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왕비님의 노래방 생일잔치'

아내 생일잔치를 노래방에서 성대하게 치르다

등록 2008.07.22 18:22수정 2008.07.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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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내 작전에 따라 준비된 것을 보며 흐뭇해 하는 아내의 얼굴이다. 그녀는 충분히 우리에게 그렇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아이들과 함께 합의된 마음이 아내에게 흐뭇했으리라.

아내 작전에 따라 준비된 것을 보며 흐뭇해 하는 아내의 얼굴이다. 그녀는 충분히 우리에게 그렇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아이들과 함께 합의된 마음이 아내에게 흐뭇했으리라. ⓒ 송상호

▲ 아내 작전에 따라 준비된 것을 보며 흐뭇해 하는 아내의 얼굴이다. 그녀는 충분히 우리에게 그렇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아이들과 함께 합의된 마음이 아내에게 흐뭇했으리라. ⓒ 송상호

참으로 타이밍도 잘 맞았다. 텔레비전 드라마 내용 말이다. 참 신기할 정도였다.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7월19일~20일 방영분)’에서 엄마(김혜자 분)의 생일을 남편과 자녀들이 챙기지 못해 결국 엄마(아내)가 뿔이 났고,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1년짜리 휴가를 달라고 투쟁하던 엄마(아내)가 결국 출가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은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방송국과 나의 아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것이라 해도 믿을 만한 타이밍이었다. 그걸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보았는데 어찌 아내의 생일을 그냥 넘어갈 수 있으랴. 그런 강심장은 우리 가족에겐 없을 터.

 

기가 막힌 타이밍을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 다음날 7월 21일이 내 아내의 41회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어머니들은 가족과 친척 생일은 일일이 챙겼지만, 정작 자신의 생일은 그냥 넘어가는 전통(?)을 우리 가족은 이어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안 그래도 아내는 새해가 되면 꼭 하는 일이 새 달력에 친척과 가족들 생일 적어 넣는 일이었기에 아내를 제외한 우리 가족 3명(나, 딸과 아들)은 아내의 생일을 챙기는 것이 사랑의 의무인 셈. 나머지 사람들의 생일은 아내가 챙길 것이니까 말이다.

 

a 전달식 축하 메시지 전달식이다. 이 때의 즐거움은 아내의 표정이 여실히 말해준다.

전달식 축하 메시지 전달식이다. 이 때의 즐거움은 아내의 표정이 여실히 말해준다. ⓒ 송상호

▲ 전달식 축하 메시지 전달식이다. 이 때의 즐거움은 아내의 표정이 여실히 말해준다. ⓒ 송상호

일단 아침에 아내의 출근은 일상과 똑같았다. 실력이라도 있으면 미역국이라도 끓이겠는데, 해보지 않은 실력이라 자신도 없는 데다가 미역이 집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음식물을 비밀 장소에 저장하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도 몰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미역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방학이라 집에 있는 중학생 딸아이와 함께 어떻게 아내의 생일잔치를 치러낼 것인가를  의논했다. 아직 방학이 아닌 막내아들은 학교에 갔기에 작전회의엔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작전내용이 채택되었다.

 

“먼저 우리 세 명이 한 종이에다가 축하의 메시지를 적어 코팅해서 엄마에게 전해준다.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돈을 보태어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사도록 해준다. 그리고 케이크와 빵을 사서 노래방으로 간다. 거기서 생일축하잔치를 하고 먹고 마시며 노래 부른다.”

 

a 아들의 노래 아들의 신나는 노래(MC몽의 '아이스크림')에 엄마는 덩달아 신이 났다. 엄마의 마음이렷다.

아들의 노래 아들의 신나는 노래(MC몽의 '아이스크림')에 엄마는 덩달아 신이 났다. 엄마의 마음이렷다. ⓒ 송상호

▲ 아들의 노래 아들의 신나는 노래(MC몽의 '아이스크림')에 엄마는 덩달아 신이 났다. 엄마의 마음이렷다. ⓒ 송상호

이제 막내아들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작전 개시다. 막둥이가 돌아오자 우리 세 명은 작전에 돌입했다. 먼저 한 종이에 생일축하 메시지 적어 넣기였다. 예쁜 꽃 편지지에다가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적당히 색연필로 꾸미는 것은 딸의 몫이었다. 그런데 사실 딸아이가 요즘 한창 멋 부리는 시기인지라 딸아이 외출 준비에만 1시간 정도가 걸렸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외출복이 덜 말라 내가 다리미로 다려주는 데만도 약 30분이나 걸렸다.

 

그렇게 준비된 대로 우리는 아내가 다니는 직장 근처로 출동했다. 아내의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렀다. 딸아이는 잽싸게 문구점에 가서 코팅하고, 아들아이와 나는 근처 대형마트에 들어가서 장을 보았다. 우유도 사고, 케이크도 사고 빵도 사고. 장 보는 김에 평소 아내가 말하던 설탕과 어묵도 샀다. 어차피 장을 보는 것이니 아내를 기쁘게 해줄 김에 확실하게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였다.

 

사전 준비를 끝낸 우리는 아내에게 휴대폰 메시지를 넣었다.

 

“여보, 직장 근처니까 나와요.”

 

아내는 약속장소에 나왔다. 나 혼자 오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까지 같이 온 걸 알게 된 아내는 얼굴에 살짝 미소가 뿜어져 나왔다. 어떤 때는 나보다 아이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살짝 질투가 생길 때도 있지만, 그것은 일면 진실이니 인정하는 수밖에.

 

a 아내와의 듀엣 지금 아내와 함께 가수 박주희의 트로트 '자기야'를 부르고 있다.

아내와의 듀엣 지금 아내와 함께 가수 박주희의 트로트 '자기야'를 부르고 있다. ⓒ 송상호

▲ 아내와의 듀엣 지금 아내와 함께 가수 박주희의 트로트 '자기야'를 부르고 있다. ⓒ 송상호

작전대로 우리는 아내를 데리고 노래방으로 직행했다. ‘똥쌍피 노래방’이었다. 노래방에 들어갈 때 음식물을 반입하는 것을 주인 측에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미리 준비해간 큰 배낭에다가 작전 준비물(빵, 우유, 컵 등)을 담아 갔다. 음식물을 전혀 들고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태연하게 노래방에 진입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

 

그렇게 노래방 진입에 성공한 우리는 먼저 노래방에서 축하곡을 틀어 놓고 “생일 축하합니다”를 불렀다. 축하곡 마이크는 딸아이의 몫이었다. 그날 MC는 나였다. 아무래도 한 ‘말빨’하는 내가 나을 것 같아서였다. 순서에 따라 아이들의 축하 메시지 낭독이 있었다.

 

“엄마 생신 축하해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하는 딸(아들) 누구 올림”

 

a 딸과의 듀엣 지금 딸아이와 아내는 가수 백지영의 '사랑 안 해'를 부르고 있다.

딸과의 듀엣 지금 딸아이와 아내는 가수 백지영의 '사랑 안 해'를 부르고 있다. ⓒ 송상호

▲ 딸과의 듀엣 지금 딸아이와 아내는 가수 백지영의 '사랑 안 해'를 부르고 있다. ⓒ 송상호

축하 메시지야 별다를 게 없었다. 아주 흔한 내용이었다. 그나마 딸아이가 “훗날 갚는 날이 오겠지요. 그날만 기다리세요”라는 메시지가 눈에 띄는 내용이라면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겐 흔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메시지가 분명할 터.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메시지일 것은 당연지사.

 

1부로 생일 축하식을 마치니 2부는 축하무대. 마이크와 노래방 기계, 사람이 준비되어 있으니 안성맞춤이 따로 없다. 솔로로 애창곡을 뽑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와 딸이 듀엣으로, 아내와 아들이 듀엣으로, 나와 아내가 듀엣으로, 나와 아들이 듀엣으로 한 곡조 뽑을 때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되는 듯.

 

우리는 그렇게 나름대로 아내의 생일을 치러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작전명을 ‘왕비님의 노래방 생일잔치’라고 불렀다.

 

a 축하메시지 '엄마 생일 축하해요'라는 큰 글귀가 적혀 있는 생일 축하 메시지 코팅물이다. 이날 노래방에서 이 문서가 전해졌다.

축하메시지 '엄마 생일 축하해요'라는 큰 글귀가 적혀 있는 생일 축하 메시지 코팅물이다. 이날 노래방에서 이 문서가 전해졌다. ⓒ 송상호

▲ 축하메시지 '엄마 생일 축하해요'라는 큰 글귀가 적혀 있는 생일 축하 메시지 코팅물이다. 이날 노래방에서 이 문서가 전해졌다. ⓒ 송상호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2008.07.22 18:2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더아모의집 #아내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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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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