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완득이>, 그런데 왜 머리가 아프지?

[서평] 김려령의 <완득이>

등록 2008.07.10 16:16수정 2008.07.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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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완득이> 겉그림 ⓒ 창비

친구 딸아이 돌잔치 선물을 사기 위해 대구 중심가에 있는 대형서점에 들렀다. 서점 입구에 들어서니 에스컬레이터 옆에 마련된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책 표지를 확대한 것으로 보이는 홍보 포스터에는 눈매가 매섭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한 눈에 봐도 불량스러워 보이는 녀석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치 일본 학원폭력물 만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나는 재미있고도 도발적인 홍보 포스터에 이끌려 부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스에는 벽돌을 반듯하게 쌓아 올린 것처럼 똑같은 책들이 수십 권 쌓여 있었다. 책 제목이 <완득이>(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다.

책의 장정과 표지 디자인은 일본 인기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쓴 <면장선거>, <남쪽으로 튀어>처럼 일본 소설 냄새가 물씬 나는데 제목은 정겹다 못해 살짝 촌스럽기까지 한 '완득이'이라니 묘한 이질감과 발칙함 동시에 느껴졌다.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어머니를 부모로 둔, 즉 혼혈인 17살 '완득이'는 싸움 하나는 끝장나게 잘하는 조용한 반항아다. 이런 완득이가 담임 선생과 친구의 도움으로 싸움의 기술을 킥복싱 기술로 승화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큰 서점(교보문고)과 최고로 영향력 있는 출판사(창비)가 손잡고 밀어주는 소설치고는 그 제목과 내용이 너무나 비주류적이다.

이야기 줄기 자체는 70, 80년대 헝그리 복서의 성공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진부한 면이 있다. 또 장애인, 이주노동자, 혼혈인 등 사회적 약자와 악덕 기업주의 아들로서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진 선생을 등장인물로 끌어온 것이 주제를 전파하기 위해 다소 작위적 설정을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든다.


<완득이>는 드러난 외피만 보자면 눈물, 콧물 다 빼고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할 것 같은 최루성 '성장소설'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감 있는 경쾌한 전개로 가독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작가 '김려령'이 구사하는 톡톡 튀는 문장은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등장인물의 성격 또한 전형적이지 않다. 온갖 차별과 멸시를 경험했을 것 같은 주인공 완득이는 세상에 분노하거나 반항하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차분히 관조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완득이의 담임선생으로 나오는 '똥주' 역시 제자에 때한 뜨거운 사랑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걸쭉한 욕을 입에 달고 살며, 사회복지시설에서 완득이에게 지급한 생활용품과 먹을거리를 '삥' 뜯는 치사한 면도 있다.

완득이의 장애인 아버지와 베트남 사람인 어머니 역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숨으려 하거나 나약하지 않다. 한숨이 절로 푹푹 나오는 삶 속에서도 버리지 못하는 꿈이 있으며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소신과 강건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완득이>는 다분히 우울할 수 있는 소재들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또 독자들이 그동안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관습적으로 형상화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미지를 역전시키고 깨뜨린다. 이런 전형성 탈피가 진부한 이야기, 작위적 인물구도에도 신선한 매력을 주는 이유다.

이런 매력 때문에 <완득이>를 다 읽고 나면 확실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재미 뒤에 따라오는 생각은 '과연 현실에서 '완득이' 같은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가 있다면 어땠을까?'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타고난 싸움 실력으로 학교에서 '짱'을 먹고 있는 완득이는 킥복싱 선수가 되려고 한다. '싸움'과 '킥복싱'은 둘 다 치고받고 승부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싸움은 규칙이 없는 제도권 밖의 영역이지만 킥복싱은 규칙이 있는 제도권 안의 영역이다.

좀 더 간명하게 싸움은 '음지', 킥복싱은 '양지'로 놓고 본다면 소설 <완득이>는 음지에 있는 주인공이 양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완득이처럼 처절한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들은 양지를 지향하기는커녕 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삶이 버거울 따름이다.

과연 소설이 충실한 현실반영으로 독자들의 가치관을 환기시키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꽃 피울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고민스럽다.

한편으로는 <완득이>처럼 세상을 희망적으로 그리는 소설은 비정한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하다는 판타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사회문제를 대하는 인식이 순진하고 그런 순진함은 오히려 이웃의 고통에 둔감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마뜩하지 않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완득이>가 보여주는 순진한 현실인식은 독자들의 순수성을 회복시켜주고 지속시켜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또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완득이를 보통의 청소년으로 그림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적 편견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소설이 '창비'에서 주관한 '제1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이다. 즉 청소년을 위해서 쓴 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치열한 현실고민일까? 희망일까? 그래도 지금 우리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일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세대가 바로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김려령 지음,
창비, 2008


#완득이 #김려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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