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인 국민에게 '러시안룰렛' 강요하는 정치인들

[주장] 촛불이 가르쳐 준 '재협상' 비법으로 인간을 회복하라

등록 2008.07.10 14:54수정 2008.07.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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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기 게임'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현대적 마케팅이 개발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세계 각지에서는 자기 동네 특산 먹을거리를 쓰는 이벤트를 벌여왔다. 이 중에는 지역축제와 같은 전통의 품계(品階)를 얻은 것도 있고, '문화'로까지 격상된 것도 있다. 와인이나 맥주가 그렇고, 치즈나 초밥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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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촛불이 요구하는 '재협상'은 이 정권의 난관을 극복하는 돌파구이며, 우리 사회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 시민사회신문

▲ 촛불 촛불이 요구하는 '재협상'은 이 정권의 난관을 극복하는 돌파구이며, 우리 사회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 시민사회신문

토마토를 던져 '패싸움'을 한다거나, 피자 멀리 던지기를 겨룬다거나, 포도 밟아 빨리 많이 즙을 내거나, 와인이나 치즈의 '족보(族譜)'를 알아맞힌다거나 하는 게임은 나름대로 멋과 흥취가 있다.

 

이런 이벤트 중 제법 많은 것이 누가 더 많이 먹나(마시나)를 겨루는 게임이다. 가령 맥주 많이 마시기, 피자 많이 먹기 따위다. 이런 ‘겨루기’가 어리석다고 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필요치 않으리라. 그러나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언론의 가십거리로도 꾸준히 등장한다.

 

누구 보라는 '시식 쇼' 인가?

 

우리 정치인들 또는 정치적 성향의 인사들이 최근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과시하듯 경쟁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한다. ‘누구’ 보라고 하는 일일까? “맛있다, 한우보다!”라고도 한단다.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다. 참 철 없는 사람들의 허망한 행실이라니.

 

‘골프장에서 벼락을 맞아 죽을 가능성보다 어쩌고…’ 하는 ‘확률론’을 내세우며 그들은 ‘실체가 거의 없는 광우병’이 ‘촛불 광풍(狂風)’을 부른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 실체가 없는 것처럼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그 미약(微弱)한 확률의 주사위가 본인이나 그의 아내, 아들, 손자의 발 앞에 멈춰 선다면 그들은 어떤 얼굴을 할까?

 

안전이 보장된 외국의 식품이라도 주권을 가진 나라라면 수입할 때 꼼꼼히 검역을 해야 한다. 금과옥조(金科玉條)다. 그러나 ‘위험하다’ ‘먹기 싫다’는 국민들의 아우성을 등지면서까지 이들은 먹어도 좋다고 ‘단언’한다. 그 뒤에는 “나중에 광우병 걸리나 안 걸리나 보자”하는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오기의 언어가 숨어있다.

 

자기파괴 러시안룰렛의 묵시록적 공포

 

‘많이 먹기 게임’이 어리석은 짓이라면 러시안룰렛 게임은 자기파괴와 생명의 부정이라는 면에서 단연 극치다. 6연발 권총의 회전식 탄실(彈室)에 단 하나의 탄환을 넣고,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룰렛, 월남전 배경 영화 <디어 헌터>를 통해 많은 사람이 공포를 실감했다.

 

자기파괴 확률 1/6인 이 자살게임(?)과는 물론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낮은 가능성이지만, 그 정치인들은 지금 우리에게 미국산 쇠고기 시식이라는 시위를 통해 러시안룰렛 게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들은 ‘0에 가까운 확률’이라며 게임의 성립을 부정한다. 그러나 맞은편의 많은 ‘국민’들에게 이는 ‘0이 아닌 확률’의 엄연한 러시안룰렛이다.

 

촛불이 그래서 천지를 뒤흔드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다. 돈을 걸든, 사랑을 걸든 러시안룰렛 게이머들은 마주 앉아 같은 조건으로 승부를 가린다. 소위 ‘페어 플레이(fair play)'다.

 

미국산 쇠고기 러시안룰렛은 그렇지 않다. 승부가 10년이라는 잠복기(潛伏期))를 지나 결정된다는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도록 ‘강요’한 사람은 그때 이미 그 자리에 없다. ‘뇌송송 구멍탁’으로 죽든, 늙어 죽든, 아니면 자연인의 신분이든 ‘나는 모르오’일 것이다.

 

그들은 지금 시중에 나도는 미국산 쇠고기가 아닌, 20개월에서 30개월 사이의 새로 오게 될 쇠고기나 소뼈 곱창 요리도 시식해야 할 것이다. 설렁탕 곰탕 내장탕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말이 된다. 그들은 먹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안전하다 했다’고 그들은 말한다.

 

먹을거리 환경을 포위한 SRM... 육수 뼈 곱창

 

필자는 간곡히 만류하고자 한다. 소에게 소를 먹이는, 하늘을 거스르는 잔인한 인간의 행실로 생겨난 ‘재앙’이 광우병이다. 곱창 어느 부위에서 몇 cm를 잘라낸다고 안전할까? 정녕 그렇게 믿는가? 30개월에서 이틀 모자라면 안전한가? 31개월을 25개월이라고 그들이 우긴다면 이를 밝힐 수 있나? 그게 과학인가? 과학은 모름지기 정치가 아닌 ‘생명의 원리’를 가리켜야 한다. 먹을거리는 순결(純潔)해야 한다. 

 

그러기에 ‘재협상’이 가장 쉽다고 촛불이, 하늘같은 ‘백성’이 가르치지 않는가? 그 곱창과 뼈 우린 육수로 만든 요리의 시식회에는 무슨 핑계를 대고라도 빠져라. 그게 인간적이다, 적어도 자신과 가족에게는 책임 있는 자세다.

 

우리는 이제 세계에서 광우병위험특정물질(SRM)을 음식에 가장 많이 넣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게 될 전망이다. 유일한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어찌 할꼬.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어리석고 파괴적인 이 게임을 어서 거두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시민사회신문의 논설위원과 이 신문 부설 우소논술연수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008.07.10 14:5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시민사회신문의 논설위원과 이 신문 부설 우소논술연수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우병 #SRM #촛불 #한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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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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