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에서 우려낸 특별하고 희귀한 포도주

[중국영화로 중국문화 읽기⑧] 지앙원 감독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등록 2008.06.24 19:36수정 2008.06.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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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말]
1966년 5월 16일에서 1976년 마오쩌둥이 죽는 9월 9일까지의 극좌적 정치운동기 10년을 프롤레타리아문화대혁명 줄여서 문혁, 또는 10년 동란이라 부른다. 어떤 이는 문혁으로 인해 중국역사가 30년은 후퇴했다고도 말한다.

1981년, 중국공산당은 ‘건국 후 역사문제에 관한 약간의 결의’에서 문혁은 극좌적 오류였다고 스스로 규정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에 반하는 어떤 연구나 학술토론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혁에 대한 강력한 부정적 집단기억을 만들고 모든 이들에게 이런 기억만을 강요해 온 셈이다.

그러나 최근 심화된 빈부격차와 극심한 부정부패는 중국인들에게 가난했지만 모두 평등했던 문혁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고 심각한 농촌문제에 대해서도 문혁시기에 농촌의 교육, 의료서비스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는 연구저서가 발표되는가 하면 자본주의적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제2의 문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신좌파 지식인들도 등장하고 있다.

또한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된 반면 중국이 건실하게 발전할 수 있는 데에는 문혁이라는 철저한 사회주의노선의 경험이 아주 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힘을 얻고 있다.

1994년 발표된 지앙원(姜文)감독의 처녀작 <햇빛 쏟아지던 날들(陽光燦爛的日子)>은 어른들이 떠난 도시를 접수한 십대들의 행복했던 시절을 통해 문혁에 대한 강요된 집단기억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으며 2007년 개봉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太陽照常升起)>는 관객들에게 문혁에 대한 보다 다양한 시선과 재해석을 주문하고 있다.

영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1976년의 봄, 여름, 가을, 1957년 겨울을 또 미침(狂), 사랑(戀), 총(槍), 꿈(夢)의 4조각으로 나눠 놓았는데 관객들은 퍼즐을 맞추듯, 이 모호한 이야기들의 상호 연결성을 조합하며 힘겹게 영화의 의미를 추적해 가야만 한다.

지난 역사에 대한 해석이라기보다는 관객들에게 기억과 상상력의 문을 열게 하는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통시적 관찰보다는 한 개인, 개인에 대한 미시적 관찰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유추하게 한다. 비록 난해하지만 빠른 스토리 전개와 아름다운 영상과 배우들의 밀도 있는 연기가 어우러져 영화는 대단히 매력적이며 흡입력이 있게 다가온다.


1976년, 그 봄날의 미침(狂)-나무 위의 미치광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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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엄마와 아들 감독인 지앙원과 열애중인 저우위(周韻)와 청롱(成龍)의 아들인 방쭈밍(房祖名)이 배역을 맡고 있다. ⓒ 지앙원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적 외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한 미친 여인과 그녀를 돌보기에 바쁜 아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꿈에 본 ‘붉은 물고기 신발’을 사는데 나무에 걸어둔 신발이 사라져버린다. 그 후 그녀는 신발을 찾기 위해 나무에 오르는데 날아가는 앵무새를 향해 소리친다.


“알로샤! 두려워 말아요! 기차가 위에서 멈춘 거예요!”
“그날이 오면 애가 웃을 거예요!”

미친 엄마는 아들의 주판을 던져 깨뜨리고 집안의 접시며 그릇들도 다 깨부순다. 이성의 언어가 파괴되고 조금이라도 낡고 봉건적인 것은 다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문혁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가 누군지 묻는 아들에게 미친 엄마는 아버지는 알로샤라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아버지의 얼굴은 오려져 있으며 그 오려진 사이로 불꽃이 클로즈업된다.

마치 아들은 붉은 혁명을 상징하는 불꽃의 아들처럼 다가온다. 미친 엄마를 보살피느라 동분서주하는 아들 역할을 맡은 방쭈밍(房祖名)은 청롱(成龍)의 아들인데 그 연기력을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황학은 떠난 후 다신 돌아오지 않았네. 빈 하늘엔 흰 구름만 떠가고 그대는 황학을 타고 가버렸네. 이젠 황학탑만 덩그러니 서있네.”

시를 읊던 엄마는 숲 속에 하얀 돌로 집을 지어 놓고 어딘가로 사라지고 그녀가 샀던 ‘붉은 물고기 신발’과 그녀가 입던 옷이 물 위를 떠내려간다.

여름날의 사랑(戀)-변태의 누명을 쓰고 자살하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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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을 쓰고 자살하는 황치우성 문혁기간 많은 지식인들이 홍위병으로부터의 수치와 모멸을 받고 자살했는데 그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 지앙원


황치우성(黃秋生)이 역을 맡은 대학교수는 밤에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데 어떤 여인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누명을 쓰고 군중들에게 얻어맞는다. 병원에 입원한 황치우성을 찾아온 양호교사는 자신이 황치우성을 너무 사랑해서, 교수에게서 사랑고백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조사과정에서 황치우성을 지목했다고 말한다. 황치우성의 친구인 지앙원(姜文, 감독이자 배우로 출연)도 최선을 다해 그가 무고한 누명을 썼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황치우성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총을 지앙원에게 준다.

그러나 황치우성은 ‘변태’라는 누명을 쓰고 결국 목을 메달아 자살한다. 사랑을 얻은 기쁨 때문일까 아니면 누명을 벗은 홀가분함일까 자살한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다. 희극적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문혁기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으로 죽어갔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장면이다.

가을날의 총성-아내와 바람을 피운 아들을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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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면서 배우로 등장하는 지앙원 샤방된 교수 지앙원은 총으로 꿩을 잡으며 생활하는데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아들을 죽이게 된다. ⓒ 지앙원


문혁기간 많은 지식인들을 아무런 연고가 없는 농촌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도록 했는데 이를 샤방(下方)이라고 한다. 지앙원과 그의 아내는 미친 엄마의 신발과 옷이 강물에 떠내려가는 그날, 샤방되어 마을에 온다.

마을에서 지앙원은 아이들을 데리고 사냥을 하는데 매일 그가 잡은 뀅과 토끼 등을 미친 엄마의 아들에게 가져다주고 그의 업무를 관리하는 아들은 그것을 그의 하루 일과로 기록해준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총에 맞아 떨어지고 물에는 더 이상 물고기가 헤엄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앙원은 아들과 자신의 아내가 미친 엄마가 만들어 놓은 하얀 돌집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미친 엄마의 아들은 아내가 “남편은 내 배가 융단(天鵝絨) 같대요”라는 말의 ‘융단’이 무엇인지를 몰라 궁금해 한다. 남편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도 도대체 ‘융단’이 무엇이냐고 되묻는데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이에미(葉彌)의 단편소설을 상기시킨다.

적극적인 홍위병의 모습은 아니지만 미친 엄마의 아들이 맡은 사회적 역할은 결국 샤방된 지식인의 일과를 관리하는 홍위병이다. 애매모호한 스토리 전개상 남편이 죽인 것은 어쩌면 자신의 친아들일지도 모른다. 문혁기간 홍위병은 수많은 지식인들을 억압하는 가해자의 기제로 존재했지만 지금 그들은 반대로 지식인들에게 완전히 통제되고 가해자로 낙인 찍혀 있다.

1957년, 그 겨울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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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길과 열린 길 두 갈림길은 돌고 도는 인생 역정의 일부이며 결국은 하나일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 지앙원


두 여인이 낙타를 타고 고비사막을 걷고 있다. 두 여인은 ‘막다른 길’과  ‘막다른 길이 아님’의 갈림길에서 각각의 길을 간다. 막다른 길로 간 여인은 지앙원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는데 지앙원은 총을 쏘며 자축하고 결혼식에 참석했던 황치우성은 한 여인의 엉덩이를 만지며 환호한다.

막다른 길이 아닌 길을 간 임신한 여인은 남편인 알로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차 철길 위에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붉게 불꽃처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죽음으로 끝나는 앞의 세 얘기와 달리 마지막은 무엇인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 하지만, 사실 마지막 얘기는 앞 사건들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부분으로 영화의 첫 부분에 해당된다.

지앙원 감독은 프랑스 부인과 이혼한 후 이 영화에서 미친 엄마 역을 맡은 저우위(周韻)과 열애중이었는데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이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지앙원 감독은 난해한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에 대해 모두 그럴 수 있다고만 말하면서도 이 영화는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단서를 흘려주기도 하였다. 어쩌면 두 여인은 한 여인의 두 가지 인생역정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한 여인의 기억과 환상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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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역사의 어떤 갈림길도 영구불변의 방향을 결정 짓지는 못한다. 태양이 다시 뜨는 것처럼 평가와 기억은 늘 현실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 지앙원


문혁이 일어나기 20년 전인 1957년, 중국과 소련은 조금씩 이념분쟁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중국이 대약진운동과 문혁으로 이어지는 철저한 사회주의노선을 견지한 반면 소련은 데탕트무드에 편승하여 수정주의 길을 걷게 되는데 영화에서 1957년의 두 갈림길은 어쩌면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알로샤, 나타샤 등의 러시아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다.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엄마는 진짜 미쳤는가, 황치우성은 정말 자살했는가 등의 문제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영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문혁’이라는 포도에서 우려낸 한 잔의 특별하고 희귀한 맛의 포도주와 같다. 역사와 사랑에 대한 무궁한 해석과 재해석을 불러올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 있고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문화대혁명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지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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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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