를 주선율(主旋律)영화라고 한다. 중국 상업영화의 대가, 펑샤오강(馮小剛) 감독의 영화 <집결호(集結號)>는 국공내전,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전쟁혁명영웅들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선율영화의 색채가 강하다.

<집결호>는 국공내전 당시 적진에 폭약을 들고 들어가 진출로를 개척한 동춘뤠이(董存瑞),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기관총구를 몸으로 막아낸 황지광(黄繼光) 등의 실존인물들의 영웅담을 충실히 재현해내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제작진이 참여하여 실감나는 전투상황을 재현해내 화제가 되기도 한 <집결호>는 전반부의 국공내전, 후반부의 한국전쟁과 희생당한 대원들의 명예를 찾아주는 주인공 구즈디(谷子地)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쟁의 황량함 속에서 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과 그 후의 뒤틀린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전쟁영화의 뻔한 레파터리를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만 흔들리는 영상에 담은 실감나는 전투장면과 섬세한 인물들의 심리묘사 장면들은 기존의 전쟁대작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국공내전에서 승리를 이끌 수 있었던 공산당군의 희생정신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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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구즈디 국공내전 중원지역 전투에서 진지를 사수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하는 구즈디의 모습이다. ⓒ 화이브라더스




영화가 시작하면서 배경이 되는 1948년 겨울은 국공내전의 상황이 이미 공산당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전개되던 무렵이다. 일본 패망 이후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와 공산당의 마오쩌둥(毛澤東)은 충칭에서 만나 제3차 국공합작을 체결하여 내전을 피하고, 부강하고 자유로운 신중국을 함께 건설할 것을 합의한다.

그러나 국민당은 미국의 원조와 1945년 소련과 체결한 중소우호동맹조약의 지원조건과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공산당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1946년 공산당의 거점이던 옌안(延安)을 점령한다. 당시 국민당의 군대는 430만 명 정도였고 공산당 정규군은 128만 명에 불과했으니 최신무기에 압도적인 군사력을 배경으로 국민당은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을 만도 하다.


그러나 8년간의 긴 항일전쟁에 국민당 병사들은 지쳐있었고 부패하고 무능한 국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세는 조금씩 공산당에 유리해진다. 1948년 9월 이후 공산당은 선양(瀋陽)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지역, 쉬저우(徐州)를 중심으로 한 중원지역, 베이징과 톈진(天津)지역 전투에서 승리하며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킨다.

“너희가 먹을 음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총알이고 다른 하나는 만두이다. 항복하고 나와 함께 만두를 먹자!”

공산당군 중원야전군 예하 9중대장 구즈디가 국민당군을 포위한 상황에서 하는 이 말은 당시 전황을 잘 말해준다. 행정관을 잃은 설움과 분노에 투항한 국민당 군인들을 몰살하고 전리품을 횡령한 잘못으로 구즈디는 잠시 징계를 받게 되는데 그곳에서 패닉상황에서 바지에 오줌을 싼, 뒤에 새로운 행정관이 될 사내를 만난다.  

“머리 위로는 총알이 빗발치고 바짓가랑이로는 수류탄이 지나다니는데 신선이라도 바지에 오줌을 싸지!”
이렇게 재치 있는 농담으로 사내를 위로한다.

구즈디는 46명의 대원과 집결호(퇴각신호)가 울릴 때까지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적의 주력부대가 오는 길목에서 매복 작전을 편다. 적군은 물리쳐도, 물리쳐도 계속 진격해오고 구즈디의 중대원들은 하나 둘 죽어간다. 모두 죽을 것을 예감한 대원들은 집결호가 울렸으니 철수하자고 하지만 구즈디는 집결호를 듣지 못했으니 남겠다고 한다. 결국 모든 대원이 죽고 구즈디만 살아남게 된다.

한국전쟁에서 맹위를 떨친 중국군의 기만전술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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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구즈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은 기만, 침투, 매복 등의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데 영화에서도 이런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화이브라더스



병원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던 구즈디는 다시 전쟁에 자원해 참전하게 되는데 바로 한국전쟁이다. 1950년 겨울, 강원도 횡성에서 국군군복을 입고 지뢰를 밟은 포병중대장과 함께 미군과 조우하는 장면이다. 미군은 국군 군복만 보고 결국 중국군인 그들을 어이없게 지나쳐 가고 중대장을 대신 지뢰를 밟은 구즈디는 실명(失明)하게 되지만 덕분에 중국군은 교량파괴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한 중국군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그 부정적 인식이 중국군의 파병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들을 왜곡하는 측면 또한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해전술’인데 중국군은 국공내전에서 단련된 최정예부대로 기습, 매복, 우회 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였으며 오히려 우세한 무기의 화력에만 의존, 장기전에 대비하지 못하는 등 전술적 부재를 드러낸 것은 미군이었다는 것이 보다 객관적인 사실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수가 약 300만 명에 달했고 전사자는 마오쩌둥의 큰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을 포함하여 약 17만 명, 부상자는 36만 명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는 인해전술의 결과라기보다는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으로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다.

1949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김일성의 요청으로 중국군 내 조선족 병사들이 북한으로 보내졌고 1950년 10월 19일, 지원군의 이름으로 북한군복을 입은 중국군 26만 명이 몰래 북한지역에 침투한다. 당시 UN군과 한국군은 그렇게 많은 규모의 군대가 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북한군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하니 중국군의 기만전술이 얼마나 치밀한지 엿볼 수 있다. 영화 <집결호>는 이와 같은 기만전술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주인공 구즈디가 전후 실종자로 처리되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부대원들의 명예를 복권시키기 위해 미친 듯이 부대원들의 유해를 찾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홀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슬픔은 처참하게 죽어갔던 전우들의 명예를 되찾아주는 일에 나서게 하지만 모두가 죽고 없는 상황에서 누가 그들의 죽음을 ‘혁명열사’로 기억해줄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던 연대장의 보좌관이자 나팔수였던 이를 만나 부대원의 명예를 되찾게 되고 또 ‘집결호’는 애당초 없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된다. ‘울리지 않은 집결호’, 국가의 명령 앞에 온전히 목숨을 희생했던 이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떠올리게 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체제옹호적인 중국식 영웅 만들기, 불편하게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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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구즈디의 인간적인 투쟁 대원들이 실종자로 처리된 것에 분노하여 대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는 구즈디의 모습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영화의 후반부를 이루고 있다. ⓒ 화이브라더스



최근 중국정부는 인민영웅에게 수여하던 ‘혁명열사’의 칭호에서 ‘혁명’을 빼고 ‘열사’만 쓰기로 하여 더 이상 공산주의혁명의 시대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공산당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열사가 되는 길을 열어 준바 있다. 그리고 열사 유족에게는 전국 평균 월급의 15배에 해당하는 일시보상금과 사망 전 월급만큼의 연금과 취업 알선, 주택 우선 분양, 학비 지원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고 한다.

집결호가 울리기 전까지 진지를 사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던 연대장의 묘비 앞에서 구즈디는 집결호가 없었던 사실에 분노하다가 결국 전쟁의 광기 속에서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임을 인정하고 그를 용서한다. 

“청명절에 자네 술과 담배는 내가 책임지겠네.”

올해부터 법정 공휴일이 된 중국의 청명절에 구즈디의 말처럼 혁명열사를 위해 술과 담배를 바칠 그의 후손들을 생각하면, 영화 <집결호>는 중국 최초의 블록버스터급 전쟁영화 라는 명성과 함께 또 어쩔 수 없는 ‘중국식 영웅 만들기’식의 주선율영화 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피아가 분명한 전쟁의 불가피성을 가만하더라도 체제 옹호적이고 지배체제를 대신한 변명에 가까운 내용전개는 한국관객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집결호 #중국군 #한국전쟁 #혁명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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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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